月刊 아이러브 PC방 6월호(통권 391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아이러브PC방이 창간 24주년을 맞이했다. 창간 당시를 되돌아보면 ‘스타크래프트’의 전 세계적 흥행과 더불어 ‘메이플스토리’, ‘리니지2’ 등 수많은 게임들이 PC방을 달궈놓았고, PC방 문화가 빠르게 확산하면서 당시의 당구장 시장을 침체기에 빠뜨릴 만큼 흥하기도 했다. 코로나19라는 큰 산을 넘으면서 산업 규모가 다소 위축되긴 했지만, 그래도 재미있는 게임들이 연달아 출시되며 시장 회복의 기미가 조금씩 보이고 있다.

창간 24주년을 맞아 어떤 이야기를 해볼까 하다가, 문득 10년 뒤인 2033년에 쓰게 될 창간 34주년 때의 세상은 어떨지 궁금해졌다. 지금의 PC방을 구성하고 있는 근본이 바뀌어 있을지, ‘리그오브레전드’를 이을 PC방의 차기 대표 게임은 출시됐을지, 가상현실(VR) 헤드셋은 아직도 찬밥 신세일지… 기자가 (꿈속에서) 10년 뒤의 PC방을 슬쩍 다녀왔다.

※ 본 글은 사실적 근거나 예측 없이 온전히 기자의 상상력 안에서만 꺼낸 이야기입니다. 정말 이렇게 됐으면 싶어서 쓴 것도 있고, 이렇게 되면 안 된다는 마음이 앞선 것도 있습니다. 향후 아이러브PC방이 창간 34주년을 맞게 되면, 그때 이 글을 다시 꺼내 보면서 기자의 못난 통찰력을 비웃게 되길 바랍니다.

드디어 PC방 요금이 현실에 다다르다
아이러브PC방에서 PC방 요금의 현실화를 부르짖은 지도 10년이 지났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직도 동전 하나면 1시간을 즐길 수 있게 해주는 곳이 있지만, 파주부터 제주까지 대부분의 PC방 요금은 업주와 고객 모두 납득할 만한 요금으로 정착됐다. 다만 일부 PC방에선 짧은 시간을 이용할 때는 평균 요금보다 좀 더 높게, 긴 시간을 미리 충전하면 좀 더 저렴하게 가격을 매겨 차별화를 두기도 하는 모양이다.

사실 지난 20~30년의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2033년의 PC방 요금도 그에 못 미치긴 한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PC방을 따라다니는 ‘심리적 마지노선’을 극복하기는 쉽지 않다, 아니, 않았다. 많이 줄기는 했지만 여전히 모처에서는 시간당 500원 서비스로 손님을 끌어들이려는 자승자박 전략을 구사하는 곳이 있다. 다행히 기자의 (꿈속) 단골 PC방은 지난 10년 동안 이용료 할인 없이 충실한 시스템 관리와 업그레이드로 운영하고 있다.

얼마 전에 출시 소식이 들린 ATX(AI eXtreme Edition) 30 시리즈는 엔■■■ 최초로 그래픽 연산을 AI 칩으로 처리하는 방식을 적용했다고 한다. CPU의 트랜지스터가 제조공정 미세화의 한계로 덩치를 키우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한 뒤로, 예전에는 미들타워 크기였던 PC 케이스가 슬림 사이즈가 되고, 빅타워 케이스가 보편화됐다고 들었다. 그러니 길이가 50cm, 두께가 8cm는 되는 거대한 그래픽카드를 장착할 수 있는 거겠지. 세상 참 모를 일이다.

“오, 이 최신 콤퓨타의 위엄을 좀 봐.”
“오, 이 최신 콤퓨타의 위엄을 좀 봐.”

똑똑해진 서빙로봇이 직원 2명 몫을 톡톡히
계단을 올라 늘 다니던 PC방의 문을 열자 익숙한 소리가 반갑게 맞아준다. 키보드의 유행은 멤브레인에서 기계식, 광축을 거쳐 성능이 향상되면서도 내구성도 강해진 무접점 스위치까지 왔다. 덕분에 청축 특유의 딸각거리는 소리는 줄었지만 그 공백을 “야! 그걸 밀려??”, “뒤에서 쏘잖아 인마!” 등등 게이머들의 정겨운 담소가 채워준다.

PC방에 직원 숫자는 조금 줄었지만 일하는 개체수는 오히려 늘었다. 레이더와 라이다 등 각종 센서의 성능 상향평준화 및 가격 안정으로 주행 속도와 안정성이 높아진 서빙로봇이 홀 직원의 자리를 충실히 메워주고 있다. 최근에는 실내 인테리어를 구역에 따라 높낮이를 다르게 해서 색다른 느낌을 주는 것이 유행이라는데, 그래서인지 바퀴가 달린 구형 로봇의 설 자리가 조금씩 줄어드는 것 같다.

하지만 걱정할 건 없다. 지난해 뉴스를 통해 보■■ 다■■■■의 상업용 이족보행 로봇이 테스트를 마치고 상용화를 기다리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직은 하체에 기술력이 집중돼 사람들과 하이파이브를 하기는 어렵지만, 평형유지 기술도 많이 발전해서 라면과 콜라가 든 그릇을 국물 한 방울 안 흘리고 옮기는 것 정도는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한다. 서빙로봇의 월 이용료가 지금처럼 저렴해지기까지도 시간이 꽤 걸렸으니, 이족보행 로봇은 아마 2022년쯤의 서빙로봇처럼 비싸겠지. 그래도 이동에 대한 부담이 바퀴보다 훨씬 줄어드니, 다음 서빙로봇 트렌드는 두 다리 달린 로봇이 되지 않을까 싶다.

