月刊 아이러브 PC방 1월호(통권 398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엔씨소프트의 대작 MMORPG가 PC방에서 이렇게 볼품없는 데뷔 성적표를 받아든 적은 없었다.

‘THRONE AND LIBERTY(이하 TL)’는 지난달 7일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출시됐고, PC방 업주들은 흥행을 학수고대하며 PC 가동률 상승에 일조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TL’이 게이머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면서 PC 가동률에 동력원으로 작용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리니지(1998)’, ‘리니지2(2003)’, ‘아이온(2008)’, ‘블레이드앤소울(2012)’로 이어지는 엔씨표 MMORPG 형님들은 모두 세상에 나옴과 동시에 PC방 정상에 이름을 올렸다. 비록 장기집권에는 실패한 경우도 있지만 일단 PC방 1위에 올라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고, 언제 순위가 내려가는지가 관심사였다. 적어도 ‘TL’ 전까지는 그랬다.

그러나 이런 명예로운 전통이 5대에서 맥이 끊겼다. PC방 인기 순위 1위는커녕 게임트릭스 인기 순위 TOP10 진입에도 실패해 지난달 말을 기준으로 13위에 머물렀다. 이런 순위를 방증하듯 일 평균 사용량과 점유율은 각각 23,500시간과 0.5% 수준을 보이고 있다.

또 하나의 PC방 게임 리서치 더로그에서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 12월 27일 기준 일간 점유율은 0.47%, 사용량은 11,000시간에 그쳤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15살이나 많은 셋째 형님인 ‘아이온’보다는 한 계단 위라는 점 정도다.

양대 리서치에서 시용량 지표가 다소 차이를 보이는 이유는 게임트릭스는 피카에서, 더로그는 게토에서 데이터를 추출하는데, PC방 관리프로그램 피카와 게토의 점유율이 각각 비수도권-중소형, 수도권-대형에서 강세를 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TL’은 상대적으로 비수도권에서 인기가 많다고 해석할 수 있다.

두 리서치에서 ‘TL’의 데이터 차이는 이유야 어찌 됐든 소소한 문제에 불과하다. 엔씨소프트가 10년 동안 담금질을 했던 MMORPG 적통이자 예비 황제였던 ‘TL’이 PC방에서 즉위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훨씬 중요하다. 그리고 더 중요한 일면은 ‘TL’이 올해 PC방에서 큰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했던 게임이라는 점이다.

이런 양상은 반년 전 출시된 ‘디아블로4’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난 바 있다. 출시 직후 PC방 3위까지 올라섰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하더니 이내 10위 밖으로 밀려났다. 기대 이하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점에서 두 게임이 비슷해 보이지만 상황의 심각한 정도를 따지자면 ‘TL’이 훨씬 위태로워 보인다.

‘디아블로4’는 연내 출시가 예정된 확장팩 ‘증오의 그릇’이라는 회심의 카드가 있다. 전작들 역시 확장팩 출시 이후부터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음을 감안하면 ‘디아블로4’에게는 반등의 기회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TL’은 반등의 근거로 삼을 전작도 없다. ‘리니지’, ‘리니지2’, ‘아이온’, ‘블레이드앤소울’은 대규모 업데이트를 통해 환골탈태하는 수준으로 변화를 꾀하거나, 이를 통해 PC방 성적을 끌어올린 전례가 없다.

지난해 초 PC방 업계는 두 마리 준마가 이끄는 마차를 타고 PC 가동률이 상승가도를 내달리는 상상을 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기대와는 거리가 멀었다. 이 같은 초라한 성적표를 받은 엔씨표 게임은 경력 24년차 PC방 업주도 처음 겪는 당혹스러운 일이다.

또 다른 PC방 업주들은 ‘TL’의 이런 PC방 성적표를 예상했던 결과라며,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이들은 MMORPG가 PC방에서 잘나가던 시절은 15년 전 이야기라며, ‘블레이드앤소울’도 PC방 1위를 찍긴 했지만 상위권에 오래 머물진 못했음을 지적한다.

PC방 게이머 세대교체도 짚어볼 일이다. ‘TL’에 관심을 가질 게이머는 과거 엔씨표 MMORPG들을 경험했던 중년 남성들이다. 현재의 PC방이 과연 40~50대 연령층에 어필하는 공간인지 냉정하게 따져볼 필요도 있다. 10~20대를 위한 공간으로 치닫고 있으면서 ‘TL’이 출시됐으니 아재들의 PC방 이용이 증가하길 바라는 것도 염치없는 마음일 수 있다.

실제로 일부 PC방 업주들은 게임트릭스나 더로그 순위로 대표되는 PC방 성적이 온라인게임 전체의 성적을 완벽하게 보여주는 지표가 아님을 지적하면서 ‘TL’ 플레이어 및 중년 게이머가 PC방의 주요 이용자가 아닐 뿐이라고 일축하기도 한다.

어떤 PC방 업주들은 PC 가동률에 일조할 것이라는 기대와는 무관하게, 그저 아쉽다는 반응이다. 한 PC방 업주는 “엔씨는 PC MMORPG 터줏대감이다. 지난 10년 동안 모바일로 외도에 빠졌지만 이번에 온라인게임 실력 발휘를 제대로 해주길 바란 것이 사실”이라며 아쉬워했다.

당황스럽기는 엔씨소프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PC방 업주들이야 기대했던 게임이 흥행에 실패하는 경험을 숱하게 해봤지만, 엔씨소프트는 자신이 내놓은 적통 MMORPG가 이런 성적을 거둔 경우가 없어 오히려 충격이 더 클 수도 있다. 앞으로 개발력과 운영 역량을 그러모아 ‘TL’의 반등을 도모하고, 이로써 황태자의 품격을 지켜낼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TL’이 PC 가동률 상승의 즐거움을 주진 못했지만, 관전의 묘미는 다각도로 선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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