月刊 아이러브PC방 10월호(통권 347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PC방은 최근 수년 동안 온라인게임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흥행작은커녕 변변한 신작도 없는 상황이 계속 이어지는 상황이다. 덕분에 성수기 가동률은 5년 전과 비교해 약 5%p 가까이 감소했다.

PC 가동률이 바닥을 치고 있는 가운데 게임별 점유율 상황도 좋지 않다. <리그오브레전드>가 50%를 차지하면서 여타 게임들이 나머지 절반을 두고 경쟁하는 모양새며, 그 와중에 <배틀그라운드>와 <오버워치>가 각각 10%씩을 기록 중이다. 상위 1~3위 점유율만으로 벌써 70%에 달한다.

이제 남은 점유율 30%를 두고 수많은 게임들이 PC방에서 한자리 차지하기 위한 혈투를 벌이게 되는 셈이다. 그리고 이 게임들 중 집객력을 갖춘 ‘갓겜’이 없다보니 PC방 업주들은 답답할 노릇이다.

그런데 게이머들에게는 게임 가뭄이 비현실적인 이야기다. 해외 ESD 플랫폼이 인기를 끌면서할 만한 게임이 많은 정도가 아니라 흘러넘치는 상황이다. 스팀(Steam)의 입지가 국내에서도 나날이 상승하는 반면 PC방에서 스팀 게이머는 여전히 희귀종이다.

PC방과 게이머 사이에는 모종의 온도차가 있는 것이다. 이렇듯 온도차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사례들을 간추려봤다.

선점효과의 다른 이름, 대세감
<리그오브레전드>, <배틀그라운드>, <피파온라인>, <오버워치>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해당 장르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점한, 이른바 대세감을 가진 게임이라는 것이다. <리그오브레전드>는 AOS(MOBA)를, <배틀그라운드>는 배틀로얄 FPS를, <피파온라인>은 축구게임을, <오버워치>는 팀플레이 기반의 하이퍼 FPS를 대표하는 타이틀이다.

PC방은 장르를 선점한 게임들의 강세가 유독 두드러진다. 세계 시장에서는 <도타2>와 <리그오브레전드>가 AOS(MOBA) 장르를 양분하고, <배틀그라운드>와 <포트나이트>가 배틀로얄 왕좌를 두고 다투고 있다. 심지어 축구게임 부분에서는 <피파온라인>이 아니라 <피파>와 <PES>가 대표 주자다.

<도타2>는 AOS 장르의 정통성을 계승하는 작품으로, 수백 가지 아이템과 영웅 캐릭터의 고유 스킬을 결합해 자신만의 다채로운 전략을 구사할 수 있는 게임이다. 대중적 인기도 높아 스팀 통계에서는 항상 선두에 있을 정도다.

지난 2013년 밸브코퍼레이션은 넥슨과 손잡고 <도타2>의 한국 진출을 선언하고 PC방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했다. 그러나 <리그오브레전드>에 푹 빠진 한국 ‘겜심’을 돌려놓는데 실패했다.

<포트나이트>는 선발주자인 <배틀그라운드>를 제치고 배틀로얄 FPS 장르에서 대권을 쥔 케이스다. 유쾌한 분위기에 전략적인 건설요소까지 더한 <포트나이트>는 글로벌 No.1 배틀로얄 게임에 올라섰다.

그러나 PC방에는 해당사항이 없다. 이미 <배틀그라운드>의 문법에 익숙해진 국내 게이머에게 <포트나이트>가 자랑하는 각종 시스템들은 거추장스럽기만 하다. 세계 시장에서 대세를 극복하는 일보다 한국 PC방에서 대세를 극복하는 일이 더 어려운 모양이다.

<피파온라인>은 축구게임 부분에서 PC방 절대강자다. 그러나 세계시장에서 보면 EA의 <피파>와 코나미의 <PES>가 전통의 강호다. 지난달 출시된 <피파20>은 한글화까지 진행, 축구 매니아들에게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다.
게이머들 사이에서는 축구게임의 대권이 <피파온라인>에서 <피파20>으로 넘어가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반면에 PC방 업주들은 ‘축구게임 하는 손님들 다 <피파온라인4 >하는데 무슨 소리냐?’는 반응이다.

<오버워치>는 팀플레이 기반 하이퍼 FPS라는 점에서 <팀포트리스2>의 후발주자다. 하지만 한국 시장에 정식 진출함으로써 PC방 시장을 선점한 특이 케이스다. <오버워치>는 출시 이후 유사한 게임들의 도전을 끊임없이 이겨냈고, 최근에는 <에이펙스 레전드>처럼 위협적인 신인도 있었다.

