月刊 아이러브 PC방 1월호(통권 374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오랜 기간 CPU는 인텔과 AMD, 그래픽카드는 엔비디아와 AMD의 양자구도가 이어져 왔다. AMD가 2006년 ATI를 인수하면서 AMD는 CPU와 GPU 모두 경쟁구도를 가져갈 수 있는 유일한 기업이었다. 적어도 2021년까지는 그랬다.

하지만 2022년 인텔이 드디어 CPU 안에만 머물렀던 그래픽 프로세서를 밖으로 꺼내든다. ‘아크 알케미스트’ 그래픽카드 출시가 가시화되면서 1:1 구도였던 데스크톱 그래픽카드 시장이 삼각구도로 재편되는 것이다. 이에 코로나19와 가상화폐 채굴이란 복병은 잠시 제쳐두고, 세 그래픽카드 제조사가 만들어 낼 경쟁구도를 예측해봤다.

반도체 생산량 한계… 최악의 시나리오는 ‘나눠먹기’
코로나19 사태와 맞물려 차량, 가전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필요로 하는 반도체 양은 계속해서 증가했다. 반도체 공급부족 사태는 이미 예견된 것이었는데, 컴퓨팅 하드웨어 수요가 감소하던 2019~2020년경 메모리 칩 제조사들은 가격 하락을 방어하기 위해 생산량을 줄였고, 세계 최대의 파운드리인 대만 TSMC의 생산량은 이미 상한선에 도달해 있었다.

지금처럼 반도체가 부족해진 원인은 결국 시장이 필요로 하는 절대값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과거의 전자제품은 기능별로 동작을 담당하는 기계적인 부품이 대부분이었지만, 지금은 기기 본연의 기능을 비롯해 수많은 부가기능들이 생기면서 이를 수행하는 반도체 소자들이 급격히 많이 적용되기 시작했다. 1980년대의 휴대전화는 오로지 전화통화만 가능했지만, 최근의 스마트폰은 PC 이상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2020년 초 전 세계적인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컴퓨팅 하드웨어의 수요가 급증했고, 내연기관에서 전기차로 세대교체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자동차 업계에서도 반도체 요구량이 증가했다. 거의 모든 산업에서 반도체 요구량이 늘었는데,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반도체 공장 가동률은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PC 하드웨어 분야에서는 가상화폐 채굴 산업이 거대해지며 대부분의 그래픽카드가 PC 대신 채굴장에 몰려 공급 부족과 가격 인상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인텔이 데스크톱 그래픽카드 시장에 진출하는 것은 제조사와 소비자 모두의 입장에서는 위험한 도전이다. TSMC, UMC, 삼성전자 등 파운드리가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수조 원을 쏟아부어 공장을 추가로 짓고 있지만, 본격적으로 생산량을 늘릴 수 있는 시점은 아무리 빨라도 2023년 이후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전까지는 지금과 같이 공급 부족 현상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엔비디아, AMD에 이어 인텔이 세 번째 데스크톱 그래픽카드 제조사가 되겠다는 것은 완전히 새로운 일은 아니다. 문제는 인텔의 새로운 그래픽카드 ‘아크 알케미스트’ 역시 TSMC의 6nm 공정 반도체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제조공정에 따른 완성 GPU는 다르지만, 결국 TSMC의 최대 생산량 중 일부를 인텔이 가져가는 것 외에 큰 의미가 없다.

생산량의 절대값이 증가하지 않은 상태에서 새로운 경쟁자가 나타나는 것은 결국 나눠먹기가 될 공산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TSMC의 현재 주력 생산 반도체는 7nm와 5nm지만, 6nm도 AMD 라데온 RX6500XT와 RX6400 그래픽카드에 적용되기 때문에 인텔이 독점할 수 없는 구조다. 인텔이 반도체를 자체 생산하기 전까지는 파운드리 업체에 생산을 맡겨야 하는데, 지금과 같은 상황에 시장이 요구하는 양만큼 제품을 공급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엔비디아, RTX 20/30 변종은 그만, RTX 40 준비
게이머를 비롯한 소비자들에게 그래픽카드는 애증의 하드웨어가 된 지 오래다. 채굴 붐 때문에 그래픽카드 가격이 정가의 2배 이상으로 폭등하면서 구매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GPU 공급사인 엔비디아 입장에서는 소비층이 약간 달라졌을 뿐 전체 매출에는 영향을 받지 않는다. 오히려 ASUS, GIGABYTE, MSI 등 완제품 제조사들은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하는 소매 판매보다 대량으로 거래하는 채굴업체를 더 편하게 여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여기에 기존에는 없었던 비디오 메모리 증량 버전을 잇따라 내놓으며 제한된 공급량에서 최대한 수익을 높이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RTX2060은 기존 VRAM 6GB를 2배 올린 12GB 제품을 출시했고, RTX3070Ti(8GB)도 16GB 제품을 내놓을 예정이다. 이에 소비자들은 ‘물량이 적으니 고가 제품으로 수익 높이는 것에만 집중하나’ 등 쓴소리를 하고 있다.

