月刊 아이러브 PC방 2월호(통권 399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기술의 발전은 다양한 산업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주고, 더 나아가 특정 산업의 쇠퇴나 세대교체까지 이르게 한다. 게임산업은 이러한 기술 발전에 가장 빨리 그리고 가장 큰 영향을 받는 분야로, 과거로부터 다양한 산업을 파생시키기도 했다.  PC방도 이러한 과정에서 나타난 신종 산업의 하나라 할 수 있다.

아주 오래전 비디오 게임의 출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게임을 향유하는 다양한 업종이 흥망성쇠를 이뤘다. 국내에서 PC방 산업이 태동한지 20년이 훌쩍 넘은 지금, 게임에서 비롯한 산업이 어떤 경로를 걸어왔는지 되돌아보고, PC방이 나아가야 할 길은 무엇인지 짚어봤다.

비디오 게임의 등장과 확산
국내에서 전자오락실(오락실)로 불리는 아케이드 게임장은 1970년대부터 등장하기 시작했다. 당시 최초의 상업용 게임으로 일컬어지는 아타리의 ‘퐁(Pong)’이 출시된 이래 아케이드 게임들이 잇달아 등장하기 시작했고, 국내에서도 1980년 전후로 이를 아이템으로 삼은 오락실이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기존의 ‘핀볼’과 같은 실물 게임기를 기반으로 영업하던 게임장들은 비디오 게임이 등장하면서 급격히 모습을 감추기 시작했다. 오락실 산업이 부흥기를 맞으면서 기존의 산업을 대체하게 된 것이다. ‘퐁’을 기점으로 ‘스페이스 인베이더’가 엄청난 흥행을 기록하면서 오락실 산업은 명실상부 게임산업의 주축으로 자리 잡게 됐다.

이전까지 세계 게임산업을 주도하던 국가는 미국이었는데, 80년대 들어 비디오 게임을 선점한 일본으로 빠르게 넘어갔다. 일본 업체 남코는 ‘갤러그’, ‘팩맨’ 등 신작들을 글로벌 흥행시키면서 아시아를 넘어 유럽과 북미에서 아케이드 게임 붐을 일으켰다. 이후 타이토와 코나미 등 게임 제작사들이 획기적인 게임을 출시하면서 일본이 게임산업의 중심이 됐다.

초창기 국내 오락실 이용료는 게임 1회 이용에 10~20원으로 시작해 80년대에 접어들어서는 50원 수준으로 형성됐다. 당시 짜장면값이 400원 수준이었음을 고려하면 게임 한 판에 50원은 꽤 비싼 편이었다. 이 같은 인식 탓에 매년 물가가 상승했음에도 게임 이용료는 80년대 내내 50원 수준에 머물렀다.

다만 이용료 정산 방식은 조금 변했다. 8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는 투입할 수 있는 동전을 100원짜리로 제한하는 아케이드 게임기가 등장했고, 이에 따라 기존 50원에 한 판에서 100원에 두 판을 이용할 수 있는 게임기가 주류가 됐다.

이와 별개로 게임 횟수로 요금을 정하는 것이 아닌, 동전 투입 시 일정 시간을 이용할 수 있는 게임기도 등장했다. 지금의 PC방이 이용료를 책정하는 방식이 80년대 오락실에서 시작됐다고 이해하면 된다.

1세대 아케이드 게임 아타리 ‘퐁’
1세대 아케이드 게임 아타리 ‘퐁’
대중적인 오락실 내부
대중적인 오락실 내부

격변의 1990년대, PC방의 태동
과거 초중고교 학생들이 방과 후 삼삼오오 오락실을 찾는 문화는 현재 PC방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1990년대는 오락실 산업이 황금기를 맞은 시기였는데, 역설적이게도 급격한 쇠퇴를 겪은 시기이기도 하다.

90년대 중반까지 오락실 게임은 다양한 장르에서 흥행작들이 잇달아 출시된 시기다. ‘스트리트파이터’ 시리즈가 주름잡던 격투 장르는 ‘킹오브파이터즈’ 시리즈가 인기를 얻으면서 바통을 넘겨받았고, ‘파이널파이트’와 ‘메탈슬러그’ 등 수많은 벨트 스크롤 액션 장르를 비롯해 특히 ‘던전앤드래곤즈’는 오락실 당 한두 대는 반드시 들여놓은 효자 게임 중 하나였다.

게임 이용료는 회당 100원으로 상승했지만, 당시 국민 생활 수준을 고려하면 감당할 만한 수준이었다. 물가 상승을 고려하면 오히려 낮은 게임 이용료였는데, 이는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학생들의 놀이 문화로 오락실이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했다. 다만 저가 정책은 결과적으로 오락실 산업 존속에 악영향을 미쳤다.

90년대 말에 접어들어 PC 게임이 등장하면서 오락실 산업은 급격하게 쇠퇴하기 시작했다. 당시 김대중 정부가 IT산업 선진화 정책을 추진하면서 전국적으로 인터넷망 보급을 빠르게 전개했고, 이에 편승해 PC방이 전국 곳곳에 하나둘씩 생기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급속도로 확산했다. 지금도 현역으로 군림하고 있는 ‘스타크래프트’라는 걸출한 게임이 등장한 시기도 바로 이때다.

