月刊 아이러브 PC방 2월호(통권 399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PC방 게이밍 기어에 열정을 불태우는 업주가 있다면 이 업주의 매장은 천편일률적인 매장들과 무언가 다를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피크 PC방 삼전점에서는 PC방 업주들이 너도나도 들여놓은 앱코의 해커 K660 키보드, 로지텍의 G102 라이트싱크 마우스, 녹스의 NX-2S 헤드셋을 찾아볼 수 없다. PC방 점유율이 높은 제품은 다 이유가 있을 것인데, 단호하게 ‘NO’를 외치는 매장이다. PC방 업주의 경력이 10년에 달하는데도 보편적인 PC방 게이밍 기어 구성을 거부하는 피크 PC방을 들여다보자.

문을 연 순간부터 느낄 수 있는 고전적 정취
피크 PC방은 서울 송파구 학원가와 주택가 한복판에 자리잡은 매장으로, 상권과 위치는 딱 PC방이 있을 만한 곳이다. 지하 1층에 100평(약 348㎡) 규모의 PC방이라는 사전 정보는 최첨단 PC방을 상상케 했다. 그러나 막상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에서 맞닥뜨린 어둑한 분위기는 밝고 화사한 최신 매장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암시하는 듯했다.

출입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눈에 들어온 매장 풍경은 예상대로 짧지 않은 연식임을 확인시켜줬다. 2000년대의 어두운 조명과 비좁은 통로에서 예스러운 인상을 짙게 풍긴다. 더욱이 근무자들의 공간인 카운터와 주방은 2명만 있어도 가득 찰 정도로 협소했다. ‘아, 음식에 별 관심이 없는 고전파 PC방 업주구나!’라고 알아차리는 순간이었다.

시설대여업 본분의 게이밍 환경에 전력투구하는 피크 PC방의 정체성은 PC 사양에서도 드러난다. 그래픽카드 지포스 RTX3070Ti, CPU 인텔 i5 9600K가 최저선이다. 피크 PC방은 프리미엄 좌석 및 준 프리미엄 좌석도 운영하고 있다. 손님이 원하면 좀 더 고성능 PC로 구성된 좌석에서 쾌적하게 게임을 즐길 수 있다.

본격적인 취재에 앞서 흡연실에서 숨을 고르던 중 여느 PC방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안내문이 눈에 들어왔다. ‘이 가게 사장 마우스에 진심임’, ‘8,000Hz 키보드 대여’, ‘밥쇽 BA 이어폰 렌탈’ 등 게이밍 기어에 대한 내용이었다. 게임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 게이밍 기어를 제대로 갖춘 PC방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적지 않은 투자를 요하면서 유지·보수도 번거로운 대여 서비스는 업주가 게이밍 기어에 진심이라는 증거다.

선불결제기를 들여놓은 것도 근래
최고급 마우스를 홍보하는 체험 이벤트 엑스배너에도 눈길이 갔다. 그제야 배너 뒤에 처박혀있는 듯한 선불결제기가 눈에 들어왔다. 보통 선불결제기는 PC방에서 가장 핵심 위치에 있기 마련인데, 위치만 보면 완전히 찬밥신세지만 흠집 하나 없이 깨끗한 자태가 대조를 이뤘다.

아니나 다를까 이 선불결제기는 지난해 말 피크 PC방에 들어온 신입이었다. 2023년 중반까지도 이 매장은 후불요금제로 운영된 것이다. 피크 PC방은 요금제도 특이하다. 1시간당 1,200원이 아니라 20,000원당 14시간이 충전되는 식이다. 시간당 요금으로 환산하면 1시간에 약 1,400원 남짓이다.

피크 PC방 최성필 사장은 “손님들 중 PC를 켜두고 개인적 볼일을 보고 오는 등 편하게 이용하고 싶다는 요청이 많아서 어쩔 수 없이 선불결제기를 도입했다. 원래는 유료게임 시간 차감도 적용하지 않았던 매장이다”라며 “후불요금제는 PC방 업주나 근무자들에게 불편한 방식이기는 하지만 장점도 있다. 매장을 이용하는 손님들과 자연스럽게 대화하면서 피드백이 이뤄지는 기회를 제공한다”고 말했다.

