月刊 아이러브PC방 6월호(창간 22주년 특집, 통권 367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우리나라의 게임산업은 그 역사가 그리 길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굴곡져 있다. 기성세대들의 게임에 대한 편견은 과거 만화나 오락실에 대한 부정적 시선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신진 게임강국으로 부상하며 연간 100억 달러의 수출 실적을 올려도 어딜 가나 천덕꾸러기 신세다.

국내 게임산업의 한 축을 맡고 있는 PC방 역시 다르지 않다. PC방 종주국이라는 자부심을 느끼기는커녕 항상 죄인처럼 눈치를 보기 급급했고, 혹독한 규제를 견뎌내며 질곡의 세월을 보냈다. 급기야 최근에는 코로나19라는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큰 시련을 만나 정부의 과도한 규제와 사회적 따가운 눈초리를 동시에 감당하며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큰 고비, 이를 잘 넘길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그 답을 찾기 위해 PC방 업계가 과거에 겪었던 위기가 무엇이 있었는지, 또 어떻게 헤쳐왔는지 되짚어봤다. 과거의 경험은 교훈과 지혜를 남기고, 그 지혜는 미래의 문제를 해결하는 중요한 열쇠가 되기 때문이다.

등록제 한국 사회의 트라우마이자 PC방에 강요된 희생
PC방이 신규 창업 아이템으로 각광받으며 빠르게 늘어나던 1999년 ‘음반비디오물및게임물에관한법률’이 개정되면서 등록제가 처음 시행됐다. 이후 2001년 음비게법이 개정돼 신고제로 전환됐고, 1년 뒤인 2002년에는 자유업으로 재 개정됐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등록제나 신고제 자체에 큰 저항감은 없었다. 기존에 없던 업종이 생겨나고 주무부처가 지정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이를 행정적으로 규정해야 하는 절차가 필요했고, 그 과정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6년에 접어들어 바다이야기 사태가 한국 사회 전체를 뒤흔들면서 ‘도박공화국’이라는 오명에 대한 트라우마가 깊게 새겨졌다. 이에 관리 책임이 있었던 정부 관료들은 어느샌가 책임을 외면하고 규제로 이를 해결하려 들었고, 도박장과 PC방을 구분하지 못하는 일부의 여론을 등에 업고 2007년 5월에 PC방 등록제를 부활시킨다. 좀 더 수월하게 통제해보겠다는 심산이었다.

규제를 잔뜩 품은 등록제 시행이 예고되자 PC방 단체들이 업주들을 규합해 항의 집회를 열었다. 기존 PC방 중 대다수가 까다로운 등록조건을 맞출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기존 PC방은 그대로 등록을 받아줬고, 6개월의 유예기간을 걸친 후 신규 PC방만 새로운 등록기준을 적용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PC방 업계의 첫 위기이자 업주들이 하나로 뭉친 첫 사례이기도 하다.

금연법, 흡연 > 반반 > 흡연실 > 전면금연
과거 모든 자영업 매장 전체가 흡연이 가능했던 시절이 있었었지만, 흡연에 의한 직간접적 피해를 예방하기 위한 차원으로 2003년 사업장 면적의 1/2 이상을 금연구역으로 지정하도록 국민건강증진법 시행규칙이 개정됐다.

PC방 업계는 그 취지에는 공감했지만 금연칸막이 설치비만 수백에서 수천만 원까지 소요되고, 그만큼 PC 설치 수가 줄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을 고려해 보조금 제도를 마련해달라고 국회와 정부에 읍소했지만 반영되지 못했다. 결국 PC방은 2007년 1월 매장의 절반을 가르는 금연차단벽(금연칸막이) 설치가 의무화됐고, PC방 업주들은 예상치 못한 지출을 감당해야 했다.

이후 2009년에는 전면금연을 골자로 하는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이 발의됐고, 양 PC방 단체는 국회의원들에게 민원을 제기했다. 여러 의원이 대안이나 지원책에 대한 취지에 공감하고 입법을 추진하기도 했으나 결실을 맺지 못하고 2013년 6월 8일 시행됐다.

2007년 거액을 들여 금연칸막이를 설치한 지 불과 몇 년 지나지 않은 시점에 이를 다시 철거해야 한다는 법이 등장한 셈이니 PC방 업계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고, 2013년 4월 12일에는 PC방 업계 사상 최대 규모인 2,000여 명이 참석해 유예기간 연장을 요구하는 집회가 열렸다.

하지만 유예기간 연장안은 국회에서 부결됐고, PC방 협단체는 보건복지부와 오랜 협의 끝에 계도기간 3개월 연장이라는 대안을 얻어냈다.

이후 PC방 협단체는 전략을 수정해 ‘흡연실’ 카드를 꺼내들었고, 결과적으로 소방법이 개정되면서 최소 기준에만 부합되면 흡연실 및 흡연부스를 설치할 수 있게 됐다. 흡연 손님을 유치할 수 있으면서도 쾌적한 놀이공간이라는 의미와 비흡연자 고객 유입 등의 새로운 변화가 나타나는 변곡점이 된 것이다.