‘스타크래프트’의 대 유행과 함께 최대 8명이 함께 게임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은 오락실이 결코 따라올 수 없는 장점이었다. 이를 기점으로 ‘리니지’, ‘바람의나라’ 등 국내 게임사에서 개발한 온라인 게임 이용자가 빠르게 늘어나면서 PC방 산업의 부흥을 예고했다.

닌텐도의 슈퍼패미컴과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 등 가정용 콘솔 게임 시장이 새롭게 형성되면서 오락실의 설 자리가 줄었다. 오락실 문화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기조도 한몫 거들었으나, 무엇보다 가정에서 편하게 게임을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크게 작용했다.

하지만 가정용 게임기와 패키지 가격은 당시 물가를 고려했을 때 매우 비싼 편이었고, 중산층 가정에서도 부담스러운 가격 탓에 가정용 게임기 보급률은 그다지 높지는 않았다. 이러한 이유로 가정용 콘솔 게임 시장은 오락실 산업을 위협할 정도로 성장하지는 못했다.

오락실 산업도 속절없이 무너지지는 않았다. ‘비트매니아’와 ‘EZ2DJ’, ‘DDR’, ‘펌프 it up’ 등 손과 발로 즐기는 리듬 게임 기기를 본격 출시하면서 세대교체와 고급화 전략으로 맞섰다. 당시 꺼져가는 오락실 산업의 명줄을 이어가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은 물론, 청소년들 사이에 만남의 장소로서 급부상한 오락실도 상당했다.

대형 아케이드 기기로 고급화 전략에 나선 오락실
대형 아케이드 기기로 고급화 전략에 나선 오락실
‘스타크래프트’와 함께 확산된 PC방 창업 붐
‘스타크래프트’와 함께 확산된 PC방 창업 붐

2000년대는 PC방의 황금기
오락실이 기기의 대형화와 고급화 전략으로 전환했지만, 대세를 거스르기엔 많이 부족했다. PC 게임 ‘스타크래프트’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2000년대 초반 전국의 오락실은 대부분 역사의 뒤안길로 모습을 감추는 처지가 된 것이다.

유례를 찾기 어려운 ‘스타크래프트’의 인기는 판매량에서 잘 나타난다. 당시 이 게임은 국내에서만 450만 장을 팔아치웠는데, 대한민국에서 발매된 모든 국내외 게임을 통틀어 이만큼 흥행한 게임은 아직 없다. 불법 복제가 만연했던 당시 사회를 고려하면 판매량의 상당량은 PC방이 일조했다고 볼 수 있다. 오락실을 대체한 PC방 시장이 얼마나 커졌는지 가늠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오락실이 그러했듯 PC방도 다양한 장르의 게임들이 잇달아 흥행하면서 황금기를 맞이했다. 이미 PC방 주류 게임으로 자리 잡은 ‘스타크래프트’를 제외하고도 ‘스페셜포스’, ‘서든어택’ 등 FPS 장르가 급부상하면서 PC방 점유율을 넓게 차지했다.

다만 PC방에서 FPS 장르가 큰 인기를 얻자 국내 게임사들이 PC방에 게임 이용료를 부과하기 시작해 갈등을 빚었다. 현재는 PC방 프리미엄 혜택을 통해 집객에 긍정적인 효과를 주고 있으나, 당시 게임사들은 PC방에 별도의 혜택을 제공하지 않고 무리한 과금을 강제한 탓에 큰 논란이 일었다.

이밖에 ‘리니지2’와 ‘월드오브워크래프트’, ‘아이온’ 등 MMORPG 장르가 흥행하면서 PC방이 24시간 업종으로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게 했다. MMORPG는 장시간 플레이가 요구되는 게임 장르로, 손님이 오래 머물수록 이득인 PC방에 효자 종목으로 꼽혔다. 일부 PC방이 이러한 이용객을 대상으로 야간 할인요금제를 제공해 큰 효과를 거뒀으며, 입소문을 타면서 야간 할인요금제가 전국 PC방으로 빠르게 퍼졌다.

한편, 이스포츠의 발전도 PC방의 입지를 공고히 하는 데 역할을 했다. 전국 곳곳에 퍼져있는 PC방은 게임대회 개최에 최적의 환경을 제공했고, PC방에서 개최된 게임대회를 통해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선수들이 하나둘씩 배출되기 시작했다. 이를 기점으로 게임 전문 방송국도 등장하게 되는데, 게임-PC방-이스포츠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는 순간이었다.

한국에서의 인기를 엿볼 수 있는  ‘스타크래프트’ 한국 서버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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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시절 스타크래프트 리그 선수들
그때 그 시절 스타크래프트 리그 선수들

※ [게임기획] 국내 게임산업의 진화 (下) - 전성기를 거쳐 완숙기는 3월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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