月刊 아이러브 PC방 12월호(통권 385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전쟁, 외계인의 침입, 좀비, 자연재해 등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다룬 수많은 영화를 보면 상황이 종료된 이후에도 사정이 크게 나아지지는 않는다. 게임처럼 세이브포인트 로딩으로 무너지기 전의 세계를 다시 불러올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픽카드 시장도 마찬가지다. 채굴이란 돌발 이슈로 피해를 입은 그래픽카드 가격은, 정상궤도에 채 오르기도 전에 경제위기란 두 번째 파도를 맞으며 회복이 더뎌지고 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더리움의 작업증명 종료로 인해 그래픽카드 채굴은 끝났지만, GPU 제조사들은 아직도 채굴로 인해 품귀현상이 극심하던 시절의 가격을 내세우고 있다.

RTX30 시리즈의 난, 2021년 넘어 올해까지
2020년 9월 출시된 엔비디아의 지포스 RTX30 시리즈 그래픽카드는 채굴 대란의 중심에서 소비자에게는 원망을, 제조사에게는 환호를 들었던 제품군이다. 당시 곧 출시 예정이었던 대작 게임 ‘사이버펑크2077’을 플레이하기 위해 RTX30 시리즈를 미리 구입했던 소비자들은 지금까지도 그 선택을 ‘신의 한 수’라 부르고 있다.

GTX1060과 RTX2060을 이어 PC방의 대세가 된, 아니, 됐어야 할 RTX3060은 2021년 2월 출시됐다. 권장소비자가격(이하 MSRP)은 329달러로, 당시 환율로는 약 37만 원에 책정됐다. 하지만 RTX3060이 출시되던 당시는 이미 그래픽카드 공급 물량이 부족해지기 시작한 터라, 국내에는 60만 원대 후반으로 초기 판매가격이 상당히 높게 책정됐다. 전작 RTX2060 대비 성능 향상 폭이 RTX2060 Super와 RTX3060Ti의 차이보다 작아, 가뜩이나 가성비가 떨어진다는 평을 받았던 터다.

하지만 시장은 만만하지 않았다. 비트코인에서 이더리움으로 그래픽카드 채굴 대상 코인이 바뀌면서 이더리움 채굴을 위해 전 세계의 채굴업자들이 그래픽카드를 말 그대도 ‘싹쓸이’했고, 항간에는 그래픽카드 제조사가 그래픽카드를 공장에서 트럭 채로 채굴업체에 넘긴다는 소문이 돌만큼 품귀현상이 심각했다.

결국 RTX3060을 포함한 RTX30 시리즈 전체 모델의 가격은 MSRP의 2배 이상, 높게는 3배까지 뛰어버렸다. RTX3060도 고점이 100만 원을 넘었고, RTX3060Ti와 RTX3070은 160만 원에서 높게는 200만 원까지 비싸졌다. 아이러니하게도 상위 모델인 RTX3070과 RTX3060Ti의 가격이 비슷했는데, 가성비 때문이 아니라 채굴 시 관리비용이 RTX3060Ti가 더 적었기 때문이다.

RTX3060, 98만 원에서 44만 원까지
고가의 쓰나미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허우적대던 그래픽카드 시장이 돌연 하락세로 바뀐 것은, 수년간 공지와 연기가 반복되던 이더리움의 지분증명(이하 PoS) 전환 작업이 가시적인 흐름을 보이면서부터다. 지난 2월 이더리움재단이 ‘이번에는 꼭’ 전환을 할 것이라며 PoS 전환을 위한 프로세스를 시작했고, 이 소식이 알려지던 시기 채굴 난이도 상승과 경제위기로 인한 인플레이션이 겹치며 그래픽카드 채굴의 채산성이 떨어진 것이다.

이에 2배 이상이었던 그래픽카드 가격이 시나브로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가기 시작했고, 6월경에는 마침내 MSRP +20% 수준까지 하락했다. RTX3060의 가격은 지난 6월 50만 원선이 무너졌고, AMD 라데온 시리즈 일부 모델은 가격 하락 속도가 좀 더 빨라 여름에 이미 MSRP 아래로 내려가기도 했다.

울며 겨자먹기로 정상가격의 2배를 부담해야 했던 게이머들은 안도하는 분위기였다. 물론 완전히 정상가격으로 내려온 것은 아니었지만, 보급형 수준의 그래픽카드를 구입하는 데 100만 원 가까이 지불해야 하는 상황에서 벗어난 것만 해도 다행이란 의견이었다. 지난 4월 78만 원대였던 한 제조사의 RTX3060은 5월 55만 원대로 20만 원 이상 저렴해졌고, 7월에는 52만 원대까지 하락해 11월 말 현재까지 이 가격대를 유지하고 있다.

애증의 RTX3060, 2023년에는 주력 제품이 될 수 있을까?
애증의 RTX3060, 2023년에는 주력 제품이 될 수 있을까?

채굴의 쓰나미 넘어 환율의 파도까지
사실 출시 시기와 신제품 라인업을 감안하면 RTX3060은 40만 원대 아래까지 하락했어야 했다. 하지만 채굴 붐이 끝난 점에 안도하던 게이머들은 또 한 번의 위기를 맞닥뜨려야 했다. 바로 경제위기로 인한 환율 상승이다. 미국이 물가 안정을 위해 계속해서 금리를 인상하면서, 연초 1,200원대에서 횡보하던 원달러 환율은 6월 말 1,300원을 돌파하더니 9월에는 1,400원마저 넘어버렸다.

