月刊 아이러브 PC방 9월호(통권 382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한 영업제한이 해제된 후 PC방 업계에 다시금 이스포츠 바람이 불고 있다. 이미 많은 게임사들이 PC방을 활용한 이스포츠 대회를 계획 중인 것으로 알려졌고, PC방 업주들에게도 익숙한 대통령배 이스포츠 대회도 근래에 있었다.

PC방 업계 양대 단체인 (사)한국인터넷PC문화협회(회장 김종우, 이하 인문협)와 한국인터넷PC카페협동조합(이사장 김기홍, 이하 PC카페조합)도 전국적인 규모의 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다시금 날갯짓을 시작하는 PC방 이스포츠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자세히 살펴봤다.

대한민국이 보유한 천혜의 인프라
국내에서 이스포츠의 태동은 PC방과 마찬가지로 ‘스타크래프트’에서 시작됐다. 과거 오락실로 불리던 아케이드 게임장에서 일부 게임클랜이 비정기적인 대회를 열기도 했지만 동네 PC방 대회를 통해 유명 게이머가 등장하고, 나아가 지역 대회와 전국 대회로 발전하면서 급기야 방송사 중계까지 이끌어내며 스포츠다운 면모를 갖추게 한 것이 ‘스타크래프트’ 종목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심지어 ‘프로게이머’라는 새로운 직업을 만들어 내기도 했는데, 오늘에 이르러서는 축구나 야구와 같이 거액의 연봉을 받는 선수들까지 등장한 상태다. 현재 시점에서 프로 이스포츠는 많은 부분에서 스포츠로 평가될만한 저변을 갖췄다. 프로게이머 육성 단계에서는 대학에 학과가 만들어질 정도가 됐고, 프로팀에는 대기업들이 스폰서로 참여하고 있으며, 규모가 날로 커지는 대회는 거액의 상금과 영예를 안겨주고 있다. 이를 중계·관전하는 문화도 크게 발전했고, 아시안게임 정식 종목으로 채택될 만큼 세계적으로도 관심이 높은 분야가 됐다.

이 같은 프로 이스포츠계를 메이저라고 한다면, 메이저가 이루지 못한 딱 한 가지가 있다. 축구, 야구, 농구, 배구, 배드민턴과 같은 학원스포츠, 동호인 문화, 프로리그 아래 2부, 3부, 4부까지 이어지는 풀뿌리 아마추어 기반을 갖추지 못했다. 이는 비단 메이저계의 갈증만이 아니라 이스포츠를 진흥하겠다는 정부의 숙제이기도 하다. ‘스타크래프트’ 종목을 통해 게임대회를 스포츠화한 이스포츠의 종주국이라 자처하고 있지만 기초 인프라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결국 프로 이스포츠계와 정부의 시선이 쏠리는 곳은 PC방이다. 이스포츠 경기를 위해서는 게이머 간 대결에 문제가 없는 환경이 요구된다. 배드민턴을 예로 들면 경기를 위해서는 일정 규격의 배드민턴 코트가 필요한 것과 같다. 또 시설만 갖추면 되는 것이 아니라 접근성 높은 시설도 필요하다. 단순히 PC 좌석만 요구되는 것이 아니라 객석도 요구된다. 이 같은 인프라를 전국에 구축하기 위해서는 천문학적인 비용이 소요되는데, 그나마 책정된 예산이 엉뚱한 곳으로 흘러 들어간다는 것이 큰 문제다.

다행인 점은 이를 충족한 시설이 전국에 최소 6,000곳이 넘게 존재한다는 것이다. 바로 PC방이다. 지난 10년 동안 정부는 예산까지 책정해가며 이스포츠의 기초 인프라로 PC방을 활용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모색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다 할 성과가 없는 것은 PC방의 태생적 한계 때문이다. PC방은 개인이 투자해 차린 자영업종이다. 이스포츠계나 정부가 감 놔라 배 놔라 할 수 없는 사적 영역이며, 수익을 발생시켜야 하는 생계 현장이다. PC방에 대한 이스포츠계와 정부의 접근 방식이 완전히 잘못된 것이었다.

월드컵 못지않은 규모의 롤드컵
월드컵 못지않은 규모의 롤드컵

PC방에 이스포츠가 뿌리내리지 못한 이유
사실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이 이스포츠로 발전한 것은 PC방이 큰 역할을 했다고 봐야 한다. 이스포츠의 가능성은 전국 수많은 PC방이 자체적으로 진행했던 게임대회와 기업에서 선수들을 초청해 진행했던 대회들에서 확인됐다. 선수 육성도 PC방 업주들이 담당했었다. 2000년대 초반에 활약했던 1세대 프로게이머들은 PC방 업주들의 전폭적인 지원을 통해 프로에 진출한 사례가 많은데, 이들은 24시간 언제든 이용할 수 있는 훌륭한 훈련장소는 물론 먹고 자는 것까지 PC방에서 해결하기도 했다.

그러나 소소한 게임대회로 시작된 이스포츠가 프로게이머가 등장하고 방송사에서 개최하는 메이저 대회로 발전해나가는 과정에서 PC방은 소외됐다. 당시 이스포츠 업계가 의도적으로 PC방을 배제했다기보다는 태동 초기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는 과정에서 PC방까지 챙길 여력이 없었던 것이다. 결국 이스포츠가 또 하나의 산업으로 성장하는 동안 PC방은 각종 규제와 사회적 편견에 맞서며 생존하기에 급급해 각자도생의 길을 갔다.