하지만 2019년 5월에 새로운 ‘흡연을 조장하는 환경 근절을 위한 금연종합대책’이 수립됨에 따라 2021년에는 연면적 500㎡ 이상 건축물에 실내흡연실 신규 설치 금지, 2023년에는 모든 건축물에 신규 설치 금지, 2025년 전면 폐쇄가 단계적으로 추진될 예정으로, 중장기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한 상황이다.

게임사와의 관계 개선 불공정 거래 타파하고 상생 관계로…
게임산업의 한 축으로 자리를 잡은 PC방은 온라인게임으로 페러다임을 전환한 게임사들과 함께 성장했지만 이 둘의 관계는 공정하지 않았다. 게임 가맹과 관련한 계약 종료나 환불 조건 등에서 불공정약관, 주지의무 위반과 같은 불공정행위가 만연해 있었다.

이 문제는 게임사들이 PC방에 온라인게임 과금을 시작한 이래 PC방이 피해를 일방적으로 감수해 왔는데, 2007년 한국인터넷PC방협동조합(현 콘텐즈조합의 전신) 최승재 이사장(현 국회의원)이 네오위즈를 <스페셜포스> ‘건빵’ 요금제와 관련해 사기 혐의로 고소하며 불공정 거래 개선의 첫걸음을 내딛었다.
이후 2009년 웹젠, 엔씨소프트, NHN한게임(현 NHN), CJ인터넷(현 넷마블), 블리자드엔터테인먼트코리아 등을 불공정행위로 공정위에 제소하고, 1인 시위를 벌여 약관 개정 및 재판부 화해 권고 등을 이끌어냈다. 또한 일부 게임사 앞에서는 대규모 집회를 통해 의사를 피력하는 등의 노력도 경주했다.

여기에 콘텐츠조합은 2012년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PC방-게임사 표준약관 검토를 이끌어냈고, 게임사들은 이러한 정형화된 틀을 피하고자 약관 자율 정화라는 합의안을 내놓았다. 넥슨은 PC방 업계에 ‘상생 협력 프로젝트’를 기획해 수년간 각종 지원사업을 펼치는 등 PC방과 게임사의 관계가 크게 개선되는 전기를 마련했다.

이후 PC방 업계는 VPN·지피방 등이 PC방 생태계를 교란하자 게임사들에게 이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을 요청했고, 넥슨이 앞장서서 약관을 변경한 뒤 강력한 제재로 문제 해결에 앞장섰다. 이후 라이엇게임즈와 엔씨소프트 등 많은 게임사들이 VPN·지피방 근절 캠페인에 동참해 VPN·지피방 규모를 크게 위축시켰다.

하지만 이러한 관계 개선과 협력은 코로나19 확산 이후 사회적 거리두기가 사회적 규범이자 미덕이 되면서 PC방 집객을 돕던 게임사들이 PC방 관련 이벤트들을 잠정 중단함에 따라 조금 퇴보하게 됐다.

아직 개선이 필요한 PC방 윈도우 라이선스
‘PC’방은 PC를 핵심으로 하는 시설임대업인 만큼 PC가 매우 중요한데, 당연하게도 OS가 필요하다. 하지만 게이밍 PC에는 사실상 윈도우 외 OS는 사용이 불가능하고,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우 라이선스를 상당히 팍팍하게 관리해왔다.

지금과 달리 당시에는 SW 라이선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이용허가권이 아닌 소유권에 가깝게 인지하던 탓에 마이크로소프트는 PC방에 저작권 위반 소송을 남발했고, 당연히 분쟁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2009년 윈도우 7이 출시되면서 본격화됐는데, PC방 7.0 캠페인으로 그동안 존재하지 않았던 렌탈라이츠(RR) 정책이 제시됐기 때문이다.

양 PC방 단체는 수차례 MS에 협상을 제안했지만 합의점에 도달하지 못했고, 2011년 12월 윈도우를 이용할 수밖에 없는 소상공인 3,000여 명이 한마음 한뜻으로 서울역 앞에 모여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당시 콘텐츠조합 최승재 이사장은 소상공인연합회 설립을 준비 중이던 전국소상공인단체연합회의 일원으로 1,000여 명의 PC방 업주들과 함께 집회를 주도했다.

이후 2015년 콘텐츠조합과 한국MS 김 제우스 우 사장이 상호양해각서를 체결하고, 소상공인연합회가 설립된 뒤 2017년 8월에는 소상공인연합회와 한국MS 고순동 대표가 상생을 위한 MOU를 체결하면서 변화를 이끌어냈다.

