月刊 아이러브 PC방 9월호(통권 382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컴퓨터를 켜려면 5.25인치 디스켓 두 장이 필요했던 시기, 대부분의 데스크톱 PC 본체는 모로 누워 있었다. 언젠가부터 세로로 서기 시작한 케이스는 유행이 수십 번 바뀌는 와중에도 트렌드를 타지 않는 듯 누울 줄 모르고 서 있다. 3차원의 공간 활용성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유행은 돌고 돈다’는 말이 약간 아쉽긴 하다.

내부 하드웨어를 담는 것만이 역할의 전부였던 PC 케이스는 시간이 지나며 냉각 성능과 더불어 인테리어 요소로서의 감성도 가지게 됐다. 지금의 PC방 케이스는 화려한 RGB LED가 실내를 수놓는 것이 유행인데, 이와 함께 직육면체에 갇혔던 케이스의 형태도 조금씩 다양해지는 추세다. 가장 최근의 트렌드는 RGB LED를 최대한 활용한 ‘화려함’이다.

그냥 부품을 담는 상자에 불과했던 PC방 케이스
PC방에서의 PC 케이스는 의외로 선호도가 명확하게 나뉜다. 테이블 상단에 올라오는 케이스는 ‘예쁜 것’, 그리고 시스템책상 하단에 숨겨지는 케이스는 ‘심플한 것’을 선호한다. 무엇보다 손님의 눈에 보이지 않는 케이스는 생김새보다는 견고함과 가격대가 경쟁력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체로 PC방 케이스는 10개 중 7~8개는 책상 아래에 숨어 있고, 외부에 보여지기 위한 케이스는 2할 정도다. 매장 구조에 따라 비중이 조금씩 바뀌기도 하고, 모든 케이스가 선반 위에 배치되는 경우도 있다. 고객 눈에 보이는 외부 케이스는 성능뿐 아니라 인테리어 아이템의 역할도 하기 때문에 눈에 확 띌 만큼 멋진 디자인이 필요하지만, 시스템책상 내부에 배치되는 케이스는 전면 브라켓과 측면 패널을 열어두고 사용할 만큼 디자인 요소의 필요성이 낮다.

‘스타크래프트’ 출시 이후 PC방이 폭발적으로 증가할 당시에는 케이스의 형태가 PC방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카운터에서 게임 CD를 받아 직접 드라이브에 삽입해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던 당시에는 CD-ROM이 필수였던 점을 제외하면, 케이스는 PC방 컴퓨터의 중요도 순위에서 한참 아래에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디자인 대변혁을 일으킨 장본인, 강화유리와 LED
그저 하드웨어를 담고 전원 버튼을 배치하는 상자 정도였던 PC 케이스의 위상은 측면 강화유리의 도입으로 그 입지를 한 층 끌어올릴 수 있게 됐다. 내부 냉각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 측면 패널의 소재로 금속판 대신 투명한 강화유리, 강화아크릴 등을 사용해 내부 하드웨어를 적나라하게 볼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이는 기존까지 ‘성능만 좋으면 생김새가 못나도 괜찮았던’ 시절이 끝났음을 의미했다. 조립이 끝나면 겉으로 드러나지 않던 하드웨어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소위 공대생 패션 같았던 PC 하드웨어에도 미적 감각이 조금씩 더해지기 시작했다.

케이스 내부가 모습을 드러내면서 자연스레 조명 효과도 함께 발전했다. 그저 메인보드의 동작 상태를 확인하는 정도로만 사용됐던 LED는 1,680만 가지 컬러를 지원하는 RGB 효과를 내도록 발전했고, 적용 범위도 쿨러부터 메인보드, 그래픽카드, 메모리 등으로 확장됐다. 강화유리를 통해 보여지는 하드웨어는 예외 없이 모두 LED 적용 제품들이 증가했고, 외부에서 가장 잘 보이는 쿨링팬은 전체 판매 제품의 1/3에 RGB LED가 배치돼 있다.

