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에게는 앞으로 나아가려는 본능이 있다. 어느 누구도 뒤처지거나 퇴보하고 싶진 않을 것이다. 가장 보편적인 방법은 한 걸음씩 내딛는 것이다. 다만 시대의 흐름이나 외부 환경에 따라 빨리 걸어도 뒤처지기도 하고, 제자리걸음만 하는데도 조금씩 앞서기도 한다.

‘티끌 모아 태산’이란 속담은 보통 긍정적인 의미로 쓰이지만, 부정적으로 사용될 때도 있다. 작은 것이라도 쌓이면 큰 것이 된다는 것은 한 푼씩 모아 큰돈을 만들 수도 있지만, 작은 티가 모여 큰 결점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PC방을 비롯해 모든 사업이 전자였으면 좋겠지만, 후자로 귀결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1998년부터 수십 년간 PC방을 다녀본 경험을 돌아보니, 잘 다니던 PC방을 다른 곳으로 옮기게 된 이유는 때마다 조금씩 달랐다. 20년 전 30석 정도에 불과한 작은 규모의 PC방에서 60석 규모의 ‘대형 PC방’으로 옮기게 된 계기는 단골이었던 학생들을 마치 당연한 듯 직원처럼 이런저런 일을 시키던 당시의 업주 때문이었다. 몇 년 전 대형 PC방을 다니다가 다른 곳으로 옮긴 이유는 키보드의 불결함이 바이러스처럼 한두 자리에서 여러 자리로 퍼져나가듯 관리가 되지 않아서였다.

눈에 띈 결점 하나가 다른 곳으로 옮기게 되는 최우선 사유는 아니다. PC 하드웨어부터 직원까지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도 ‘아, 다음엔 다른 PC방에 가야겠다’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오후 5시에서 7시 사이로 비슷한 시간대에 종종 방문해 보면, 활력 넘치는 중고생들이 록밴드 보컬처럼 내지르는 샤우팅에 질릴 때도 있다. 같은 고함이라 해도 어떤 때는 ‘힘이 넘치는구나’ 정도로 넘어가지만, 어떤 때는 ‘아 시끄러워 죽겠네’ 식으로 다른 반응이 나오기도 한다.

한번은 주말 오후 친구들과 두어 시간 게임을 즐기러 자주 가던 PC방에 들렀다. 사람들이 북적북적하던 와중에 운 좋게 세 자리가 연이어 비어 있었다. 그런데 그중 두 자리가 이전 사용자가 신나게 게임을 즐겼던 흔적이 빈 음식 그릇과 음료 컵으로 남아 있었다. 자리 이용을 위해 직원에게 정리를 부탁했는데, 자리가 치워지기까지는 전원을 켜고 로그인한 뒤에도 20분가량이 더 걸렸다.

얼핏 ‘바쁠 때는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당연하다. 특별한 오더가 없는 한 고객 대응은 순서대로니까, 앞선 음식 주문이 넘쳐서 이를 모두 소화하고 자리를 치우기까지 그만큼의 시간이 걸렸을 수 있다. 하지만 10분가량 지났을 즈음 담배를 한 대 피우러 흡연실로 가는 와중에 한가해 보이는(이는 주관적일 수 있음) 직원이 눈에 띄었다. 이미 얘기했으니 자리를 치워달라고 재차 말하진 않았는데, 바쁘다 보니 이런 요청 한두 가지를 잊고 지나쳤을 수도 있다.

사람마다 어떤 이슈를 대하는 반응은 제각각이다. 사소한 문제 하나도 그냥 넘어가지 않고 조목조목 반박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대수롭지 않게 지나치는 사람도 있다. 또한, 낮은 빈도라도 이런 사소한 문제들을 번번이 겪다 보면, 티끌이 모여 태산이 되기 전 뭉치 정도만 돼도 다른 PC방으로 발길을 돌리는 사람도 있다.

PC방에서 눈에 거슬리는 것은 따지고 보면 코웃음을 칠 만큼 사소한 것들이다. 키보드에 키캡이 한두 개 정도 없어도 게임을 즐기는 데 큰 지장은 없다. 옆자리의 키보드에서 빼거나 옆자리에 앉으면 그만이다. 장패드에 음료를 쏟은 흔적이 있거나 때가 타 있어도, 상대적으로 깨끗한 다른 자리에 앉으면 된다. 자주 오는 것 같은 학생들이 질펀한 육두문자를 남발하며 떠들어도 조금 먼 자리에 앉아 헤드셋을 쓰면 그만이다.

그런 이슈들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사소한 단점으로 남기도 하고, 점점 누적돼 본격적으로 해결해야 할 심각한 문제가 되기도 한다. 좌석을 나누는 유리 칸막이에 있는 음료 얼룩이 반년이 지나도록 그대로 있을 때, 시끄러운 학생들 때문에 불평하는 다른 손님들이 많은데도 별다른 조치가 없을 때, 이전 고객이 즐긴 라면의 흔적을 1시간이 지나도록 보고 있어야 할 때 등…. 업주나 직원과 친분이라도 있는 고객이라면 이를 알려주기라도 하겠지만, 이를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모든 것이 빨라지고 있는 세상이다. 출산율은 하루가 다르게 곤두박질치고 있고, 어린 친구들은 OTT에서 드라마나 영화를 1.5배속으로 빠르게 감아서 보는 게 추세라고 한다. PC방을 이용하는 연령대는 2000년대 초반이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어린 친구들은 세상을 좀 더 빠르게 받아들이려 하고 있는데, 반대로 생각하면 긍정적 사고와 함께 부정적 사고도 빨라졌다는 뜻이다.

예전에는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보여도 그러려니 하고 지나쳤다면, 요즘은 그 인내심이 더 줄어든 것 같다. 좋아하는 커피나 음식 메뉴가 없는 것은 오히려 PC방을 떠나는 이유로는 순위가 낮다. 가장 기본적인 이용 환경에 대한 불신은 이제 쓰리아웃 체인지에서 투아웃 정도로 더욱 엄격해졌다. 반대로 생각하면 기본만 지켜도 단골이 떠나는 일은 어지간해서는 생기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역시 ‘기본기’가 가장 쉬우면서도 어려운 것 같다.

자주 가는 역세권의 100곳 넘는 가게 중 20년 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는 가게는 손에 꼽을 정도다. 빠르게는 계절이 바뀌기 전에 간판이 갈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업종의 특성상 PC방이 장수하기는 힘든데, 10년 넘게 한 자리를 지키고 있는 PC방도 있다. 오래됐지만 지저분하지 않고, 최신 제품은 아니지만 성능에 이상이 없다. 제자리걸음 같아 보이지만 지금으로선 한걸음 한걸음에 충실한 곳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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