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온라인게임으로 새로운 인간관계를 구축하고 작은 사회를 이뤄 소통하기도 한다. 과거에는 이 같은 사례가 더 빈번했는데, 일례로 <마비노기> 유저들은 일일 플레이 제한시간이 끝난 뒤 강제종료를 피하기 위해 던전 안에 모여 이야기꽃을 피웠고, <바람의나라> 유저들은 게임 속 관계를 현실로 확장해 문파원끼리 회식을 즐기기도 했다. <택티컬커맨더스>처럼 아예 이런 관계 구축을 장려하는 게임도 있었다.

영화 ‘내언니전지현과 나’는 추억의 게임 <일랜시아>를 즐기던 플레이어들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다. 넥슨이 개발하고 유통한 <일랜시아>는 1999년 첫 오픈 이후 현재까지도 서비스를 지속하고 있는 게임으로, 동서양을 융합한 독특한 세계관과 당시 기준으로 미려한 도트 그래픽을 통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비록 서비스 이후 상당한 시간이 흘러 오늘날에는 소위 ‘아는 사람만 아는’ 게임이 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임 커뮤니티에 꾸준히 새 글이 올라오는, ‘살아있는’ 게임이기도 하다.

게임이 질병이자 사회악으로 손가락질 받는 이 시기에 감독이자 화자인 박윤진은 ‘내언니전지현’이라는 닉네임의 캐릭터로 게임 속 세상을 헤집는다. 그리곤 업데이트와 지원이 끊긴 현재까지 <일랜시아>를 즐기고 있는 유저들을 찾아가서 게임을 계속 플레이하고 있는 이유를 물어보고, 그들을 현실에서 만나 게임을 통해 쌓은 추억과 경험들을 공유한다.

다큐멘터리는 당시의 게임이 수행하던, 그리고 지금의 게임들이 수행하고 있는 ‘문화’ 이자 ‘작은 사회’로써의 온라인게임을 담담히 보여준다. <일랜시아>는 MMORPG라는 장르가 추구했던 사람과 사람 사이의 다리이자 그 당시의 시대상을 투영하는 하나의 창이었으며, 다큐멘터리에 출연한 이들은 단순히 게임 자체뿐만이 아니라 당시 게임에 투영됐던 사회 현상들을, 다른 미디어 매체에서 유행하던 문화들을, 그리고 인간간의 유대감을 반추하며 청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커뮤니티에 매일같이 ‘그때의 RPG가 그립다’는 글이 올라오는 요즘, 단순히 협력플레이를 지향하던 MUD에서 게이머간의 관계를 중시하던 MMORPG로 넘어가던 시기를 겪은 게이머들에게 ‘내언니전지현과 나’는 특히 더 각별하다.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일랜시아>는 그 게임 자체뿐만이 아니라 당시 MMORPG를 대표하는 하나의 표상으로 작동하며, 게이머들의 추억을 되살리는 장치 역할을 한다.

12월 3일 정식으로 개봉하는 박윤진 감독의 ‘내언니전지현과 나’는 ‘인디다큐페스티벌 2020’을 비롯한 다수의 영화제 및 행사에서 소개된 바 있으며, 특히 ‘제12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는 ‘젊은기러기상’을, ‘제22회 정동진독립영화제’에서는 ‘땡그랑동전상’을 각각 수상하며 작품의 완성까지 인정받았다.

한편, 정식 개봉판은 재편집을 거쳐 러닝타임이 기존 70분에서 86분으로 늘어난 버전으로 상영되며, 넥슨의 고위 관계자들이 직접 상영관을 찾아 박지윤 감독과 만남을 갖는 등 게임 개발사와 게이머 양측 모두에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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