“손님, 두 번 오기 귀찮은데 세트 시켜라”
“손님, 두 번 오기 귀찮은데 세트 시켜라”

융합현실(XR) 헤드기어는 여전히 찬밥 신세다
얼마 전 여기 PC방 사장님도 시범적으로 게이밍 헤드셋을 들여놓았었다고 한다. 하지만 도입한 지 반년도 안 돼 기기들을 모두 중고로 되팔고, 꽤 넓게 배치했던 XR 존은 다시 프리미엄 PC 존으로 돌아왔다.

게이밍 헤드폰 말고,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이 합쳐진 XR 헤드셋 얘기다. 아직도 제조사마다 자기들이 표준이라며 머리에 쓰는 기기의 명칭을 달리 부르고 있는데, 여기서는 ‘헤드기어’ 정도로 한다. 몇 년 전 애■이 출시한 XR 헤드기어 ‘헤드팟’은 생각보다 큰 흥행을 하지 못했는데, 이미 VR 기기가 판을 쳤다가 소리소문없이 사라졌던 10여 년 전에도 불거졌던 콘텐츠 부족이 문제였다. 결국 IT 산업의 본격적인 진화는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가 방점을 찍는다는 것이 또 한 번 증명된 일이었다.

물론 VR방에 대한 두 번째, 세 번째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난 2020년 출시된 밸브의 ‘하프라이프: 알릭스’ 이후 10년이 넘게 지났음에도 아직까지 꾸준히 VR 기기로 즐길만한 콘텐츠가 나오지 않고 있다. 여전히 국내에서 만드는 VR이나 XR 콘텐츠는 그래픽이 10년 전 수준이며, 게임으로서의 중요 포인트 중 하나인 지속성도 갖추지 못했다.

문득 21세기가 막 시작됐을 때 유행했던 실내 서바이벌 게임이 생각났다. 센서가 장착된 조끼를 입고 총을 들어 곳곳에 숨어 접근하는 적 팀원을 잡아내는 방식이었다. 당시 친구 두어 명과 몇 개월간 꽤나 열심히 즐겼던 기억이 나는데, 게임이라기보다는 생각보다 체력 소모가 커 운동이라 생각하고 임했었다.

XR은 다른 분야에서 먼저 성공의 가능성을 입증한 후에 게임 업계에 도전해야 할 것 같다. 게임은 생각보다 다양한 기술이 집약되는 산업인 만큼, 단순히 ‘우와 신기하다 가상의 세계에 내가 서 있네!’ 식으로 10여 분 둘러보면 끝나는 콘텐츠는 게임이라 부를 수 없다. 아무래도 과거 VR방의 뒤를 잇는 XR방은 창간 44주년쯤 돼야 다시 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애■은 할 수 있을 줄 알았지만, 과신이었다.”
“애■은 할 수 있을 줄 알았지만, 과신이었다.”

PC방 점유율 1위를 두고 이렇게 치열할 수가
사실상 대형 업데이트였던 ‘오버워치2’가 세 번째 넘버링 타이틀까지 내며 고군분투할 줄은 몰랐다. 지역 연고제를 고집하던 블리자드가 자사 이스포츠 시스템을 포기하고 기존 프로팀 체제로 전환한 뒤, 다행히 세계대회 규모가 어느 정도 유지되며 꾸준히 인기를 구가하게 됐다. ‘리그오브레전드2’, ‘배틀그라운드2’와 더불어 3대 이스포츠의 위상을 유지하고 있는 ‘오버워치3’, 하지만 영웅의 숫자가 아직도 50여 명인 건 좀 너무한 처사가 아닌가 싶다. LoL2는 곧 300번째 챔피언이 공개된다고!

그래도 PC방 점유율 순위가 예전처럼 한 게임이 몇 년씩 1위를 독식하는 현상은 사라졌다. 에픽게임즈코리아가 상업용 계정을 출시해 PC방에서 AAA 게임을 즐길 수 있게 됐고, 이것이 수년간 시나브로 파이가 커지면서 전 세계에 PC방 트렌드를 이끌게 될지 누가 알았을까. 게다가 ‘그’ 스팀이 후발주자로 뒤늦게 한국에 지사를 설립하고 PC방 시장에 뛰어들었을 때는 아이러브PC방 임직원 모두가 만세를 불렀다. 비록 게임 담당기자가 할 일이 산더미처럼 많아져서 직원을 더 뽑게 됐지만.

기자가 10년 넘게 즐기고 있는 리듬게임 ‘디제이맥스’는, 스팀 PC방 서비스가 시작된 지 4년이 다 되도록 아직도 순위권에 들지 못했다. 아니, 이 재미있는 게임을 왜들 안 하는거야? 옆에서 ‘배그2’를 즐기던 친구에게 수년째 권하고 있지만 ‘너나 해 이 오타쿠야’란 핀잔만 들었다. 하긴, 이제 나이가 들어서 노트를 눈으로 따라가기도 힘들고 99.5% 찍던 곡도 95%를 넘기기가 힘들긴 하다. 나도 남들처럼 PC방 사용량 1위를 다투는 ‘하프라이프3’ 멀티나 해볼까? 아니면 만년 3위인 ‘카운터스트라이크2’를 시작할까? 아, 뭘 할지 고민만 하다보니 목이 마르네, 거기 로봇! 여기 따뜻한 아이스커피 두 잔, 외상으로!

“와, 얼마나 디테일하면 픽셀 하나하나가 다 보여!”
“와, 얼마나 디테일하면 픽셀 하나하나가 다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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