月刊 아이러브 PC방 2월호(통권 387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지난 2019년 세계보건기구(WHO)가 게임이용장애를 국제질병표준분류기준(ICD)에 정식 질병코드로 등록한 지 4년이 되어가고 있지만, 아직 우리나라는 게임이용장애를 질병으로 규정할지에 대해 명확한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통계청이 국내 질병코드 도입 시점에 대해 기존 2026년에서 2031년으로 5년 늦춰야 한다고 설명해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게임이용장애의 질병코드 등록은 PC방 업계와 직접적으로 관련 있는 사안이다. PC방 이용객의 대다수가 게임을 즐기는 현실에서 게임이용장애가 국내에서도 질병으로 규정된다면, 자칫 PC방이 정신질환자 양성소라는 오명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행법상 국내 질병코드 도입이 확정적이라는 우울한 견해에 무게가 더해지고 있다.

질병코드 국내 반영은 2031년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국내 도입 문제 관련 민·관 협의체(이하 협의체)’는 지난해 12월 회의를 열고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가 국내 도입될 시 반영 시점을 2031년으로 미뤘다. 이는 기존에 알려진 2026년에서 5년 늦춰진 일정이다.

당초 협의체는 WHO가 게임이용장애를 질병코드로 규정한 ICD-11을 바탕으로 한국질병분류코드(KCD) 적용 시점을 2026년으로 전망했다. ICD-11의 결과를 KCD-9에 반영하는 것을 고려한 것인데, 이 시점이 2025년이고 실제 적용되는 연도는 2026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국내에서는 ICD-9를 기반으로 한 KCD-8을 시행하고 있고, 2026년 시행되는 KCD-9는 ICD-10의 내용을 바탕으로 결정되게 된다. 따라서 게임이용장애가 질병으로 규정된 ICD-11의 반영은 절차상 KCD-10에 적용돼야 한다. 때문에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국내 반영 여부가 기존 전망보다 5년이 늦춰지게 된 것이다.

4년 전 WHO가 게임이용장애를 질병코드로 규정한 이후 국내에서는 수많은 논의가 이뤄지고 있으며, 교육계를 비롯해 다양한 계층에서 긍정적인 결과가 나타나고 있는 상황이다. 즉 5년의 시간이 더 주어진 만큼 게임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 변화를 좀 더 기대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협의체가 진행한 회의에서 통계청 관계자는 현행법상 국제기준으로 국내 표준분류를 작성하게 돼 있다고 설명해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국내 도입이 사실상 확정된 상태가 아니냐는 논란을 부르기도 했다.

질병코드 국내 도입 사실상 확정?
지난 협의체 회의에서 통계청 관계자는 “통계법상 국내의 각종 표준분류는 국제표준분류를 기준으로 작성하게 돼 있다”면서 “지금까지 KCD 개정 과정에서 ICD의 특정 내용을 제외한 전례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는 WHO가 ICD에서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분류를 철회하지 않는 한 우리나라가 임의로 게임이용장애를 KCD 개정에서 제외하기 어렵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게임 업계에서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의 국내 도입이 사실상 확정된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지만 통계청은 이에 대해 “결정된 바 없다”며 논란을 일축했다.

