月刊 아이러브 PC방 12월호(통권 397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매장 하나를 말아먹은 8년차 PC방 업주가 있다. 또, 코로나가 대한민국을 강타한 시점인 2년 전에 PC방을 차린 업주가 있다. 그리고 코로나가 물러간 이후 장사가 잘 돼서 예비창업자들이 견학을 온다는 PC방 업주도 있다. 이 세 명의 PC방 업주는 동일 인물이다.

부산시 소재 블록버스터 PC방의 주인인 김민교 사장은 최근 들어 PC방 일이 즐겁다. 엔데믹 이후 매장 사정이 좋아지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어서다. 코로나 종식 이후에도 곡소리를 내고 있는 대다수의 자영업·소상공인들과 확실히 다른 근황이다. 부산 블록버스터 PC방을 만나보자.

황금상권 속 어둠의 PC방
블록버스터 PC방은 황금상권에 자리 잡은 PC방으로, 부산대학교 인근 역세권에 위치해 대학생 손님들과 뜨내기손님 모두를 아우를 수 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근처에 중고등학교까지 포진하고 있어 청소년들까지 품을 수 있다. 입지 조건으로만 보자면 PC방 업주들이 꿈에서라도 바라는 장소다.

어렵사리 도착한 2층 매장 블록버스터 PC방은 PC를 160대나 갖춘 준대형 규모다. 좌석 수와 비교해 실평수는 165평(545.5㎡), 총평수는 200평(661.1㎡)에 달한다. 산술적으로 이용자 1명에게 1평 이상을 할애한 넉넉한 공간 구성이다. 이러한 공간적 여유 때문에 팀룸(5인실) 3개, 방송룸(2인실) 2개에 별도의 대회석까지 갖추고 있지만 전혀 답답하지 않다.

PC 사양도 좋다. 일반석에는 지포스 RTX3060이, 프리미엄석에는 지포스 RTX4090이 탑재됐다. 프리미엄석에 자리를 잡은 주사율 360MHz의 게이밍 모니터는 그야말로 위풍당당하다. 이처럼 다양한 좌석들에는 별도의 요금이 책정된다. 시간당 요금제는 일반석 1,400원으로 시작해, 팀룸(1,500원), 프리미엄석(1,600원), 방송룸(1,700원), 대회석(1,800원) 순으로 100원씩 추가 요금이 붙는 식이다.

화려한 인테리어도 눈에 띈다. 휘황찬란한 조명이 요란했던 90년대 클럽의 분위기를 자아냈고, 초창기 PC방들보다 훨씬 어두운 실내가 인상적이다. 한편으로는 레인보우 LED 장식들과 맞물리면서 게이머를 환영하는 듯하다.

블록버스터 PC방 김민교 사장은 “매장을 오픈할 당시에는 혹시나 촌스럽게 느껴지지는 않을까 걱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뻔한 매장으로는 젊은 손님들에게 어필할 수 없다는 판단 하에 이렇게 꾸몄다”며 “아직까지는 손님들의 반응이 좋다. 이런 분위기의 매장을 처음 경험하는 젊은 손님들은 최신 게이밍 감성으로 받아들이고, 아저씨 손님들은 옛날의 향수를 느끼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지옥에서는 무기가 있어야
블록버스터 PC방의 입지는 훌륭하지만 동시에 살벌하기도 하다. 이런 위치가 PC방에 적합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김민교 사장뿐만이 아니기 때문에 무한경쟁 지옥상권이 형성된다. 실제로 역에서부터 블록버스터 PC방을 찾아가는 길에서 PC방 간판을 여럿 볼 수 있었다. 블록버스터 PC방은 경쟁 매장과 비교하면 역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건물 입구는 숨겨놓은 것처럼 찾기도 어려웠다. 좋은 상권 속에서도 불리한 조건인 셈이다.

김 사장은 “PC방 업주로서 이 상권은 정말 만족스럽다. 다만 경쟁이 심한 상권 속에서 매장의 입지는 불리하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생존을 보장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라고 평가했다.

PC방 경력 8년차인 김 사장은 지난 2021년 블록버스터 PC방의 문을 열기 한참 전에 PC방을 접었던 아픔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매장을 접을 당시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받은 이후 아직도 스승처럼 모신다는 ‘통영 사장님’의 입버릇이 ‘차별화된 정체성이 있는 PC방’이었다.

매장 문은 닫았지만 PC방에 대한 김 사장의 열정은 아직도 뜨거웠고, 통영 사장님과 의기투합해서 새로운 매장을 기획한 결과물이 바로 블록버스터 PC방이다. 매장 오픈을 준비하면서 스승님의 가르침을 추상처럼 받들었다. 유행을 선도하지 않고 뒤늦게 따라가려고 한다면 실시간으로 손해를 보는 중이라고 정신무장도 새롭게 했다.

PC방 이용자의 뇌리에 각인될 만한 세련된 이미지와 특별한 개성으로 무장해 승부수를 띄웠다. 앞서 언급했던 고유한 인테리어 및 컨셉별 좌석 차별화는 물론이고, 에이수스와 협업해 게이밍 브랜드 ROG(Republic of Gamers)로 매장을 도배한 것도 게이머에게 특별한 매장이라는 점을 어필하려는 목적이었다.

