月刊 아이러브 PC방 3월호(통권 400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1963년 처음 만들어진 인스턴트 라면은 현재 맛과 형태를 막론하고 240여 종이 시중에 판매되고 있습니다. 냄비에 끓여 먹는 봉지라면 중 대중적으로 가장 유명한 것은 농심 신라면, 삼양 삼양라면, 오뚜기 진라면이 소위 3대장으로 불리죠. 출생 연도로 보면 삼양라면이 1963년생으로 큰형, 신라면이 1986년생으로 둘째, 진라면이 1988년생으로 막내입니다.

지금은 3대장 모두 2~3가지 맛이 판매되고 있는데, 형들과 달리 진라면은 처음부터 매운맛과 순한맛 2가지로 출시됐습니다. 애칭으로 ‘진매’와 ‘진순이’ 자매로 불리죠. 그런데 처음부터 진순이는 사람들로부터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마트의 라면 코너에 다른 제품은 매진인데 유독 진순이만 많이 남아 있는 것을 목격하신 적이 있으실 겁니다. 진순이, 도대체 왜 외면받는 걸까요?

※ 매운 것은 맛이 아니라 통증입니다. 다만 진라면 매운맛은 그 자체가 고유명사처럼 제품의 이름으로 굳어졌기 때문에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표기합니다.

의외의 인기, 그 이면에 숨은 잔혹한 음모
알고 보면 라면 시장에서 진순이는 의외로 선전하고 있습니다. 맛을 불문하고 진라면의 판매순위는 부동의 1위 신라면에 이어 2위인데, 그렇다고 매운맛이 절대적으로 많지도 않고, 약 2:1의 비중으로 판매된다고 합니다. 지난 2020년 상반기에는 진순이가 삼양라면에 이어 매출 9위를 차지하기도 했는데요, 성장률로 보면 4위 진매의 0.05%보다 훨씬 높은 4.0%의 저력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왜, 온갖 커뮤니티에서 진순이는 그토록 모욕적인 조롱을 뒤집어쓰며 울분을 삼키고 있는 걸까요? 한 커뮤니티에선 “진순이를 사왔더니 아버지가 ‘뭐 그딴 걸 사왔냐’며 핀잔을 줘 슬펐다”는 애달픈 사연도 있습니다. 경기도 안산에 사는 정모 씨도 라면은 진순이만 찾는다는데, 연이은 드라마 대박으로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는 배우 남궁민 씨도 진순이가 좋다는데 말입니다. 아, 배우 정우성 씨는 영화 ‘증인’에서 라면 먹는 씬을 찍을 때 진순이 사발면이 준비된 걸 보고 “매운맛 없냐, 왜 순한맛을…”이라며 짜증을 냈다고도 합니다. 쓰읍, 정우성 씨 그렇게 안 봤는데…

필자를 ‘맵찔이’라며 늘 조롱하는 한 친구에게 물어봤습니다. “바른대로 불어라. 진순이와 진매, 어느 쪽이 더 매력적이지?” 답이 돌아왔습니다. “짜파게티. NO MATTER WHAT.” 도통 말이 통하지 않는 ■■입니다.(삐빅, 부적절한 단어를 삭제합니다) 그런데 그 뒤에 따라오는 수식어가 걸출합니다. “너 김밥천국이나 분식집에서 진라면 순한맛 쓰는 거 봤냐?”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는데 결정타가 들어옵니다. “우리 다니는 PC방에도 진순이는 없다. 진매만 있지.”

아차, 등잔 밑이 어두웠습니다. 허겁지겁 찾아보니 정말 그렇습니다. 매운 것 자체를 조심해야 하는 너덧 살 아이들이 아니면, 진순이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겐 너무 안 매운 라면이었던 겁니다. 실제로 현재 시판되고 있는 라면 10개 중 9개는 매운 라면이죠. 매운 정도를 측정하는 스코빌 척도를 보면 진순이는 안성탕면(570)보다 높고 팔도 비빔면(700)보다는 낮은 640 정도입니다. 참고로 농심 튀김우동이 310인데 외국인들은 이마저도 맵다고 하데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매운 것에 ■■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삐빅, 부적절한 단어를 삭제합니다)

여러 PC방의 라면 메뉴를 살펴봤지만 진순이는 정말 찾기 어렵다
여러 PC방의 라면 메뉴를 살펴봤지만 진순이는 정말 찾기 어렵다

평균의 함정에 빠지지 말라, 진순이는 인기 없는 게 맞다
미국의 한 대학 졸업생 평균 초봉이 가장 높은 학과가 경제나 기술 분야가 아닌 지리학과 학생이었다고 하죠? 사실은 졸업생 중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이 포함돼 있었기 때문에 평균이 쭉 올라버린 것입니다. 통계의 오류를 언급할 때 자주 인용되는 에피소드입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커뮤니티에서 코로나19 당시 비상식량으로 안성맞춤인 라면이 불티나게 팔려나갈 때 진매가 매진되도록 진순이는 그대로 있었던 마트 사진은 차라리 조작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200종이 넘는 라면 중 판매순위 TOP10 안에 있다면 상위 5%에 드는 인기제품이라 할 수 있는데요, 그 대상이 의외로 명확한 점 역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결정적으로 지난 2020년 한 매체에서 물이 많은 한강라면, 뜨거운 비빔면과 진순이를 동급으로 치부해 ‘용서할 수 없는 라면’이란 일러스트로 방점을 찍고 말았습니다. 수많은 누리꾼들이 이 그림에 웃으며 동감했고, 남몰래 진순이만을 사모하는 어떤 맵찔이는 뜨거운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두고 보자, 비■■다■■! (삐빅, 소송걸릴까봐 삭제합니다)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은 매운 걸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고를 수 있는 대안은 의외로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선택지 중에선 감히 진순이가 최고라고 말하고 싶어요. 그러니까 PC방 사장님들, 라면 메뉴에 진순이도 넣어주세요. 저도 PC방에서 라면 한 사발에 콜라 한 잔 때리고 싶단 말이에요!

■주얼■■■ 네 이놈들… (삐빅, 너 그러다 진짜 큰일난다)
■주얼■■■ 네 이놈들… (삐빅, 너 그러다 진짜 큰일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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