급기야 최근에는 PC의 기능과 관계없이 RGB 조명만을 위한 제품이 출시되기도 했다. 단색, 혹은 총천연색의 LED로 PC를 꾸미는 것은 개인과 PC방 모두에게 흥미로운 일이 됐고, PC방의 케이스는 어느새 RGB LED가 빛나지 않으면 뭔가 허전한 느낌까지 들 정도로 인식이 바뀌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대체로 많이 사용하는 십수 가지 컬러를 인테리어에 맞춰 일관성 있게 활용하는 것은 아직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쿨링팬 LED는 다양한 컬러로 빛나는 것이 기본 설정인데, 주소지정 기능을 가진 ARGB 쿨링팬이라면 LED 컬러를 사용자가 임의로 지정할 수 있다. 이 컬러를 통일하는 것도 RGB LED를 인테리어에 활용하는 방법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마이크로닉스의 한국적 디자인 PC 케이스
마이크로닉스의 한국적 디자인 PC 케이스
아예 RGB LED 패널을 별도로 장착하기도 한다
아예 RGB LED 패널을 별도로 장착하기도 한다

형태의 변화,최소한만 남기고 모두 혁신적으로
PC 케이스는 강화유리로의 진화 이후로 끊임없이 발전을 지속했지만, 정작 케이스의 형태는 세로 직육면체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슬림 케이스는 작고 얇은 형태를 취하고, 빅타워 케이스는 크기가 더 커지는 정도 이외에는 이렇다 할 변화가 없었다.

케이스의 형태가 고착화된 것은 조립 PC를 구성하는 하드웨어의 기반인 메인보드의 장착으로 인해 케이스 전체의 형태에 변화를 주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기본 30.5×24.4cm, 작아도 가로세로 24.4cm 크기의 메인보드가 내부에 문제없이 설치돼야 하고, 메인보드에 CPU 쿨러와 그래픽카드 등이 장착되면서 냉각을 위한 케이스 내부 공기 흐름도 염두에 둬야 한다.

또한, 대부분의 PC방은 케이스를 외부에 두기보다 시스템책상 하단에 수납해 외부 공간을 좀 더 활용하는 것을 선호한다. 지난 8월 ‘배틀그라운드’ 아마추어 대회가 열린 안양의 한 PC방도 PC 약 220대 중 벽면 자리를 제외한 모든 좌석의 케이스가 책상 내부에 있었다.

이런 경우 케이스의 디자인은 PC방 업주의 고민에서 완전히 배제된다. 그저 1980년대에 가전제품을 구입할 때처럼 ‘값싸고 튼튼한’ 것만이 선택의 기준이 되는 것이다. 시스템책상의 케이스 수납 부분이 마주보는 형태의 자리에서는 일반적인 상황보다 내부 하드웨어 냉각에 좀 더 신경을 써야 하지만, 완전히 밀폐된 구조가 아니기 때문에 책상 윗부분에 두어 개의 쿨링팬을 배치하는 정도로 배려는 끝난다.

폐쇄적인 케이스 내부의 공기 흐름을 해결한 것은 쿨링팬 이외의 부분이 개방된 오픈 케이스다. 써멀테이크의 ‘Core P3’와 같은 오픈케이스는 기존 6면이 막혀 있는 구조와 달리 전·후면과 상단이 열려 있어 공기 흐름 문제를 애초에 발생시키지 않는 디자인이다. 더불어 신박한 디자인에 대한 가점도 받으면서 오픈케이스 형태에 대한 제조사들의 시도가 점점 많아졌다.

현재 많은 PC방에서 사용하고 있는 큐닉스의 ‘Infinity’ 시리즈 케이스를 보면 오픈 케이스가 어디까지 진화할 수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아래 사진들을 보면 알 수 있듯 독특한 형태의 케이스는 이제 ‘직육면체’를 비롯한 형태의 대명사조차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해졌다. 직각이 기본이었던 하드웨어 장착 각도에서 자유로워진 케이스가 외관의 형태도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면서 형태를 명확히 정의할 수 없을 만큼 독특한 디자인이 적용되기 시작했다.

비범한 모양의 케이스 트렌드는 대기업의 완제품 PC에서도 드러났다. 처음에는 직육면체 형태에서 곡선을 더하고 각도를 약간 달리 하는 등 소극적인 변화를 줬는데, 델 에일리언웨어나 애플의 맥 프로처럼 아예 기본적인 형태가 바뀌는 제품도 속속 출시됐다. 모르는 사람이 처음 본다면 이것이 PC 케이스인지 혼동할 만큼 기존의 관념을 부수는 디자인이 각광받기 시작한 것이다.

