月刊 아이러브 PC방 9월호(통권 394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지난달 길거리와 쇼핑몰에서 잇따라 벌어진 흉기난동 사건으로 사회 분위기가 흉흉해졌다. 불특정 다수를 향한 반사회적 범죄를 저지른 범인은 사회·경제적으로 고립됐던 청년으로, 전문가들은 범행 원인을 청년 사회 전반에 불평등·불안정 심리가 누적된 결과라고 분석했다.

그런데 경찰과 일부 몰지각한 언론들은 엉뚱하게도 강력 범죄의 원인을 게임 탓으로 돌리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심지어 하루 평균 1시간도 안 되는 PC방 이용 이력을 문제 삼으며 삐딱한 선입견을 드러냈다. 잊을 만하면 튀어나오는 게임혐오가 최근 잇따라 발생한 ‘묻지마 범죄’를 빌미로 다시금 고개를 드는 형국이다.

잇따라 발생한 묻지마 범죄
지난여름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 30대 남성 조선이 길거리에서 흉기를 휘둘러, 20대 남성 1명을 살해하고 3명에게 크고 작은 부상을 입혔다. 이처럼 당혹스러운 묻지마 범죄가 발생한 지 채 열흘이 지나지 않아, 경기도 성남시 서현동에서는 20대 남성 최원종이 차량을 인도로 돌진시킨 후 인근 백화점으로 들어가 무차별적으로 흉기를 휘둘러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 두 사건의 연관성은 낮지만 피의자들에게선 공통점이 발견된다. 먼저 신림동 사건의 조선은 지난해 12월부터 최근까지 대출받은 300만 원으로 생활하며 외출은 거의 하지 않고 인터넷 커뮤니티 활동과 게임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현동 사건의 최원종 역시 사회와 단절된 생활을 하며 인터넷 커뮤니티에서의 소통이 일상의 전부였다.

경찰은 이들이 인터넷 커뮤니티 활동을 했던 것에 주목하고, 이 공간에서 범죄를 모방하는 자가 나타날 것을 경계했다. 사건 발생 후 비슷한 범죄 예고가 다수 포착됐으며, 이들은 범죄를 저지르기 직전 검거되거나, 자수하는 등 다행히 미수에 그치게 됐다.

그런데 불특정 다수를 향한 반사회적 범죄로 결론지어질 이번 사건들은 엉뚱하게도 ‘게임’에 몰입한 나머지 저지른 범죄로 그려지게 된다. 지난달 11일 서울중앙지검 전담수사팀이 신림역 칼부림 피의자인 조선에 대한 구속기소 브리핑에서 “현실과 괴리된 심각한 게임중독 상태에서 게임하듯이 범행을 저질렀다”며 “게임중독이 범행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고, 언론들은 이를 그대로 받아 적었다.

수사당국의 이런 무책임한 발상은 이후에도 이어진다. 지난달 서울 관악산 산책로 인근에서 성폭력 살인 사건이 발생했는데, 경찰은 피의자 최윤종(30)이 PC방을 다닌 이력을 주목했다. 경찰에 따르면 최 씨는 약 2년간 PC방에서 570시간 동안 게임을 한 것으로 조사됐는데, 이는 하루 평균 1시간이 채 되지 않는 시간이다.

강력 범죄와 게임을 억지로 엮으려는 모습에 게임 관련 업계에서는 강력한 우려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한국인터넷PC카페협동조합은 성명서를 통해 “최근 다수의 언론보도에서 범죄자가 PC방을 방문했던 사실을 두고 해당 범죄자가 게임중독자라든지, PC방과 게임이 범죄의 온상이고 범죄의 원인이 됐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기사를 상당수 찾아볼 수 있다”며 “기사를 통해 마치 PC방이 각종 범죄의 근원지이고 PC방 이용자는 잠재적 범죄자인 것처럼 받아들이게 될 것”이라며 유감을 표했다.

게임 속에서 강도행각이 가능하다고 모두가 현실에서 실행에 옮기지 않는다.
게임 속에서 강도행각이 가능하다고 모두가 현실에서 실행에 옮기지 않는다.

바보야 범행 원인은 게임이 아냐
범죄자가 살인을 저지른 것에 게임을 한 것이 과연 얼마나 영향이 있을까? 이를 알아보기 전에 우선 이들이 최근 겪어왔던 삶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검찰이 내놓은 수사 결과에 따르면 신림동 사건 피의자 조선은 짧게는 며칠, 길게는 1년여간 지속하던 단기 일자리에 종사해 왔다. 단기 일용직 근로자로 생활하며 안정적이지 못한 삶을 살아온 것인데, 특히 그는 직장을 잃고 대출받은 300만 원으로 생활하며 집 앞 편의점에서 담배나 먹거리 등을 사는 것을 제외하면 사회와 단절된 생활을 이어왔다. 그나마 연결된 소통 창구는 인터넷 커뮤니티와 게임뿐이었다.