다만, 이 같은 결과는 이스포츠 업계의 과오가 됐다. PC방을 놓친 것이 이스포츠의 저변확대 속도를 늦추고 생활스포츠로 발전하지 못한 원인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시도조차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한국e스포츠협회(이하 KeSPA)는 지난 2016년 PC방을 풀뿌리 이스포츠 시설로 활용하겠다며 문화체육관광부가 인증하는 ‘공인 이스포츠 PC클럽 지정 사업’에 대한 계획을 발표하고, PC방 업계를 아우르기 위해 수많은 러브콜을 보냈다.

당시 KeSPA는 원대한 계획을 꿈꿨다. 이스포츠를 법률적으로 공인된 스포츠 종목 중 하나로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면서 대한체육회 가맹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정부 지원을 통해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숨은 의도도 있었다. 하지만 PC방을 이해하지 못해 파행을 맞이했다. PC방을 이스포츠 산업 진흥을 위한 희생양으로 삼았다. 현실과 동떨어진 지원책을 내세우며 PC방 업주에게 희생과 헌신을 요구했고, 당시만 해도 많지 않았던 일부 대형 PC방에만 혜택이 돌아가는 결과를 낳았다.

대부분의 PC방은 이미 상향평준화된 시설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게임대회를 개최하겠다는 의욕만 있다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길 바랐다. 또 고수들만의 리그가 아닌 초보들의 대결도 필요로 했고, 게임대회로 인해 단골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없었으면 했다. 이는 1등이 필요한 이스포츠 업계와 생계의 현장인 PC방의 목표가 상충될 수밖에 없는 부분이며, PC방 업계의 생각과 이스포츠 업계가 그리는 큰 그림이 상반된, 동상이몽에 그치는 결과로 이어졌다.

풀뿌리 이스포츠 활성화는 PC방이 주도해야
이 같은 과거를 묻고 이제라도 진지하게 미래를 생각한다면, 크진 않지만 접점을 찾을 수도 있다. PC방 업계는 이스포츠 활성화를 통해 좀 더 나은 영업환경을 기대하고, 이스포츠계는 PC방에 산업 전반의 기초 인프라 역할을 기대한다. 이런 그림이 잘만 그려진다면 다양한 시너지가 발휘될 수도 있다. PC방이 프로게이머를 꿈꾸는 이들에게 학원이 될 수 있고, 훈련장소가 될 수도 있다. 학원스포츠의 전초기지 역할도 가능한데, 학생들이 특별활동 시간에 탁구를 하기 위해 탁구장을 찾듯 이스포츠를 즐기기 위해 PC방을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방법론에서 차이가 있다. 정부가 공인하는 이스포츠 시설은 말 그대로 시설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PC방 업주들의 생각은 다르다. 얼마나 게임대회에 열정을 보이느냐가 더 중요하다. 매장 규모에 있어서는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상향평준화된 시설을 문제 삼는 것은 불필요하다. 얼마나 적극적으로 대회를 유치하고 참가자들을 모을 수 있느냐가 훨씬 중요한데, 상금이나 경품, 홍보물 등을 지원해 준다면 365일 게임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할 수 있다는 PC방 업주들도 많다. 시설보다는 적극성이 중요하고, 이를 시스템화하는 데 성패가 달렸다. 결국 이스포츠계와 PC방 업계는 동상이몽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에 따라 앞으로는 정부가 공인하는 아마추어 게임대회는 PC방 업계가 주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다행히 ‘이스포츠(전자스포츠)진흥에관한법률’에서는 ‘이스포츠시설’을 정의하고 있고, 대부분의 PC방은 여기에 부합하기 때문에 가칭 ‘이스포츠시설협회’와 같은 단체 설립이 가능하다. 이 같은 단체를 설립해야만 법률에서 정하고 있는 모든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데, 특히 법률에서는 정부가 이스포츠시설을 지원하도록 하고 있어 PC방 업계의 이스포츠 대회와 관련한 정부 지원이 원활히 진행되려면 이 같은 요건을 충족하는 것이 필요하다.

현재는 이와 관련된 대부분의 업무를 KeSPA에서 진행하고 있다. 이 때문에 PC방에 돌아가야 할 정부 지원도 KeSPA가 집행하고 있으며, 이스포츠시설을 지정하는 역할 또한 KeSPA가 행사한다. 결국 극소수의 PC방이 최소한의 혜택으로 희생해야 하는 현실. 아마추어 이스포츠 대회가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는 원인도 여기에 있다. 결과적으로 PC카페조합과 인문협을 비롯해 PC방 업계 전체가 참여하는 ‘이스포츠협회’ 설립 등을 근간으로 법적 권리를 확보하지 못하면 정부와 이스포츠계, PC방의 동상이 영원히 실현 불가능한 꿈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결과적으로 우리나라의 아마추어 이스포츠, 생활이스포츠, 학원이스포츠와 같은 풀뿌리 이스포츠가 자리잡기 위해서는 튼튼한 기초공사가 필요하며, PC방 업계 전체가 뜻을 하나로 규합하는 작업이 전제되어야 한다. PC방이 국내 이스포츠 산업의 기초 인프라로서 활성화되는 모두의 목표와 게임대회를 통한 PC방 영업환경 개선 등의 시너지가 합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 같은 기초공사 없이는 소규모 대회만 끊임없이 반복되는 이벤트성으로만 끝나게 될 것이다. 아마추어 이스포츠를 PC방에 안착시키기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기초공사에 매진해야 한다.

코로나19로 방치됐던 PC방의 대회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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