통계청은 당시 공지를 통해 “질병코드 도입 여부는 결정되지 않았고, 협의체 결정을 토대로 국가통계위원회 심의를 통해 최종적으로 결정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통계법 제22조에 따라 국제표준분류를 기준으로 국내표준분류를 작성하되, 국내 여건과 상황을 고려해 우리 실정에 맞는 분류체계를 작성·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통계청의 이같은 해명에도 불구하고 일각에서는 WHO 규정을 따르게 돼 있는 통계법을 개정하지 않는 이상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의 국내 도입을 막기 어려울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협의체 회의에서 나왔던 ‘ICD 특정 내용을 제외한 전례가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해당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에 대해 국무조정실 관계자는 “협의체에서 질병코드 도입이 부적절하다고 판단하면 WHO에 ICD 내용의 변경을 요청할 수 있고, 과거 비슷한 요청이 받아들여진 사례도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4년 전 WHO가 많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끝내 게임이용장애를 ICD-11에 질병코드로 등록한 점을 보면, 협의체의 판단에 따라 ICD 내용 변경 요청이 있더라도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국내 도입 반대 의견 많아
WHO가 ICD-11을 통과시킨 지 4년이 되어가고 있는 만큼, 국내 도입 여부를 놓고 다양한 연구와 토론이 진행됐다. 그중 한국콘텐츠진흥원(이하 콘진원)에서는 질병코드 국내 도입 시 파급효과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해 6월 콘진원이 발간한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에 따른 파급효과’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에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가 도입될 경우 첫해에만 전체 게임 관련 산업 규모의 20%가 축소되며, 이듬해에 추가로 약 24%가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2022 대한민국 게임백서를 통해 공개된 2021년 기준 국내 게임산업 규모는 총 20조9,913억 원이다. 콘진원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가 국내에 도입될 시 2년간 약 9조2,000억 원이 넘는 산업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이 같은 산업 피해에서 PC방 역시 인식 저하에 따른 이용자 감소 등 자유로울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7월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진행된 ‘게임중독 문제의 다각적 해결방안 모색을 위한 정책토론회’에서는 게임이용장애라는 진단 자체가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당시 토론에 참여한 한국중독심리학회 신성만 회장은 “게임의 문제적 이용은 존재하며, 그 폐해 역시 동의한다”면서도 “게임이용장애가 실질적으로 큰 문제가 되지 않더라도 과잉 진단에 따라 너무나 많은 이들이 불필요한 진단을 받을 위험이 있다”고 우려했다. 다소 장애가 있을 수 있더라도 별도의 치료 없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다는 논리다.

이와 관련한 연구 결과도 같은 달 콘진원 주도로 진행된 ‘게임이용자 패널·임상의학 연구 결과발표회’에서 언급됐다. 한성대학교 조문석 교수는 “게임 이용의 과몰입 형태라는 것은 일시적 현상으로, TV 시청이나 독서, 영화 감상 같은 취미 생활에 몰입하는 경향과 유사하게 봐야 한다”고 말했다. 조 교수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게임 과몰입 현상은 대부분 1년 내 정상 범위로 돌아왔다.

교육계에서도 게임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으로 변화하는 중이다. 지난 2019년 전국 시도교육청은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의 국내 도입에 대해 찬성 7곳, 신중 6곳, 반대 4곳으로 찬성론이 우세했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 이상헌 의원이 2022년 각 시도교육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전국 시도교육청의 의견이 찬성 3곳, 신중 11곳, 반대 3곳으로 나타났다. 3년 만에 교육계의 대세가 신중론으로 바뀐 것이다.

각 교육청의 입장을 살펴보면,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에 대해 반대 입장을 피력한 곳은 이른바 낙인효과를 우려했다. 게임을 이용하는 학생이 병력이 있다는 낙인으로 교우 생활 위축과 따돌림 등 많은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뜻이다. 대세로 떠오른 신중론은 사회적 의견수렴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의 국내 도입을 경계했고, 찬성 입장에서는 게임이용장애 현상의 치료 효과에 기대했다.

마치며…
PC방을 방문하는 손님이 이용하는 콘텐츠는 게임, 인터넷, 영상시청, 문서작성 등 다양하지만, 이중 게임 이용이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현실이다.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가 국내에 도입된다면 PC방은 자칫 환자를 양성하는 곳이라는 오명을 쓸 수 있고, 이로 인해 그동안 PC방 업계가 인식 개선을 위해 펼쳤던 수많은 노력이 물거품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

WHO가 발표한 ICD는 권고사항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KCD 개정에 있어 지금까지 ICD 내용을 따라왔던 선례를 보면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의 국내 도입 가능성이 적지 않다.

협의체의 의견이 반대 입장으로 수렴돼 WHO에 ICD 내용 변경을 요청할 수도 있지만, WHO가 이를 받아들이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가장 빠른 길은 WHO 규정을 따르게 돼 있는 통계법을 개정하는 것인데, 이 역시 쉽지 않은 길이다.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국내 도입은 PC방 업계의 미래가 달린 문제로, 협·단체를 통한 적극적인 참여와 의견 개진이 필요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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