月刊 아이러브 PC방 5월호(통권 378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나에게는 날개가 있다. 친구들마다 다르지만 내겐 9개의 날개가 달려 있다. 처음 태어났을 때는 푸른 창공을 날아다니며 자유롭게 살 줄 알았다. 분당 1,800바퀴나 회전할 수 있으니 당연히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1년째 이 빌어먹, 아니, 이 어두컴컴한 곳에서 먼지나 내뿜으며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다.

알고 보니 나의 날개는 날기 위한 것이 아니라 주변의 공기를 빨아들여 이 네모난 상자 안으로 들이거나, 반대로 상자 안의 뜨거워진 공기를 바깥으로 내보내기 위한 것이었다. 항의할 데도 없고 항의할 수도 없다. 여기는 ‘쿨링팬’이라 불리는 나같은 녀석들이 너댓 명, 아니, 너댓 개가 함께 돌고 있다. 아, 정말 돌겠다.

1960년대의 컴퓨터 냉각, 공기보다 물을 더 많이 이용했다
게임용 컴퓨터 한 대에는 나 같은 게 적어도 4개 필요하다. 케이스 전후상하 곳곳에 배치되는 나는 외부의 찬 공기를 끌어들이거나 내부의 뜨거운 공기를 밖으로 내뿜는 역할을 하고, CPU 쿨러나 그래픽카드 쿨러의 팬은 프로세서로부터 가져온 열기를 바깥으로 배출하는 역할을 한다. 따지고 보면 나는 언제나 한쪽은 뜨겁고 한쪽은 차가운 셈이다.

어지간한 반도체 기반 전자제품은 너무 뜨거우면 일을 못 하고 뻗어버린다. CPU 온도가 한 50~60도 정도면 괜찮지만 80~90도로 올라가거나 심지어 100도까지 높아지면 반도체가 손상될 수 있어서 하던 일을 줄이거나 멈춘다. 사람도 체온이 40도를 넘어가면 저세상 갈 수 있다는데, 그나마 우리 프로세서 형들은 한계치가 사람보다는 좀 높다.

내가 자리를 잡은 곳은 케이스 전면으로, 위아래 하나씩 총 2개의 팬이 찬 공기를 케이스 내부에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내가 일하는 케이스는 좀 큰 편인데, 흡기는 전면으로만 하고 배기는 상단 2개, 후면 1개 등 3개가 맡았다. 균형이 좀 안 맞는 것 같다고 주인한테 어필은 해봤는데, 상관없단다. 어리석은 놈. 아래쪽에서도 냉기를 좀 끌어들여야 밸런스가 맞을텐데.(사실 내부공간이 생각보다 커서 이 정도 구성으로도 큰 상관이 없는 건 맞는 말이긴 하다)

미국의 IBM이란 회사에서 1960년대쯤 컴퓨터의 냉각 시스템을 연구했다고 한다. 내가 지금 누구랑 얘기하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내가 이만큼 알고 있다는 걸 자랑 좀 하려 하니 잠자코 보던가 읽던가 하자. 아무튼 IBM은 집적회로와 직접 접촉하는 수랭식 냉각판을 사용해 열을 잡았고, 1970년대의 슈퍼컴퓨터에도 수랭식 냉각 시스템이 적용됐다. 그러니까 지금 PC방 컴퓨터에 많이 쓰는 공랭식 제품은 성능보다는 가성비가 높은 제품이라 보면 되겠다.

프레임, 허브, 블레이드… 가장 중요한 것은?
냉각 시스템 전체에 대해선 할 얘기가 더 있긴 한데, 나는 쿨링팬이다. 히트파이프니 알루미늄 방열판이니 하는 건 쿨러 전체에서 하는 말이고, 나를 구성하는 건 오로지 공기의 흐름을 원활하게 만들어 주는 날개, 이 날개를 24시간 돌아가게 만들어 주는 허브, 그리고 나의 겉옷과 마찬가지인 프레임까지 3개다.
사실 PC에서 일반적인 소리가 아니라 소음이 난다면, 그래, 대부분의 원인은 나다. 케이스 내부에 선 정리가 제대로 안 돼서 선 일부가 내 날개에 닿아서 매미 울 듯 찌르르 소리가 나던가, 하도 오래 써서 베어링이 망가져 회전 균형을 잃었던가 등등 그 원인은 다양하다. 이걸 어떻게 아냐면, 주기적으로 한 번씩 들여다보면 된다. 그 쉬운 일을 안 하고 있다가 나중에 문제 심각해지고 나서야 ‘어이쿠’ 하지 말고 신경 좀 써달라는 얘기다.

쿨러가 아무리 비싸 봐야 쿨링팬 없으면 소용없다.

시끄럽다 구박하지 마라, 물티슈로 날개 한 번 닦아주었더냐
간혹 팬 하나를 4년 5년씩 쓰는 사람들도 있긴 한데, 개인 사용자는 몰라도 친구들이 엄청나게 모여 24시간 일하고 있는 PC방에선 길어야 3년이면 저세상 간다. 고장도 고장이지만 요즘은 LED가 반짝반짝 빛나는 새파란 놈들이 내 자리를 대신한다나. 참 내. 조용함에서 비롯되는 내 진가를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LED 그거 있어 봐야 냉각엔 하등 소용없고 그저 예쁘기만 한데 말이다. …뭐 요즘은 예쁜 게 1순위라고도 하니까 딱히 할 말은 없지만.

그냥 기분 따라, 취향 따라 바꾸는 거야 여러 마음이니 상관은 없는데, 적어도 분기별로 한 번은 청소라는 걸 좀 해줘라. 전에 인터넷에서 시커먼 쿨링팬을 분해해 먼지 닦았더니 흰색 제품이더라는 얘기는 많이 들어봤을 거다. 근데 그런 일이 실제로 PC방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더라.

겉보기엔 깨끗해 보일지라도 케이스 열어서 가까이서 보면 먼지가 더덕더덕 붙어있다. 먼지 닦아주는 작은 일이 내 수명을 조금이나마 길게 해주는 일인데, 어떤 친구는 태어나서 물티슈 한 번 못 만나보고 분리수거장에 갔다더라. 나도 씻는 거 좋아한다. 깨끗한 거 좋아한다. 다만 내 스스로 씻지 못할 뿐이다. 그러니까 가급적 계절 바뀔 때마다 한 번씩, 아니면 최소한 추워질 때랑 더워질 때, 1년에 두 번이라도 청소 좀 해줘라. 부탁이다.

이런 식으로 PC 한 대에 쿨링팬이 20개쯤 달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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