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부가 학교폭력의 주원인으로 게임을 지목하고 각종 규제정책을 쏟아내고 있는 가운데 지난 15일, 게임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청소년과 게임문화,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게임문화재단(이사장 김종민)의 주최로 서울시 종로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이번 토론회의 1부에서는 대구가톨릭대병원 최태영 교수, 국민대학교 박종현 교수, 경기대학교 송종길 교수, 연세대 교육대학원 오승호 특임교수가 청소년 폭력과 게임의 연관성에 대한 각자의 연구 결과를 발표했으며, 이어진 2부에서는 새누리당 원희룡 의원, 게임과몰입 상담치료센터 한덕현 팀장, 국민대 황승흠 교수, 청소년폭력예방재단 유형후 소장, 제8게임단 주훈 감독 등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게임의 역기능과 순기능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게임문화재단 김종민 이사장은 인사말을 통해 “최근 학교폭력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정부와 미디어에서는 학교폭력의 원인을 게임으로 몰아가고 있다. 이에 게임의 모습을 제대로 알아보고자 이번 토론회를 마련하게 되었다”고 이번 토론회의 취지를 밝혔다. 이어 “디지털 게임이 등장하기 이전부터 학교폭력 문제는 존재했었다. 이번 토론회를 통해 게임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이 조금씩 바뀌어 나갔으면 한다”는 소망도 전했다.

   

1부에서 4명의 학자들은 각각 ‘국내외 연구 소개 및 비교’, ‘미국의 법률적 해석’, ‘미디어와 폭력성 연구 동향’, ‘폭력에 대한 태도 통계분석’ 등 다양한 세부 주제를 가지고 진행한 자신의 연구 결과를 소개했다. 또한, 학교폭력과 게임 사이의 인과관계는 물론, 상관관계조차 밝혀지지 않는다는 공통의 결과를 내놓아 눈길을 끌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최근 정부의 게임 규제정책에 대해서도 우려 섞인 목소리를 냈다. 폭력과 게임의 관계는 학계에서 연구가 진행된 이래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다면서, 학교폭력이 사회문제로 불거지자 게임을 희생양으로 삼는 것은 지극히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해외 선진국에서는 게임의 영향력을 분석하기 위해 10년에 걸쳐 종적연구를 진행하고, 청소년들의 분별력을 함양하는 쪽으로 정책의 방향을 선회하고 있다고 성토했다.

연구결과 발표가 끝나고 곧이어 진행된 토론회에서 패널들은 1부 발표와 마찬가지로 정부 정책의 실효성에 의구심을 드러내며 보다 발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청소년 폭력에 관한 태도 유형 및 이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주제로 연구 결과를 발표한

연세대 교육대학원 오승호 교수

 

먼저, 국민대학교 황승흠 교수는 “현재 정부 정책은 과거의 실패한 정책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15년 전 만화산업을 붕괴시킨 경험을 가진 정부는 이 경험을 고스란히 미래 경제의 핵심인 게임산업에 적용하고 있다. 학습능력이 부족하다”고 일침을 가했다.

성신여자대학교 박형준 교수는 “최근 정부의 게임산업 규제는 중세 시대의 마녀사냥과 비슷한 측면이 있으며, 게임은 희생양으로써 매력적인 조건을 갖추고 있다. 정부는 자신들의 교육정책 실패를 게임산업에 전가하려고 시도하고 있으며, 이런 경향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80년대부터 지금까지 학교폭력에 대해 똑같은 대책이 매번 새로운 것처럼 매년 반복하고 있는데, 이는 자신들의 무능을 입증하는 꼴이다. 위정자들은 자신들이 학교폭력 문제와 교육 정책에 관심이 없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지금부터라도 개선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일갈했다.

다음으로, 군포시 당동에 위치한 청소년문화의 집 김지수 관장은 “나는 학교폭력과 관련해 일선에서 일하는 사람인데 아이들은 게임을 거론하지 않는다. 청소년들의 일상에 폭력이 있다. 청소년들의 폭력은 성장환경에서 원인을 찾아야 하고 게임은 배경에 불과하다”고 의견을 밝혔다.

청소년폭력예방재단 유형우 소장은 “정부의 정책은 게임에 대한 몰이해로 인해 가능한 촌극이다. 게임 도중 접속을 차단하는 쿨링오프제는 심리학 이론으로 봤을 때, 오히려 공격성을 강화하는 구조”라며 “게임에 대한 제도적 규제보다는 역기능 개선에 초점을 맞추고, 게임사들도 이를 지원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제8게임단 주훈 감독은 “입법자들에게 과연 게임을 한 번 플레이한 경험이 있는지 묻고 싶다. 직장인들이 귀가해서 유일한 취미인 TV시청을 2시간으로 제한하는 법을 상상할 수 있는가”라며 불만을 드러내는 한편, “분명 게임은 역기능이 있고, 청소년들에게 해가 되는 게임도 있다. 때문에 정부는 TF팀을 구성해 학부모와 청소년들에게 납득할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하고 이를 조속히 시행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새누리당 원희룡 의원은 “학교폭력은 게임을 규제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한 사회적 문제다. 최근 정부당국의 곤장 일변도의 게임산업 규제는 학부모들에게 정부가 무언가 일을 하고 있다고 어필하기 위한 구색 맞추기에 불과하다”며 “대부분 학생들에 있어 게임은 대안이 없는 놀이문화의 하나로 학생들이 스쳐지나가는 생활환경에 불과하다. 공교육의 붕괴, 폭력이 숭상되는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종합적이고 실질적인 대책을 구상해야 한다. 게임의 폭력성에 주목하는 것은 어이없는 처방이며, 청소년들의 놀이문화를 누가 박탈했는지 청소년들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이 학교폭력 문제를 해결하는 첫 걸음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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