서현동 사건 피의자 최원종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비정기적인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 외에 이렇다 할 직업 없이 생활해왔다. 디시인사이드 등 커뮤니티에서 활동한 것을 제외하면 최 씨의 경우 게임에 대해 딱히 언급된 바는 없다.

두 사건 피의자들의 특징을 살펴보면 안정적이지 않은 생활과 사회와의 단절, 커뮤니티 활동 등을 꼽을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심화된 노동시장의 불안정성이 이들의 반사회적 분노를 키웠을 것이라 지적한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요즘은 서울대를 졸업해도 취업을 걱정하는 시대”라며 “비정규직 노동 등 불확실·불안정한 일자리가 늘어날수록 사회적 신뢰가 낮아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청년 사회 전반에 불평등·불안정 심리가 누적됐고, 그 임계점에 다다른 것 같다”며 “저성장과 일자리 정책 실패로 청년들이 독립적인 성인으로 넘어가는 이행기에 좌절을 겪고 있다”고 봤다.

결국 불안한 미래에 좌절한 청년 세대가 불특정 다수를 향한 반사회적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분석이다. 충격적인 묻지마 살인 사건이 발생하자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에 우후죽순 등장한 범죄 예고는 이런 분석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범죄자들이 게임을 즐긴 것이 범행에 영향을 미쳤다는 수사당국의 소견은 근거가 빈약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60대 인구의 일자리는 늘어난 반면, 20대 청년층의 일자리는 대폭 감소했다 (자료=통계청)
60대 인구의 일자리는 늘어난 반면, 20대 청년층의 일자리는 대폭 감소했다 (자료=통계청)

‘게임=질병’ 잘못된 인식부터 바꿔야
게임 업계에서는 지난달 17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제2회 게임문화포럼을 개최하고, 최근 발생한 묻지마 살인사건과 게임이 어떤 영향이 있었는지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날 토론에 참석한 국내외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들은 “강력 범죄에 대한 실제 원인을 찾기보다 게임중독으로 몰아가는 것은 본질을 놓치는 행위”라며 입을 모았다.

한덕현 교수(중앙대 병원 정신건강의학과)는 “문제를 일으킨 사람이 과거에 게임을 했다는 작은 팩트에만 의존한 것에 정신과 의사로서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블라단 스타서빅 교수(시드니대학교 정신의학과)는 “해외의 끔찍한 사건들의 배경을 연구할 당시, 결과적으로 굉장히 다양하고 복잡한 문제가 섞여 있었다”며 “사건의 원인이 단순히 게임 때문이라고는 볼 수 없었다”고 밝혔다.

총기류로 대결하는 슈팅 게임에 대한 오해를 지적하는 의견도 있었다. 에스펜 올세트 교수(코펜하겐IT대학교 게임학과)는 “미국 총기난사범의 관심사를 조사한 적이 있었는데, 몇몇은 게임을 즐겼지만, 대부분은 게임을 즐기지 않았다”고 말했다.

올세트 교수에 따르면 미국 총기난사범의 경우 공통적으로 글을 쓰거나 시를 읽고, 연극을 즐기는 등 문학적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것을 좋아하는 특징이 있었다. 올세트 교수는 “총기난사범이 문학을 좋아했다고 해서 문학을 문제 삼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 게임을 단순한 취미의 영역으로 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특히 올세트 교수는 게임의 긍정적인 효과를 주목했다. 그는 “사회적으로 즐길 거리가 많지 않을 때 게임은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문화매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강력 범죄를 저지른 피의자들이 즐겼던 게임은 어쩌면 그들이 생활 여건상 유일하게 즐길 수밖에 없는 여가생활이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한편, 이날 토론에서는 국내 도입이 머지않은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에 대한 이야기도 나와 주목됐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표준질병코드에 게임중독을 등재한 바 있으며, 국내에서도 이에 대응해 질병코드 도입을 조만간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블라단 스타서빅 교수는 게임이용장애에 대해 “세계적으로 논란이 많은 주제”라면서 “여전히 게임이용장애의 진단 기준과 정확성에 대해 논란의 여지가 많다”며 진단 기준이 얼마나 정확하고 정당성이 있는지에 대해 지적했다.

과거 박근혜 정부 당시 정부여당은 게임을 알코올, 마약, 도박과 함께 의학적 치료가 필요한 4대 중독으로 규정한 바 있다. 이후 WHO는 지난 2019년 국제질병표준분류기준(ICD)에 게임이용장애(게임중독)를 정식 등재했으며, 국내에서는 국제표준을 따르는 관행에 따라 도입이 확실시되고 있다. 이에 대해 국제표준을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도록 하는 법률 개정도 진행 중이다.

게임이용장애가 국내 질병코드에 정식 등재된다면 앞으로 강력 범죄가 발생할 시 게임이 원인으로 지목되는 상황이 더 자주 나타날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인다. 게임은 단순한 취미의 영역이라는 다수의 전문가들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게임을 비뚤어진 시선으로 바라보는 모습은 쉽게 바뀌지 않을 것으로 보여 우려된다.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국내 도입 시기가 점점 다가오고 있다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국내 도입 시기가 점점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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