月刊 아이러브 PC방 6월호(통권 379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다음 소식입니다. 인천의 한 가정집 컴퓨터에 설치된 디스플레이포트, 일명 DP 케이블이 갑작스럽게 파업을 선언했습니다. 전날까지 멀쩡히 작동하던 화면이 켜지지 않자, 주인집 아들래미가 아버지에게 도움을 요청했는데요, 확인 결과 DP 케이블이 제대로 일을 하지 않아 발생한 일로 확인됐습니다. 이 때문에 아들래미는 무려 이틀이나 게임을 즐기지 못해 패닉 상태에 빠졌다고 합니다.

그래픽카드와 모니터를 연결해 화면을 볼 수 있게 해주는 이 DP 케이블은 고해상도 환경에서 HDMI 포트를 대체할 수 있는 차세대 인터페이스로 각광받고 있습니다. 디스플레이 연결 케이블이 없다면 아무리 PC 사양이 좋아도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현장에 나가 있는 김피시 기자가 파업 중인 DP 케이블을 만나 사정을 들어봤습니다.

고개 떨군 DP “게임 못하게 된 아드님께 사과드린다”
김피시(이하 김): 안녕하세요.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DP케이블(이하 디): 안녕 못하다. 이름은 디피다.

: 네 디피포트씨, 왜 갑작스레 파업을 하시게 됐는지…

: 디피포트가 아니라! 디피다! Display Port, DP! 날 디피포트라 부르는 건 ‘역전 앞’이라 부르는 것과 같은 오류를 범하는 거다. 조심해라.

: 네네 생김새만큼이나 깐깐하시네요. 아무튼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 단어 그대로 나는 컴퓨터에서 만드는 영상을 모니터로 보내주는 역할을 한다. 기존 D-sub, DVI 등을 대체할 수 있는 규격으로, HDMI(High Definition Multimedia Interface)와 더불어 현재 PC 시장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단자다.

: 그렇군요. 최근 그래픽카드에 HDMI 포트보다 DP가 더 많이 배치되는 걸 보면 대세가 맞긴 한가봅니다.

: 내가 HDMI보다 늦게 개발되긴 했지만 확장 속도는 HDMI보다 더 빠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장점은 HDMI 포트에 적용되는 특허 사용료가 없다는 점이다. 물론 성능도 내가 더 낫긴 하지만 어차피 지원 성능의 상한선으로 따지면 딱히 범용성차이는 없는 수준이거든.

: HDMI는 2.0 버전이 4K 60Hz까지 지원하는데, 그 정도면 충분한 수준 아닙니까?

: 원래 기술은 상용화보다 두세 걸음 앞서간다. 지금 PC방 해상도는 FHD 240Hz 정도가 최고 수준이고 2K 해상도는 많지 않아서, HDMI나 나나 사용상에 큰 차이는 없다. 다만 버전에 따른 성능 지원은 내가 한 수 높다. HDMI는 2.0에서 4K 60Hz까지만 지원하지만, 나는 1.4 버전에서 4K 120Hz까지 구현할 수 있다. 놀랍지 않나?

: 딱히 놀랍진 않습니다만, 4K 해상도에 120Hz 주사율을 지원하는 모니터가 꽤 있긴 한데 그 화질을 제대로 구현하기는 어렵지 않나요? 한 마디로 ‘오버스펙’ 아니냐는 말입니다.

: 맞다. 어지간한 고성능 그래픽카드가 아니면 QHD 이상의 해상도에서 프레임 높이기가 쉽지 않지. PC방 모니터 평균 해상도가 아직도 FHD인 이유다. 더 좋은 그래픽카드를 쓰면 되지만 그게 어디 쉽냐고. 엔비디아 RTX3080 정도는 돼야 그나마 4K 해상도에서 비벼볼 시도라도 할 거다.

취재 중 돌변 “이렇게는 더 일 못 하겠다”
: 본론으로 넘어가서, 왜 갑자기 파업을 선언하신 겁니까? 지금까지 불만 없이 잘해오신 걸로 들었습니다만.

: 기자 양반, 자기가 취재한 거 열심히 기사로 쓰고 있는데 갑자기 누가 목을 탁 쳐서 기절시키면 어떻겠나?

: 그게 무슨…? 케이블이 모니터나 그래픽카드에서 빠진다는 얘기인가요? 당신은 HDMI 포트와 달리 헤드에 고정 핀도 있어서 잘 안 빠질텐데?

: 바로 그거다. 보통 내 길이가 한 1.2m 되니까 그래픽카드하고 모니터 사이가 멀어서 못 쓸 일은 별로 없다. 근데 간혹 케이블이 어디 테이블 밑에 끼어 있던가, 다른 선들이랑 묶여 있던가 해서 케이블이 좀 당겨질 수는 있지 않겠나?

: 그게 파업이랑 무슨 관계가 있죠? 주변을 좀 여유롭게 해서 자기만의 공간을 가지고 싶다는 겁니까?

: 아니, 중요한 건 내가 일하던 컴퓨터를 쓰는 사람이다. 한타싸움에서 밀리는 게 내 탓은 아니지 않나? 근데 사람들은 뭐가 잘 안 될 때마다 모니터를 쥐고 흔들어대면서 화풀이를 한단 말이다. 그러면 모니터 쪽의 포트에 꽂혀있던 내 턱이 빠질 것처럼 흔들린다. 내가 직접 말을 못해서 그렇지 이거 진짜 아프다.

: 아, 그러면 처우의 문제라기보다 사용자의 부주의가 문제였다는 말이군요.

: 바로 그거다. 심지어 내가 잡혀 온 이유가 파업인데, 그게 자의적인 게 아니라 내가 부상을 당해서 일을 못 하게 된 거다. 자꾸 모니터를 잡고 흔들어대니까 포트 쪽이 흔들리면서 핀이 제대로 접지가 안 됐고, 그게 반복되다 보니 나뿐 아니라 모니터쪽 포트까지 문제가 생긴 거라고.

: 이제야 진실이 밝혀졌군요. 사실 디피씨가 가야 할 곳은 수사기관이 아니라 의료기관, 아니, 수리기관이었습니다. 월급이나 처우개선을 위한 파업을 한 것이 아니라 사용자의 분노로 인한 파손이 문제였습니다.

: 잠깐만, 얘기 아직 안 끝났는데 누구랑 얘기하고 있나?

: 음, 디피씨, 요즘 1.4 버전 DP 케이블이 얼마인지 아십니까?

: 1m짜리가 한 만 원쯤 하는 걸로 알고 있다.

: 그러면 고장난 케이블을 수리하는 비용은요?

: 잘 모르겠다.

: 그렇다면, 고장난 케이블을 수리하는 것과 새로 사는 것 중 어떤 게 더 나을까요?

: 잠깐만… 설마 날 그냥 폐기하겠다는 건가? 내가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데, 내 잘못도 아니고 고장을 내놓고선 그냥 헌신짝처럼 버린다고!? 

야이 X$%@#%%^;!!

: 지금까지 취재현장에서 김피시 기자였습니다. 야 카메라 꺼!
 

HDMI는 핀 19개, DP는 20개를 사용한다.
HDMI는 핀 19개, DP는 20개를 사용한다.
핀 개수는 같고 크기만 작은 mini D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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