PC방 업계는 업주가 매장에서 근무하지 않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고, 선불결제기로 인해 손님과 스킨십하는 시간이 극도로 줄어든 실정이다. 최 사장은 이런 변화의 흐름 속에서 많은 PC방 업주들이 잃어버린 자산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PC방은 단골이 없는 업종이 아니라 손님들이 자신의 의견과 피드백을 업주에게 전달하기 어려워진 업종이라는 것이다.

사장님이 미치면, 알바생과 손님도 달라진다
최성필 사장은 PC방을 창업하기 전부터 기계장치와 관련된 일에 종사했고, PC 부품과 게이밍 기어에 열정이 있었다. 특히 기계적인 하드웨어가 차지하는 비중이 큰 게이밍 기어 분야는 새로운 특기가 되었다. 이런 PC방을 알리기 위한 별도의 블로그도 운영하며 매장 소식을 전하고 있다.

다품종 소량으로 온갖 게이밍 기어를 갖추다 보니 창고이자 작업실이 필요해졌고, 주방 대신 확장한 작업실은 공구와 키보드 축, 마우스 스위치 및 게이밍 기어 수리용 부품으로 가득 들어차 있다. PC방 업주가 고심 끝에 손수 만들어 본 커스터마이징 기어와 PC도 전시하고 있는데, 작업실은 개방형으로 꾸며 손님들의 눈과 발이 쉽게 접근하도록 했고, 매장의 특징과 개성을 어필하고 있다.

피크 PC방은 초·중생 출입을 금지한 매장으로, 성인 손님의 비중이 크다. 그런데 성인 손님들은 피드백 대신 매몰차게 발길을 끊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이들의 불만 사항을 재빨리 파악하지 못하면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진다. 학원 상권에서 초·중생 출입 금지는 상업적 자살행위지만 성인 손님들의 불편과 게이밍 기어 고장은 방지할 수 있었다. 더욱이 몇 년 전부터 ‘샷건’이라는 문화 아닌 문화가 학생들 사이에 퍼져나갔는데, 게이밍 기어를 금과옥조처럼 다루는 최 사장에게 ‘샷건’은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게이밍 기어에 특화된 피크 PC방은 근무자에게도 특별한 역량을 요구한다. 각종 게이밍 기어의 특징을 숙지하는 일이다. 인터페이스가 다른 마우스를 손님들에게 안내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인데, 일종의 가이드 역할을 겸하는 셈이다. 또한 청소도 240Hz 모니터가 성능을 충분히 발휘하도록 물 얼룩 제거에 신경을 쓰면서도, 한편으로는 고가의 제품에 흠집이 나지 않도록 특수클리너를 조심스레 사용한다.

“장비 탓은 FPS 게이머들만의 특징 아니야”
최 사장은 “PC방이 손님들에게 다양한 게이밍 기어를 선보인다는 것은 업주의 기준을 통과했다는 의미”라며 “좌석에 앉은 손님은 PC 사양이 아니라 기어를 통해 시각과 촉각으로 PC방의 인상을 결정한다”고 강조했다.

피크 PC방은 매장에 도입하기에 앞서 업주와 매니저가 직접 사용해보면서 해당 제품의 경쟁력을 검증한다고 한다. 제품의 특장점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FPS석과 일반 RPG석 그리고 프리미엄 좌석으로 구역을 나누어 세팅하고 있다. 손님들이 플레이하는 게임 장르와 취향에 맞춰 특화된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서다. 아울러 피크 PC방 디폴트 제품이 되기에는 부족하나 마니아들의 선호가 확실한 제품을 선별해 대여 서비스 품목으로 지정한다.

게이밍 기어에 까탈스러운 FPS 손님만으로는 장사가 어렵지 않냐는 질문에 최 사장은 손사래를 쳤다. RPG 장타 손님을 타깃으로 했던 매장에 가당치도 않은 이야기라는 것이다. PC방 현장에서 근무하면서 게임에 진심인 손님들과 몇 마디 나눠본 알바생들은 한결같이 게이밍 기어의 중요성을 말한다. FPS 게이머들에 비해 잘 드러나지 않아서 그렇지 RPG 게이머나 AOS 게이머도 분명 선호하는 제품이 있다. RPG는 체류시간 측면에서 PC방이 애정할 수밖에 없는 장르인데, 그 대권이 모바일로 넘어간 것은 PC방에 뼈아픈 일이다.

