月刊 아이러브PC방 6월호(통권 331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봄 비수기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5월 초순은 제법 시끄러웠다. 보통 5월에 들어서면 PC방 업계는 화창한 날씨와 대조적인 가동률로 축 늘어지기 마련이지만 PC방 커뮤니티는 화가 난 PC방 업주들로 한바탕 난리가 났다. 반도체 업체 SK하이닉스가 공중파 방송에 내놓은 한 편의 광고 때문이다.

SK하이닉스의 광고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SK표 반도체들이 졸업식을 맞이하는데 각자 스마트폰, 인공지능 등 여러 첨단 기기들로 보내진다. 그리고 주인공 반도체는 마지막에 우주로 가게 되면서 기뻐한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중간에 한 반도체가 PC방에 배정되는데 이 부분이 PC방 업주들 사이에 논란을 촉발시켰다. PC방에 배정되는 순간 나오는 우스꽝스러운 효과음, 동기 반도체들의 웅성거림, “반도체계의 지옥”이라는 멘트, 해당 반도체의 절망스러운 한숨 등 노골적으로 PC방 업계를 비하하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영상에 나온대로 소란스러운 초등학생이 라면국물을 키보드에 흘리는 곳이 PC방이라면 청소해야 할 PC방 업주에게 지옥일 수 있지만 PC 본체 속에서 저녁 시간대에만 일하는 반도체에게 지옥일 이유가 뭐냐는 빈정거림도 있었고, 심지어 우주는 물리적 환경이 PC방보다 가혹한 공간이며 반도체에게는 훨씬 더 지옥에 가까울 것이라며 주인공 반도체를 걱정하는 반응도 있었다.

분위기가 격화될 양상을 띠자 광고 영상을 링크한 게시물이 삭제됐는데 커뮤니티 담당자가 게시판 관리 차원에서 삭제했는지, 아니면 격앙된 분위기에 부담을 느낀 작성자가 삭제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삭제됐다. 그리고 논란은 PC방 업주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소강상태에 들어갔다.

이런 특징적인 일사불란함은 광고보다 눈길을 끌었다. 당장 SK하이닉스의 후속 행보만 봐도 PC방 업계와 차이를 느낄 수 있다. SK하이닉스는 자사의 광고가 유튜브에서 1,000만 뷰를 돌파할 전망이라며 홍보에 나섰고, 반도체가 첨단 IT 기기 속에서 미래산업 발전에 기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CF를 추가로 선보인다는 계획도 내놨다.

반면, PC방 업계는 입장을 정리해 명확하게 표출하기보다는 논란을 무마하는 쪽에 가까웠다. 일반적으로 기업의 광고가 특정 업계에서 부정적인 이슈로 논란이 된다면 기업 쪽에서 무마하고 싶어하기 마련인데 SK하이닉스와 PC방은 정반대였다.

많은 수의 PC방 업주가 불매운동을 거론할 정도로 이번 광고에 빈정상했다고 의견을 드러냈지만 게시물이 삭제되자마자 SK하이닉스 반도체에 대한 언급도 거짓말처럼 사라져버렸다. 실시간으로 커뮤니티를 모니터링하지 않는 PC방 업주라면 이번 소란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할 수준이었다.

PC방 업주에게 연락해 이번 광고에 대한 의견을 물으면 “PC방을 물로 보는 것이 하루이틀 일이냐”는 힘없는 답변만 돌아오기 일쑤였다. 최근 업계 내부에서는 PC방 업종의 대외 이미지를 제고하는 동시에 외부에 의견을 표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었기 때문에 아쉬움은 더하다.

최근 인문협과 콘텐츠조합은 소상공인연합회와 합심해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 특별법’ 통과에 힘썼다. 이 과정에서 단체 관계자들은 “PC방 사장님들이 대외 활동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해주셔야 우리가 힘을 얻는다”, “PC방 업종의 이미지가 예상보다 훨씬 좋지 않더라”라는 애환을 호소했다.

그런 의미에서 “PC방을 물로 보는 것이 언제 하루이틀 일이냐”는 PC방 업주의 말에는 통찰이 담겨 있다. 오락프로그램에서는 PC방을 극도로 희화해 마냥 우스운 공간으로 등장하고 뉴스에서는 폭력성이 내재된 폐인들의 장소이자 전원을 내림으로써 이를 증명할 수 있는 곳이다. 이 실험에 사업주의 허락을 구할 필요조차 자각하지도 못한다. 구인구직 업체에서는 PC방 업주를 갑질 사업자로 그리기도 한다.

PC방은 셧다운제 2시간 전에 청소년을 내보내고, 탈선 및 학교폭력에서 가장 안전하다는 조사결과도 있지만 지난 2015년에는 경기도의 한 아파트 단지 주민들이 어린이들이 인터넷 게임중독에 빠지고, 탈선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PC방 입점을 반대하기도 했다.

기업의 광고는 어떤 사안을 두고 형성해놓은 한 사회의 인식론적 합의의 수준을 반영한다. 그 사회구성원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지 않는 적정선을 귀신 같이 찾아내 거기에 맞춘다는 이야기다. 이는 광고뿐만 아니라 모든 미디어에도 해당되는 사항이기도 하다.

결과적으로 미디어의 PC방에 대한 묘사를 종합하면 우리사회가 PC방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결론을 내릴 수 있다. SK하이닉스의 광고도 우리 사회는 PC방을 우스꽝스러운 지옥이라고 표현하기로 합의했음을 보여준다.

아마 대다수의 PC방 업주에게는 PC방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어떻게든 꾸려나가야 할 치열한 삶의 현장이고, 다른 매장들과 경쟁하면서도 기업형 PC방을 경계해야하는 고달픈 소상공인의 전선일 것이다.

그러므로 PC방 업주는 사회구성원의 한사람으로써 “난 그런 합의한 적 없다”라고 말할 필요가 있다. 또 이런 입장을 PC방 업주들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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