이처럼 게임 시장은 경쟁작들이 상호 공존할 수 있지만 PC방은 상대적으로 무자비하다. 동일한 장르의 두 게임이 공존할 수 없고, 대세감이라는 외나무다리에서 밀려나면 반드시 죽어야 하는 검투장과 다름없다.

보통 PC방 업주들이 게임을 집객력이라는 잣대로 극단적인 평가를 내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PC방에서는 ‘갓겜’과 ‘망겜’만 있을 뿐, 점유율 지분이 적당한 게임의 사례가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PC방에서 안 되는 게임은 이유가 있다
딱히 경쟁작이랄 게임도 없고 연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인기작이지만 PC방 성적에서는 기대에 못 미치는 게임도 있다. 이런 게임도 PC방 업주들 입장에서는 약간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다.

이런 경우에 해당하는 게임이 <몬스터헌터: 월드>, <GTA5>, <레인보우식스 시즈>, <러스트>, <카운터스트라이크: 글로벌 오펜시브>다. 이 게임들은 모두 스팀 통계에서 TOP 10에 이름을 올린 전 세계적 인기작이지만 PC방에서는 이름값에 걸맞지 않는 성적을 낸 공통점이 있다.

<몬스터헌터 월드>는 대형 괴물을 사냥하는 독특한 컨셉을 뛰어난 그래픽과 쾌적한 최적화로 풀어내 시리즈 사상 최고 성과를 냈고, 출시와 동시에 동접 30만 명을 기록하는 등 대성공을 거뒀다. 출시 직후 PC방 순위에서도 10위에 오르는 등 국내에서의 인기도 제법 높다.

<GTA5>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 2014년 출시와 동시에 4,500만 장의 판매고를 올린 <GTA5>는 국내 포털사이트 게임 검색어 순위와 인터넷 개인방송을 도배하다시피 했다. 출시 5년이 지난 지금까지 업데이트와 이벤트가 활발하다.

<레인보우식스 시즈>는 택티컬 밀리터리 FPS의 대명사다. 이번 타이틀 덕분에 위태로웠던 시리즈의 명맥이 탄탄해졌고, 유비소프트의 개발력 역시 다시 높은 평가를 받게 됐다. 최근 PC방 서비스를 시작해 성적 상승이 기대되는 게임이기도 하다.

<러스트>는 영국의 인디 개발사 페이스펀치스튜디오를 일약 스타덤에 올려놓은 게임이다. 샌드박스 생존게임을 표방하는 <러스트>는 국내 인기 스트리머들이 한 번씩은 거쳐 간 관계로, 게이머들 사이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높은 인지도를 자랑한다.

<카운터스트라이크: 글로벌 오펜시브>는 지난 2000년대 초반 PC방을 호령했던 ‘카운터스트라이크’ 시리즈의 최신작으로, ‘카스 1.6’ 버전을 기억하는 올드 게이머들에게 특히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일부 PC방 업주들은 ‘PC방에서 하기에는 재미가 없다’는 식으로 말하기도 하지만 이 다섯 게임은 게이머가 라이선스를 구매해야하는 게임이다. PC방을 이용하는 고객 대다수가 중고등학생 등 청소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PC방 순위가 높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4~5만 원씩 하는 패키지 가격이 이들에게는 부담스럽다.

PC방 업주 입장에서 아쉬운 부분은 이 게임을 하는 게이머 상당수가 성인이라는 점이다. PC방에서 성인손님은 언제나 모셔오고 싶은 고객인데, 이들은 PC방을 잘 찾질 않으니 아쉬운 노릇이다.

성인 게이머가 없는 것이 아니라 성인 게이머가 PC방에 와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냉정한 진단이며 곧 현실이다. 느긋하게 혹은 집중해서 게임 좀 하고 싶은데 시끄럽고 비좁은 PC방에 가느니 PC와 게임을 구입하는 쪽이 속편한 게 사실이다.

<월드오브워크래프트 클래식>은 PC방 업계에 이런 부분을 시사한다. <월드오브워크래프트>는 약 10년 동안 PC방을 대표하는 MMORPG로 군림했고 <월드오브워크래프트 클래식>은 지난 8월 출시 이후 센세이셔널한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다.

그러나 시장에서 나타나는 뜨거운 호응과는 달리 PC방 점유율 상승폭은 미미하다. 전체 손님 100명 중 1명 정도가 찾는 정도다. PC방에서 <월드오브워크래프트>를 플레이하며 청춘을 불태웠던 올드 게이머들에게 <월드오브워크래프트 클래식>은 새로운 모험과 추억을 선사했지만, 지금의 PC방은 게임하기엔 좀 불편한 장소로 전락한 것은 아닌지 씁쓸함을 남긴다.

저작권자 © 아이러브PC방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