모든 프로세서를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로서는 환율 상승이 가격 상승과 직결돼 같은 제품을 더 비싸게 구입해야 한다. 그래픽카드를 한두 대가 아니라 많게는 100대 이상 구입해야 하는 PC방 시장에서는 그 타격이 더 크다. 환율이 1,200원에 머물렀다면 RTX3060의 가격이 40만 원 아래로 내려갈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환율 상승과 더불어 차세대 제품군의 높은 가격 책정 등 악재가 맞물리며 RTX30 시리즈의 가격 하락은 멈췄고, 물량 공급이 부족해지며 8~9월에는 가격이 도로 상승세를 타기까지 했다.

이더리움의 PoS 전환으로 채굴 시대는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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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TX40·RX7000 시리즈 가격, 아직도 채굴 시절 ‘이렇게까지?’
엔비디아는 지난 10월 차세대 그래픽카드 지포스 RTX40 시리즈를 출시했다. 아직은 고성능 라인업인 RTX4090, RTX4080 2개 모델만 출시돼 있고, 보급형인 RTX4060은 공개되지 않았다. AMD 역시 12월 중 RX7000 시리즈를 선보일 예정인데, 엔비디아와 마찬가지로 상위 모델인 RX7900XTX, RX7900XT를 먼저 출시한다.

사실 두 제조사의 신제품 모두 가격이 관건인데, 지포스 RTX4060과 라데온 7600X 이상 모델은 PC방에서 보편적으로 적용하는 제품이 아니어서 가격이 높다 해도 PC방 시장에 큰 영향은 미치지 못한다. 문제는 상위 모델의 가격 책정에 따라 보급형 및 엔트리 라인업의 가격도 책정될 텐데, 현재까지 공개된 각 제품별 MSRP를 살펴보면 지포스는 전작보다 비싸고 라데온은 전작보다 싸다. RTX4080은 1,199달러로 전작 RTX3080보다 500달러 비싸고, RX7900XT는 899달러로 전작 RX6900XT보다 100달러 저렴하다.

이 추세대로라면 100달러 차이는 아니더라도 RX7600XT의 가격은 전작과 같은 379달러, 혹은 이보다 다소 낮은 349달러로 책정될 가능성이 있다. 반대로 전작보다 비싸지는 지포스 RTX4060은 RTX3060의 329달러보다 비싼 399달러 이상이 될 수 있다. 여기에 현재의 환율과 출시 초기의 프리미엄을 감안하면, 차세대 보급형 그래픽카드의 국내 출시 가격은 RTX4060 약 60만 원대, RX7600XT 약 56만 원대로 예측해볼 수 있다. 어느 쪽도 보급형이라 하기 어려운 가격대다.

이런 상황 계속되면 업그레이드 포기하는 상황까지…
이렇게 되면 최신 제품으로의 업그레이드를 버리고 차선책을 고민하는 것이 나을 수 있다. 그래픽카드는 교체 주기가 CPU보다 짧은데, 현재의 온라인게임 시장을 감안하면 굳이 신제품만을 고집할 필요가 있을지 의문이다. 11월 22일 기준 PC방 게임 1순위는 아직도 ‘리그오브레전드’(39.65%)로, FHD 해상도와 240Hz 주사율 환경에서도 RTX2060이면 차고 넘칠 만한 성능이다.

이 부분은 긍정적이기도 하고 부정적이기도 하다. PC방에 손님을 끌어모을 만한 신작은 수년째 나오지 않고 있는데, 반대로 그 덕에 그래픽카드 업그레이드를 늦춰도 운영에 큰 무리는 없다는 것이 아이러니다. 현재 PC방 순위 상위 20위 게임 중 가장 최근작이 리마스터 작품인 ‘디아블로2 레저렉션’(1.10%, 11위)이고, 2021년작 ‘오딘’(0.34%, 17위), 2020년작 ‘발로란트’(4.71% 5위)다. 3개 게임의 점유율을 합쳐도 4위 ‘서든어택’(6.25%) 수준이다.

상위 10위권 내 게임 중 가장 높은 사양을 요구하는 것은 PC방 메모리 16GB 시대를 연 ‘배틀그라운드’와 MMORPG ‘로스트아크’ 정도로, CPU는 6~8쓰레드 이상, 그래픽카드는 RTX2060 이상이면 옵션 타협으로 넘어갈 수 있다. 현재 GTX1060도 많은 PC방에서 사용하고 있는데, 경쟁력 향상을 위해 최신 제품보다는 RTX2060이나 RTX3060으로의 업그레이드가 투자 대비 효율 면에서 훨씬 나은 선택이다.

이 말인즉슨, RTX 시리즈 그래픽카드를 사용하고 있는 PC방이라면 RTX40 시리즈, RX7000 시리즈 등 최신 제품은 무시해도 된다는 뜻이다. 또한, 이렇게 되면 그래픽카드 교체 수요가 늘지 않으면서 지금의 경제위기와 같은 맥락의 시장 침체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를 타파할 수 있는 해결책이 제조사의 가격 하락, 게임 개발사의 신작 출시 등 짧은 기간 내에 이뤄지기는 어려운 일들이어서 이런 추세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PC방은 투자 없이 경쟁력을 유지하기가 무척 어렵다. 개인 사용자들 사이에서는 소모품으로 취급되는 파워서플라이를 주기마다 교체하기도 어렵고, 취향껏 PC 케이스를 바꾸는 일도 상황에 따라 큰 의미가 없는 일이다. 하지만 PC 성능만큼은 적어도 개인 PC가 부럽지 않을 정도로 유지해야 한다. 아직도 PC방 방문객의 40%가 사양을 크게 타지 않는 ‘LoL’을 즐기는 사람들이지만, 다른 60%의 이용자에게는 성능이 중요한 선택의 요소이기 때문이다. 여러모로 힘든 2022년이 지나갔지만, 2023년이라 해서 크게 나아질 것 같지도 않은 점이 내년 PC방 시장의 불안요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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