月刊 아이러브PC방 10월호(통권 359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게임을 왜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게이머에 따라 여러 가지가 나오겠지만, 온라인게임의 경우에는 공통적으로 나오는 대답이 있다. 바로 ‘공정성’이다.

여기서 말하는 ‘공정성’이란 ‘모두가 똑같은 선상에서 시작해서, 게이머 자신의 힘으로 성장하고 서로 경쟁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불법 외부프로그램(핵)이나 운영자의 개입을 거부하는 것이다.

그러나 두 상황의 무게는 서로 다르다. 다수의 게이머들은 핵은 견딜 수 있다. 뚫리지 않는 보안은 없고, 모든 핵을 사전에 완벽히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게임을 관리·운영하면서 게임의 공정성을 지켜야 할 운영자들이 스스로 게임의 공정성을 흐트러트리는 순간, 게임은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고 대부분의 게이머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버린다. 뿌리부터 썩어 들어간 나무엔 개미들조차 자리잡지 않는 것이다.

이런 사례를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언급되는 것은 역시 <그라나도에스파다>의 ‘노토리우스 사건’일 것이다. 개발진이 직접 치트 계정으로 구성된 당(길드)을 구성하고 유저들을 학살하며 캐시 아이템 구매를 종용하고 인신공격성 채팅을 남발한 해당 사건은 당시 게임 좀 하던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떠올리는 사건이 됐으며, 대한민국 게임대상 수상작이자 당시 가장 기대 받고 있던 게임이 서비스 1년여 만에 구렁텅이로 굴러 떨어지는 계기가 됐다.

언론 보도까지 됐던 당시 사건의 여파는 게임 자체만이 아니라 게임사에도 큰 영향을 줬다. 개발사인 IMC게임즈가 훗날 <트리오브세이비어>를 런칭할 때도 ‘또 노토리우스 당하는 거 아니냐’면서 게임을 외면한 유저가 상당수 있었던 것이다. 2007년에 발생했던 사건이 2015년에 출시된 게임의 발목을 잡은 셈이다.

비슷한 사례는 모바일게임에도 있다. 겜프스가 개발하고 네오위즈가 퍼블리싱한 모바일 전략게임 <브라운더스트>의 사례다. <브라운더스트>는 당시 모바일게임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던 전략성을 강조한 게임이었고, 실제로도 PvE에서는 묘수풀이와 같은 재미를, PvP에서는 현재 유행하는 전략을 예측하고 이를 카운터 치기 위해 머리를 써야 하는 독특한 게임성을 통해 상당수의 팬층을 확보한 게임이었다.

그러나 게임 서비스 1주년 즈음, 당시 비주류 캐릭터였던 ‘군터’를 메인으로 한 계정이 PvP 랭킹 상위권을 달성하며 문제가 생겼다. 처음에는 단순히 새로운 메타를 들고 나온 것으로 추측되었지만, 계정의 아이템 보유 상황 등이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수준으로 강력해 논란이 된 것이다.

의혹이 점차 불거지자 겜프스는 해당 계정이 운영자의 테스트 계정임을 밝히고 보상을 제공했지만, PvP 위주의 게임에서 운영자가 특수 계정으로 유저 캐릭터를 압살하며 유저들의 정당한 경쟁을 방해했다는 점에서 많은 유저들이 실망해 게임을 떠나게 되는 계기가 됐다.

<브라운더스트>가 꾸준히 내리막길을 걸은 것이 비단 이 ‘킹군터’ 사건 때문만은 아니지만 이 사건이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했다는 것은 대다수 유저들이 인정하고 있으며, 사건이 발생하고 2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올드 유저들이 “게임을 3년 넘게 했는데 아직도 킹군터를 못 이긴다”라는 농담을 하는 등 한때는 한국 모바일게임 시장을 대표할 작품으로 여겨지던 게임에 주홍글씨가 된 사건이다. 오늘날 <브라운더스트>는 일종의 흥행 판독기 역할로, 게이머들 사이에서 “모바일게임 유저수가 브라운더스트보다 못하면 회생 불가능 한 것이다”라는 농담 소재로 쓰이고 있다.

이런 일이 몇 번 일어났으니 이를 반면교사 삼아 비슷한 일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 것이 정상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던전앤파이터>에서 직원 권한 남용 사태가 발생하며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던전앤파이터>는 특히 ‘키리의 약속과 믿음’, ‘민수 찾기’, ‘다크서클 사건’, ‘운영진-작업장 간 결탁 사건’, ‘경매장 등록자 닉네임 비공개’ 등 지속적으로 유저들의 신뢰를 잃어가고 있었으나, 테스트 서버도 아닌 라이브 서버에서 운영자가 유저들을 기만한 이번 사태는 지난 사건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여파를 낳고 있다. 예컨대 랭킹 상위권 유저가 “지금까지 게임에 수 천 만원을 넘게 썼는데도 랭킹 1위를 따라잡으려면 그만큼 더 써야 해서 아예 포기하고 있었는데, 그게 운영자였다니 허탈하다”는 글을 올리는 것 등이다.

흥미로운 것은 여러 풍파를 겪으면서도 게임을 포기하지 않았던 유저들 중 다수가 이번 사태로 인해 게임을 접었다는 것이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네오플이 급하게 책임자를 경질하고 이례적인 규모의 보상을 지급했지만, 게임 유저 수 자체는 회복됐어도 게임의 핵심 콘텐츠를 즐기는 유저 수는 절반 이하로 줄어드는 등 한동안은 휘청거림을 면할 수 없을 전망이다.

PC방 업주들 입장에서 이런 사건들은 대개 날벼락처럼 여겨지기 마련이다. 특히 <던전앤파이터>처럼 PC방 점유율에서 한 축을 담당하던 게임에서 이 같은 사건이 발생할 경우 그 여파가 업장 매출에도 고스란히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이런 행태가 위험한 것은 개발자 스스로가 게임을 ‘별 것 아닌 것’으로 다룸으로서 게임이 하나의 문화이며, 게임도 예술이 될 수 있음을 알리기 위한 업계의 노력을 한 순간에 짓밟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게임업계 종사자가 스스로의 손으로 게임 시장을 무너트리는 일은 더 이상 일어나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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