다만 이런 케이스는 상당히 유행을 타는 관계로 선호도에 대한 유통기한이 길지는 않은 편이다. 연예인의 화려한 패션에는 눈이 가지만 정작 자신이 입는 옷은 평범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비록 손님이 PC의 주인은 아니지만, 오랜 시간을 두고 본다면 극도의 화려함보다는 적당한 차분함이 좀 더 선호도가 높은 듯하다.

수많은 디자인의 PC 케이스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수많은 디자인의 PC 케이스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수많은 디자인의 PC 케이스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수많은 디자인의 PC 케이스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수많은 디자인의 PC 케이스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수많은 디자인의 PC 케이스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수많은 디자인의 PC 케이스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더 화려하게 vs 좀 차분하게’ 다음 트렌드는?
최근 몇 년간 PC 케이스는 ‘화려함’을 향해 달려왔다. 투명한 측면이 대세가 된 이후 쿨링팬, CPU 쿨러, 그래픽카드 등 메모리를 제외한 대부분의 하드웨어가 RGB LED를 탑재한 채 PC방을 장식하고 있다.

얼마 전 방문한 PC방에서 한 손님이 화려하게 빛나는 케이스를 보며 ‘정신 사납다’는 뉘앙스로 중얼거리는 것을 들은 바 있다.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겠지만 화려한 것이 정답은 아니라는 방증일 수 있다. 기자 역시 올해 초 개인 PC를 대대적으로 개편했는데, 케이스 전원 불을 제외하면 RGB LED가 없는 제품으로만 꾸며 차분함을 강조했다. 키보드 역시 화이트 컬러의 단색 LED만 사용하고 있다.

PC방 내부의 밝기가 어두운 쪽에서 밝은 쪽으로 바뀐 지도 한참이 지났다. 휘황찬란한 LED 불빛이 아니더라도 PC방의 존재감은 충분하고, 이제는 케이스의 선택지도 화려함과 더불어 차분한 이미지로 선회할 때가 됐다.

RGB LED를 배제하더라도 책상 상단에 배치하는 케이스는 측면에 강화유리가 적용된 제품이 내부 상태를 확인하기에 좋다. 미들타워나 빅타워, 미니타워 등 다양한 크기가 있지만, 빅타워 케이스는 상단에 배치하기에 너무 크고 미니타워는 냉각에 다소 불리한 점이 있어 현재의 미들타워 크기를 유지하는 것이 적절하다.

또한, PC방마다 시그니처 좌석을 적용하는 것도 홍보와 더불어 해당 PC방의 특징을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완전히 개방된 형태의 오픈케이스나 고사양 빅타워 케이스를 기반으로, 일괄 적용하는 일반 좌석 및 프리미엄 좌석과 차별화된 개념으로 단 한두 명의 게이머를 위한 VVIP 존을 만드는 것이다.

최소 규모의 좌석을 PC방 대표 시스템으로 부각시키는 것은 단순히 고사양만을 추구하기보다는 PC방을 홍보하는 일환으로 활용할 수 있다. CPU부터 케이스까지 수많은 조합이 가능한 만큼, 업주 취향에 맞춰 커스텀 수랭 쿨링 시스템이나 RGB LED로 도배를 하는 등 말 그대로 ‘해보고 싶은’ 모든 것을 시도해볼 수 있다. ‘이 PC방에 가면 이런 시스템이 있다더라’ 식의 입소문을 통해 해당 PC방 고유의 아이덴티티를 만드는 것이 목적이다.

대부분의 PC방 트렌드는 정해진 틀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다. 무선 게이밍기어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지만 여러 사유가 있어 PC방에 적용이 쉽지 않은 것도 마찬가지다. 다만 커스텀 PC란 아이템은 같은 대분류 속에서 수많은 경우의 수가 있는 만큼, ‘우리 PC방에 오면 이런 시스템이 있다’고 알려 고객을 추가 유치하는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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