본격적인 차세대 라인업인 RTX 40 시리즈는 빨라도 하반기에나 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에이다 러브레이스 아키텍처 기반의 RTX 40 시리즈는 5nm 공정의 반도체를 사용하고, 상위 모델인 AD102 GPU는 1만8,432개의 쿠다코어를 탑재할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높아지는 성능 대비 가격도 상당한데, 지난해 9월경 유출된 예상 가격은 RTX4090이 1,999달러(약 237만 원)다. 현재의 공급 상황을 감안하면 RTX4090의 국내 출시 가격은 500만 원 이상이 될지도 모른다.

AMD, 문제는 라인업보다 공급능력, 팹리스의 한계?
지난 2020년 11월 출시된 AMD 라데온 RX6000 시리즈는 ‘성능의 엔비디아, 가격의 AMD’란 기조를 극복할 만큼의 성능은 아니었다. 상위 모델 RX6900XT의 종합 성능은 엔비디아 RTX3080과 대적할 정도로, FHD 해상도로 국한하면 RTX3090과도 견줄 수 있는 성능을 발휘했다. 출시 이후에는 꾸준한 드라이버 업데이트로 성능이 시나브로 나아지면서, 출시 초기 성능 대비 높은 가격으로 낮았던 접근성이 조금씩 높아지기도 했다.

다만 RX6000 시리즈는 라인업 전체에 걸쳐 공급물량이 경쟁사 대비 적은 것이 흥행에 발목을 잡았다. 게임 플랫폼 스팀의 하드웨어 설문조사에 따르면, RX6000 시리즈 전체의 점유율이 RTX3090과 비슷하고, 엔비디아 전체 점유율과 비교하면 1/9 수준이다. 성능이 점차 향상되고 있다는 이점에도 불구하고 생산량이 뒷받침해주지 못하며 시장 점유율을 끌어올리는 데는 실패한 것이다.

올해 AMD는 새로운 RNDA 3 아키텍처를 적용한 Navi 3X GPU 기반의 RX7000 시리즈를 출시한다. 신제품 출시 시기를 예측하는 다수의 트위터에 따르면 RX7000 시리즈는 AMD 라데온 5세대 CPU와 비슷한 시기, 혹은 그보다 좀 더 늦은 4분기경 출시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1분기에 경쟁구도에 추가되는 인텔 아크 시리즈와 경쟁하는 것이 신제품이 아닌 기존 RX6000 시리즈란 것을 의미한다.

결국 AMD가 그래픽카드 삼파전에서 조금이라도 점유율을 더 가져오기 위해서는 생산량을 늘려야 한다는 결과로 귀결된다. 지난해 4월 AMD는 Navi 2X GPU를 증산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지만, 소비자가 체감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대형 채굴업체에서 지포스에 이어 라데온까지 휩쓸어가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2022년의 라데온 역시 가성비보다는 시장이 요구하는 수요를 맞추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인텔 - 후발주자의 경쟁력은 성능보다 가격
AIB 그래픽카드 시장에 다시 도전하는 인텔의 ‘아크’ 그래픽카드는 지난해 12월 초 게임 시상식에서 티저 영상을 공개하며 올해 1분기 중 제품을 내놓을 것이라고 밝혔다. 지금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모바일, 워크스테이션용 SOC1 제품이 데스크톱 PC용 그래픽카드보다 먼저 공개될 가능성이 높고, 데스크톱용 SOC2 제품군은 1분기를 넘어 선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인텔 아크 그래픽카드는 1세대인 만큼 출시 당시 타사 제품과의 경쟁구도가 중요한데, 가장 먼저 예상 성능이 공개된 A380(가제) 그래픽카드는 엔비디아 GTX1650 SUPER, AMD RX590과 비슷한 성능을 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2분기 중 출시가 예상되는 고성능 제품군의 경쟁작은 RTX3070, RTX3070Ti인데, 이는 인텔 아크 그래픽카드가 엔비디아 RTX3090, AMD RX6900XT 등 최상위 라인업을 제외하고 저가형과 보급형 시장을 타깃으로 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문제는 공급량과 가격이다. 인텔, AMD, 엔비디아 등 대부분의 제조사들은 반도체 공급 부족 현상이 2022년에도 지속될 것으로 예측했는데, 자사 공장을 활용하지 못하는 인텔이 TSMC에 GPU 생산을 위탁하면서 공급량을 가늠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픽카드 시장에서는 후발주자인 만큼 가격 경쟁력으로 부족한 성능을 보완해야 하는데, 공급량이 부족하면 가격을 낮춰 공급하기 어렵다. 엔비디아와 AMD, 완제품 제조사들 모두가 채굴 이슈에 휩싸여 시장에 제품을 제대로 공급하지 못하고 있는 현재 시점에서, 인텔의 도전은 자칫 자사뿐 아니라 그래픽카드 시장 전체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인텔 그래픽카드에 기대되는 기술 중 하나는 이미지 품질 향상 기능인 ‘Xe 슈퍼샘플링’(XeSS)이다. 엔비디아의 DLSS와 달리 인텔 XeSS는 전용 하드웨어 가속뿐 아니라 모든 GPU에서도 동작하는 범용 기능으로, 이것이 상용화되면 인텔 아크 그래픽카드뿐 아니라 지포스와 라데온 그래픽카드에서도 고해상도 화면에서의 품질 향상을 기대할 수 있다. XeSS 기술의 수준이 그래픽카드 삼파전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게 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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