이때 결과적으로 윈도우 가격이 10% 가량 인하됐고, RR이 무료 승인 방식으로 전환됐다. 또한 법무법인을 통한 무분별한 고소고발을 자제하고, 대신 정품 캠페인을 진행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이후 정품 캠페인은 콘텐츠조합 정기총회·워크샵을 비롯해 인문협의 PC방 지킴이 캠페인을 통해 널리 확산됐고, 무분별한 고소고발은 사실상 사라졌다.

물론 윈도우 가격에 있어서는 좀 더 인하되거나 할인 프로모션이 기획되는 등 한 차례 더 개선될 필요가 있으며, 라이선스의 존속 기준이 조금 더 유연해질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암호화폐 광풍 그래픽카드 품귀와 가격 폭등
암호화폐 채굴이 PC방 업계를 본격 노크한 것은 2017년으로, 손님이 없는 시간에 자동으로 채굴을 하는 PC방이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인건비 등 고정비가 매년 증가하자 유휴 PC로 조금이라도 수익을 발생시키고픈 고육지책이었다.

하지만 그래픽카드가 품귀현상을 겪으며 가격이 폭등하는 현상이 나타나면서 초기에 목돈 마련을 위해 고성능 그래픽카드를 팔고 다운그레이드를 했던 PC방들은 대부분 업그레이드 타이밍을 놓치는 등 낭패를 겪기도 했다. 더욱이 그래픽카드 구하기가 어려워지고 가격도 비싸져 신규 창업은 물론 업그레이드마저 제한되는 등 업종 자체가 위축되는 부작용도 나타났다.

이후 2018년 하반기 암호화폐가 급락하면서 채굴은 비인기 사업이 됐고, 채굴에 이용됐던 그래픽카드들이 중고 시장에 대량으로 쏟아져 나와 그래픽카드 수급 문제가 일소에 해결된 것은 물론 채굴에 투입됐던 중고 그래픽카드를 통해 적은 지출로 업그레이드를 할 수 있는 특수도 나타났다.

이렇게 잠잠해지는 듯했던 PC방 업계의 암호화폐 채굴 붐은 2020년 초 코로나19가 대유행하면서 다시 고개를 들었다. 사회적 거리두기 등 다중이용시설에 대한 이용 자제가 권고되자 매출이 반토막난 PC방은 부가수익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설상가상 2020년 8월에 4주간 영업중단 행정명령이 발효되면서 채굴의 필요성이 더욱 높아졌다.

이렇듯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손님이 확연히 감소한 상황에서 여타 다른 업종들과 달리 암호화폐 채굴을 통해 매출 감소 부분을 일정 부분 보완하고 있는 것은 어찌 보면 참 다행스러운 일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지난 2017년의 부작용이 재현되고 신규 창업이나 업그레이드에 필요한 그래픽카드조차 구할 수 없는 현실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점이다.

현재진행형… 코로나19는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코로나19 사태가 1년하고도 절반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그동안 정부와 지자체의 불합리한 방역 정책이 반복되면서 전국 대부분의 PC방은 유례없는 큰 타격을 입었다.

그때마다 한국인터넷콘텐츠서비스협동조합(콘텐츠조합)을 필두로 전국PC카페대책연합회와 PC방업주비상대책위원회 등이 전면에 나서서 규제가 발표되는 전국 지자체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치밀하게 준비한 자료를 통해 PC방의 우수한 방역 환경을 알리고, 업종에 대한 오해를 해소시키기 위한 노력을 이어갔다.

여기에 세종 정부종합청사 앞 집회에 이어 보건당국과의 수차례 면담을 통해 고위험군에서 중위험군으로 하향, 여타 다중이용업소 대부분이 다양한 영업제한을 받는 2단계에서도 정상에 가까운 영업을 할 수 있게 됐다.

또한 콘텐츠조합이 방역당국을 반년 넘게 설득한 끝에 7월부터 시행될 예정인 새로운 거리두기 개편안에서 3그룹으로 확정 짓기도 했고, 이용시간과 흡연실 등 강제 규제로 예정됐던 항목들을 권고로 하향하는 커다란 성과도 일궈냈다.

물론 이 역시 아직 부당함이 남아있다고 보일 수 있지만, 지난해 4월과 8월 당시를 되돌아보면 실로 엄청난 성과를 이뤄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코로나19 사태는 아직 현재진행형이며, 확진자 규모 역시 줄어들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20년이 넘는 PC방 역사를 되돌아보면 수많은 위기들이 있었고, 그때마다 뜻있는 이들이 힘을 모아 이에 맞섰다. 원했던 결과를 도출하지 못했던 적도 있지만, 위기의 정도가 줄어들었고, 의외의 결과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이번 코로나19 사태 역시 견디기 힘든 고난의 시기이며, 이런 상황이 앞으로 얼마나 지속될지 짐작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PC방 업계 구성원 모두가 함께 뜻을 모아 행동한다면 분명히 보다 나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이제까지 그래왔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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