옛날식 PC방 업주의 생존법
이처럼 절치부심해서 오픈한 블록버스터 PC방이지만 마수걸이 손님은 코로나였다. 비장했던 각오는 물거품처럼 느껴졌고, 차별화를 위한 온갖 노력들 역시 수포로 돌아가는 듯싶었다. 매장 인테리어에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하나에서 열까지 전부 손수 처리한 노력들이 모두 허사가 됐다. 이제 막 결혼식을 올린 새신랑의 마음고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김 사장은 “신규 매장인데 PC 가동률이 나오지 않았다. 이 처참한 심정을 경험하지 못해본 사람은 죽었다 깨나도 절대 모른다”며 “전 재산을 털어서 오픈한 매장의 썰렁한 풍경은 눈 뜨고 보기 어려운 것이었다”라고 혀를 내둘렀다.

그러나 이런 넋두리는 마음에 썩 와닿지 않는 구석도 있었다. 평일 오후 4시에 방문한 매장에는 손님들이 꽉꽉 들어차 있었고, 이런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보고 있는 와중에 어두운 지난날 얘기는 공감하기는 어려웠다. 김 사장은 이내 분위기를 감지했는지 매장 한켠에 마련된 작은 창고로 안내했다. 화려한 매장과 대비를 이루는 누추한 창고에는 간이침대만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김 사장은 엔데믹까지 버텨서 매장을 살려보려고 이곳에서 먹고 자며, 말 그대로 여기서 살았다고 한다. PC방 업주가 매장에 오래 있으면 있을수록 효과가 있다는 고전적 마음가짐의 사장이라 이런 생활이 어렵지도 않았다. 다만 당시의 절박함을 잊지 않으려고 이 창고를 당시의 모습 그대로 내버려 뒀다고 설명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올해 6월부터 엔데믹 시대가 도래했고, 블록버스터 PC방의 PC 가동률은 가파르게 치솟았다. 김 사장은 “가동률도 가동률이지만 엔데믹 시대가 되면서 PC방 이용자들에게 블록버스터 PC방이 제대로 된 평가를 받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고 밝혔다.

남학생들의 모습이 과거의
대학교부터 중고등학교까지 끼고 있는 블록버스터 PC방의 주요 이용자층은 젊은 남학생들이다. 방과 후 몰려오는 대학생들은 팀 게임에 집중되는 경향을 띠는데, 5:5 팀게임 ‘리그오브레전드’의 점유율이 50%를 넘길 정도다. 2명이 오는 손님은 ‘FC 온라인’이고 중고등학생은 ‘발로란트’로 예측하면 십중팔구는 들어맞는다고 한다.

김 사장은 왁자지껄 떠들면서 게임하는 남학생들이 앞다퉈 팀룸으로 향하는 모습을 보면, 공간을 손해보면서 팀룸을 고집했던 판단이 옳았던 것 같아 기분이 좋으면서도, 더 만들었어야 했는데 3개에 그친 것 같아 아쉽다고 평가했다.

이어서 “나도 팀 게임을 좋아했고, 90년대 학창시절을 보냈다. 당시에는 PC방에서 친구들과 떠들면 아저씨들한테 혼날까봐 주눅이 들었다”라며 “그랬던 내가 이제는 남학생들에게 이런 맘 편한 게이밍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에 새삼 뿌듯함을 느끼기도 한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이런 김 사장의 생각은 블록버스터 PC방의 특징에도 고스란히 반영된다. 남학생은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지만 게임은 해야 하고 항상 배가 고프다. 알바생들의 음식 조리 업무에 대한 하소연을 듣는 것이 업주의 주요 일과일 정도로 남학생들의 음식 주문량이 많다. 주방 시설을 지금보다 더 보강할 계획도 세웠다.

김 사장은 음식의 퀄리티와 플레이팅에 공을 들이고 있다. 누군가는 한낱 PC방 스낵에 지나지 않는다고 폄하할 수도 있지만, 호텔경영학 전공자의 타협할 수 없는 부분으로, 알바들에게도 매일 같이 강조하고 있다. 음식이 손님들을 만족시키지 못하면 근처 음식점으로 가서 허기를 달랠 것이 분명한데, 그러면 PC 이용료 매출까지 하락하는 연쇄작용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한편, 블록버스터 PC방은 PC 가동률과 음식 매출이 높고 비율도 5:5를 자랑하는 대박 매장이지만 여느 PC방들과 마찬가지로 심각한 구인난에 시달리고 있다. 최저임금보다 웃돈을 얹어서 구인광고를 내고 있지만 그래도 쓸만한 알바생을 구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여기에 야간 알바를 뽑아서 쓰는 일은 난이도가 2배 이상 올라간다. 덕분에 김 사장도 매일 오전에 출근해서 오후 늦게까지 매장에서 온갖 잡일을 처리하는 신세다.

그는 “내가 옛날 사람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무인솔루션을 도입하거나 야간 영업을 내려놓고 싶지 않다. 야간에는 야간의 영역과 가능성이 있을 것이고, 사람의 손을 거치는 서비스와 그렇지 않은 서비스는 손님들에게 현격한 경험의 차이를 만든다”며 “매장이 어두워서 알바들 청소가 시원치 않다면 업주가 하면 된다. 조리 인력이 부족하면 내가 더 하면 된다. 인력관리도 PC방 업주의 역량이다. 24시간 업종의 강점을 발굴하고 블록버스터에 접목시키고 싶다”고 자신의 포부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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