피크 PC방은 다른 매장들에 비해 FPS의 점유율이 높은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눈에 띄는 수준은 아니다. 오히려 AOS 장르의 비율이 너무 높은 것을 염려하고 있을 정도다. 국내 게이머들의 취향이 더욱 다양해지는 가운데, PC방은 그 게이머들 중 극히 일부만 수용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최 사장은 다양하면서도 높은 성능의 게이밍 기어가 나머지 게이머들을 PC방으로 불러줄 집객 아이템이라고 확신한다.

게이밍 기어에 미친 사장의 PC방 게이밍 기어는?
최 사장은 “PC방에서 게임하는 모든 손님들이 좋은 제품을 썼을 때 그 장점을 즉시 체감하거나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다른 매장에서 그저 그런 제품을 썼을 때는 대번에 단점을 파악하고 빠르게 역체감을 느낀다”라며 “60Hz 모니터에서 144Hz 모니터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PC방에 지각변동이 일어났듯, 올해는 8K 마우스와 자석축 키보드가 대격변을 일으킬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런 생각을 가진 PC방 업주의 매장에서 한자리 차지하는 영예는 어떤 제품일까? 일단 마우스는 글로리어스였다. 마우스 성능을 가늠하는 각종 지표에서 훌륭한 점수를 기록한 것이 선택한 이유인데, 아직 국내에서는 인지도가 낮아 집객을 기대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 하지만 PC방 게이밍 기어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인 A/S 부분에서 유통사 제이웍스와 7년 동안 신뢰를 쌓았기 때문에 망설임은 없었다.

글로리어스 마우스는 뛰어난 성능 때문에 FPS 마니아들에게 어필할 요량으로 들여놓았지만 엉뚱한 곳에서 반응이 있었다. 바로 여성 손님들이다. 이들은 마우스 성능에는 다소 둔감한 경향이 있는데, 특색 있는 비주얼 때문에 호평을 얻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반응을 두고 피크 PC방의 이치호 매니저는 PC방 게이밍 기어를 바라보는 안목이 넓어졌다고 말했다.

헤드셋은 가격으로 악명(?)이 높은 커세어였다. 최 사장은 “커세어가 의외로 PC방과 궁합이 좋은 브랜드다. 쓸데없는 펌웨어 설치가 없어 PC방 컴퓨팅 환경에 아주 적합하고, 성능이야 말할 필요도 없다”고 평가했다. 키보드는 ASUS ROG 스트릭스였다. 온보드 메모리 설정은 PC방에 부적합한 단점이지만 체리 스위치를 통한 정확한 스트로크, 높은 응답성, 편안한 탈부착 팜레스트는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었다.

마치며…
이번 PC방 탐방에서는 조촐한 주방과 으리으리한 게이밍 기어로 피크 PC방의 개성을 한껏 느낄 수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평범한 PC방 업주로서의 고민도 들을 수 있었다. 피크 PC방은 다양한 기어와 고성능 PC를 통해 수준 높은 게이밍 환경을 어필하고 싶지만, 요금이 문제라는 것이다.

PC방에서는 집과 다른 게이밍 체험이 가능하고,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집에 PC가 있지만 구태여 PC방을 찾게 되고, PC방은 다시금 최신 제품을 들여놓고, 진성 게이머들이 또다시 PC방으로 향하는 선순환 고리가 박살이 나버렸다는 문제의식이다.

먹거리를 어필해 매출을 올리는 방향이 현실적이지만, 게이밍 기어의 상태를 악화시키는 기름기를 피할 길이 없다고…. 최 사장은 “요금 문제로 인해 음식을 억지로 끌고 가는 PC방 사장님들이 많은 것으로 안다”라며 “게임하는 식당이 아니라 게이머 감성으로 충만했던 PC방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PC방 업주와 손님들의 노력이 모두 필요한 것 같다”라는 말로 끝인사를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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