月刊 아이러브PC방 12월호(통권 361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지난 2008년 11월 엔씨소프트가 새롭게 선보인 대작 MORPG <아이온>은 출시와 동시에 PC방 인기순위 1위에 오르는 등 많은 화제를 몰고 왔던 게임이다. 그리고 12년이 지난 오늘날, <아이온>은 ‘클래식’을 선언하며 화려하게 부활해 다시 PC방 점유율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며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PC방에서 <아이온>은 꽤나 의미가 있는 게임이다. 가장 크게 성공한 MMORPG 중 하나이자 일명 ‘장타 손님’을 PC방으로 이끌며 160주 연속 PC방 점유율 1위라는 대기록을 세운 스테디셀러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무리 잘나가던 게임이라도 긴 시간동안 변치 않을 수는 없고, 자연스럽게 과거를 그리워하는 팬들도 생겨나기 마련이다. ‘클래식 서버’는 그런 팬들을 위한 <아이온>의 선물이자, 새로운 시작이다.

우려 속에 부활한 ‘클래식’ 초반 성적은 기대 이상
사실 <아이온> 클래식 서버 오픈에 대해 많은 우려가 있었다. 아무리 스테디셀러였던 <아이온>이라 해도 최신 게임들에 밀려 PC방 흥행 판독기라고 불리는 <한게임 로우바둑이>보다 아래에 있었고, 같은 MMORPG 장르 내에서도 한물 간 게임 취급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미 비슷한 취지의 ‘마스터 서버’를 통해 한차례 홍역을 치른 바 있었기에 이러한 우려는 더욱 컸다. 실제로도 여론은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으며, 커뮤니티에는 게임을 즐기려는 이들 보다 게임을 통해 돈을 벌고 싶어 하는 이들만 난립해 분위기를 흐렸다.

그러나 실제로 뚜껑을 열어보니 상황이 조금 달랐다. 묵묵하게 게임을 즐겨오던 팬들, 그리고 몸은 떠나있었으나 마음만은 떠나지 않았던 이들이 클래식 서버로 대거 유입된 것이다. <아이온>은 클래식 서버 오픈 직후 점유율 순위 23위에서 10위까지 단박에 뛰어올랐으며, 지금은 6위까지 올라온 상태다. RPG 장르만 따지면 1위다.

더구나 <아이온>의 상승세가 여기서 끝이 아닐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아이온>의 기존 운영방식에 대한 불만으로 떠났다가 ‘클래식은 믿을 만하다’는 입소문을 듣고 다시 게임에 접속하는 유저가 점점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출시 전 우려를 불식시킨 대성공이라 할 수 있다.

‘클래식’은 왜 인기가 있을까?
프랑스의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저서 ‘잃어버린 시절을 찾아서’에는 “마들렌 부스러기가 섞인 차 한 모금이 나의 입천장에 닿는 순간, 나는 소스라치면서 나의 내면에서 일어나고 있는 기이한 현상에 잔뜩 주의를 기울이게 되었다”라는 대목이 있다. 특정한 맛이나 냄새가 그와 관련된 기억을 떠오르게 해주는 현상을 이 작가의 이름을 따 ‘프루스트 현상’ 이라고 부른다.

프루스트 현상은 ‘특정한 냄새를 통해 그와 관련된 기억을 떠올리는 현상’을 일컫게 되었지만, 냄새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인상적인 소재가 있다면 그를 통해 관련된 기억들을 떠올리기 쉽다는 것은 이미 과학적으로 입증된 사실이다.

‘클래식’, ‘레트로’와 같은 문화 형태는 소비자들에게 프루스트 현상과 유사한 것을 불러일으키는 효과가 있다. 그 콘텐츠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 이들로 하여금 단순히 그 당시의 추억뿐만 아니라 그와 연관된 다른 추억들까지 연쇄적으로 떠오르게 만드는 것이다.

클래식 서버도 비슷한 맥락이다. 오래전 그 게임을 즐기던 이들에게는 게임뿐만 아니라 그 시대 자체를, 그리고 그 게임을 해본 적 없거나 최근에 접한 이들에게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아이온> 이전에 클래식의 성공 사례를 만든 게임은 <월드오브워크래프트(이하 와우)>다. <와우>는 출시 당시 환경을 그대로 재현한 클래식 서버를 오픈한 후 인기가 폭발적으로 상승했고, 클래식 서버 접속자 수가 일반 서버 접속자 수를 뛰어넘을 정도로 많은 유저들이 몰렸다.

