月刊 아이러브 PC방 12월호(통권 397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PC방 업계에 큰 부담으로 작용했던 일회용품 사용금지 규제가 계도기간 종료 직전에 극적으로 완화됐다. 정부가 한 발짝 물러나 종이컵과 플라스틱 빨대 사용을 허용하면서 PC방 업주들은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일회용품을 둘러싼 갈등은 오히려 심화되는 분위기다. 규제 완화 발표 이후 각계각층에서 쏟아내는 불만의 목소리는 어째 더 커지고 있다. 단순히 일회용품 사용을 한쪽은 찬성하고 다른 한쪽은 반대하는 대립 구도가 아니라 보다 복잡하고 입체적이다. 여당과 야당, 환경단체와 소상공인, 사업주와 노동자들이 각각 나름의 입장으로 일회용품 규제를 바라보기 때문이다.

아울러 주목할 부분은 환경부를 제외한 수많은 이해 집단이 합심해 한목소리로 환경부의 정책을 비판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락가락 바뀌는 규제로 인해 사회적 비용과 혼란이 커지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우선 PC방 업계는 일회용품 규제가 발표된 순간부터 탁상행정의 표본이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환경보호라는 아름다운 가치에 도취돼 이를 현실에서 실행할 당사자로서 큰 희생을 치를 수밖에 없는 자영업·소상공인들을 겁박한다는 지적이었다.

실제로 정부는 코로나 사태로 인해 벼랑 끝에 내몰린 자영업·소상공인들에게 지원을 해줘도 모자랄 판에 저렴하고 편리한 제품 대신 비싸고 번거로운 제품을 쓰라고 법의 이름으로 으름장을 놓았다. 일회용품 사용을 줄여 환경을 보호하자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숨돌릴 틈도 주지 않고 몰아붙이는 규제에는 1년 간의 계도기간 부여에도 동참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았다.

결국 환경부는 지난달 초 종이컵과 플라스틱 빨대를 규제 대상에서 제외하며 사실상 항복을 선언했고 PC방 업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그런데 환경부의 발표가 있었던 당일, 어떤 매장들은 탄식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가올 겨울 성수기를 대비한 PC 업그레이드를 내년으로 미루면서까지 계도기간 종료 시점에 맞춰 다회용품을 준비했던 PC방들이다. 비싼 돈 주고 들여온 다회용 컵과 그릇, 종이 빨대와 스테인리스 수저는 주방 구석 한켠에서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정부 정책을 따르려다 헛돈만 쓴 꼴이다.

영세한 카페들도 처지는 비슷하다. 매장의 규모를 줄여가면서 테이크아웃 매장으로 재 오픈하거나 비싼 로봇을 들여놓는 등의 노력은 헛수고가 됐고, 선제적으로 다회용기 체제로 전환하거나 비품 거래처를 바꾸는 등의 실천은 물거품이 됐다.

아울러 지난달에는 종이빨대 생산업체 대표의 참담한 심정을 담은 인터뷰 영상과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게 된 업체 직원들의 사정도 알려졌다. 종이빨대 수요가 일순간에 끊기면서 이미 판매된 분량도 환불 문의가 쇄도하고 있고, 대량으로 구매한 자재·생산·운영비도 고스란히 손실됐다. 업체 대표는 해고가 불가피한 직원들의 퇴직금까지 빚으로 떠안을 판이다.

국회에서도 여야를 가리지 않고 환경부에 대한 질타가 이어졌다.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는 ‘규제 논의를 오래 진행하더니 무책임할 정도로 철회가 빨랐다’, ‘친환경 정책을 믿고 사업을 추진한 종이빨대 생산업체에 대한 보상적 지원 여부’, ‘혼란을 최소화하는 친환경 정책 추진’ 등 여야 의원들의 지적이 잇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환경부는 뒤늦게 지원책을 마련하고 있다. ‘일부 일회용품에 대한 규제 철회’로 피해가 불가피한 친환경 대체재 생산업체들의 현황을 파악하고 면담을 진행했다. 환경부는 이들 업체들에게 우대 금리나 정책 금융 등 금융 지원부터 액수 등 지원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환경부 한화진 장관은 “이번 발표가 일회용품 사용규제의 백지화는 아니다. 친환경 대체재 제조 회사에 정책금융, 우대금리 등을 논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린피스나 녹색연합 등 환경단체들도 종료일을 특정하지 않은 일회용품 규제 무기한 연장 발표는 일회용품 감축 포기라고 지적했다. 특히 진통을 겪으면서도 구축되는 듯했던 환경을 위한 불편 감수라는 사회적 합의를 환경부가 흔들고 있다는 비판도 나왔다. PC방 등 자영업·소상공인, 종이빨대 생산업체 노사, 정치권과는 다른 관점이지만 이들에게도 환경부의 행태는 비판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한편, 일회용품 사용량 감축 자체는 시대적 과제로, 전 정부와 현 정부 모두가 동일하게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일회용품 관리 규제 완화와 함께 발표했어야 할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자영업·소상공인들 사이에서는 정부가 일회용품 규제 철회라는 시대착오적 정책을 내놓은 이유는 자영업·소상공인을 배려해서가 아니라 내년 4월 총선을 고려한 정치적 포석에 불과하다는 의구심을 내비치고 있다.

일회용품을 둘러싼 이번 사태는 규제 정책의 시행과 철회가 얼마나 커다란 후폭풍을 일으킬 수 있는지, 얼마나 신중하게 진행되어야 하는지 짐작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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