최근 들어 게임의 과거를 재현하지는 않더라도 추억이 서린 IP를 재활용한 게임들이 자주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 모바일게임 시장에서 이런 현상이 더욱 심한데, 20년 전 PC방에서 유행하던 IP들이 앱스토어 1위를 차지하는 사례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단순히 IP만 활용한 게임도 큰 인기를 얻는 상황이니 그 시절 게임 자체를 되살린 게임들이 흥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마스터 서버의 아픈 기억, 클래식에서는…?
<아이온> 마스터 서버가 실패한 이유는 명백하다. 과거의 추억을 되살리겠다면서 무리한 과금을 유도해 유저들을 실망시켰기 때문이다. 추억 같은 것은 없었을뿐더러 ‘유저를 대체 어떻게 생각하는 거냐’는 비판이 줄을 이었다. 혹자는 ‘새로운 연인과 함께 있는 첫사랑을 나이트클럽에서 만난 기분’이라며 실망감을 토로했고, 심한 경우 ‘유저를 돈 뽑아내는 ATM기기로 생각하냐’며 비난했다.

마스터 서버의 실패 요인 중 가장 큰 하나는 역시 ‘각성수’다. 과도한 과금 유도의 시작점이자 당시 <아이온>의 동시 접속자 수를 90% 이상 감소시켰던 콘텐츠를 마스터 서버에도 매우 빠르게 도입한 것이다. 마스터 서버를 찾은 유저들 중 상당수는 각성수가 없던 시절의 <아이온>이 그리워서 찾아온 것이었고, 이들은 각성수에 이어 연달아 추가되는 과금 콘텐츠들을 보고 학을 떼며 떠났다. 마스터 서버가 그냥 레벨 낮은 일반 서버가 되어버린 것이다.

단순히 콘텐츠 부족이나 시장조사 미흡, 혹은 프로그래밍 능력 부족으로 인한 실패였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며, 다시 시도하는 것은 아름다운 도전이라고 여겨졌을 것이다. 그러나 유저들을 기만해서 실패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클래식 서버에 대해 “돈 떨어졌냐?”, “이번에도 똑같을 것”이라는 비아냥거림이 줄을 잇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다행히도 아직까지 마스터 서버의 전철을 밟을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공식 Q&A를 통해 마스터 서버와는 다름을 강조했을 뿐만 아니라, 특히 ‘각성수’를 콕 집어 각성수는 물론 이름만 바뀐 다른 어느 것도 추가할 예정이 없다고 못을 박기도 했다. 또한 현재까지 공개된 업데이트 로드맵을 봐도 과거와 같은 마구잡이식 운영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단순한 이벤트성 기획인줄 알았던 <와우>의 클래식 서버는 최근 신규 확장팩이 발매된 일반 서버와도 비교될 정도로 많은 유저들이 지속적으로 즐기고 있으며, <아이온> 클래식도 그런 식으로 흘러갈 기미를 보이고 있다. 개발사가 ‘클래식은 한철 장사가 아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정성들여 운영한다면 전성기를 다시 한 번 재현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맺으며…
게이머들 사이에서 엔씨소프트의 운영방식은 악명이 높다. 좋게 보자면 과금을 한 만큼 더 큰 재미를 누릴 수 있는 운영이지만, 다르게 보자면 1%의 고액 과금 유저를 위해 99%의 소액 과금 및 무과금 유저들을 도외시하는 운영으로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온라인게임은 혼자 하는 게임이 아닌 만큼, 자신보다 아래에 있던 유저들이 떠나면 결국 최상위 유저들의 자리도 사라지게 된다. 마스터 서버는 바로 그런 방식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엔씨소프트의 게임은, 예컨대 <리니지2M>의 경우 1,800만 원 가치의 스킬을 보유해야 중견 유저 대우를 받을 수 있는데, 그 지출을 고민하게 될 정도로 재밌다.

재미는 살린, 그러나 과금 유도는 줄인 <아이온> 클래식이 과연 언제까지,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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