月刊 아이러브PC방 9월호(통권 358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국내 e스포츠사(史)에서 가장 중요한 게임을 꼽으라고 한다면, 대다수의 게이머들은 주저 없이 <스타크래프트>를 말할 것이다. <스타크래프트>는 과거 한국 게이머들의 정신적 고향이었으며, <스타크래프트>의 유즈맵 중 하나였던 ‘Aeon of Strife’는 ‘AOS’라는 장르를 확립시켜 현재 한국 e스포츠 중 최고의 인기를 자랑하는 게임 <리그오브레전드>의 초석이 됐다. <테트리스>나 <팩맨>같은 고전게임들을 제외한다면 <스타크래프트>는 지상파 방송에서 보편적인 유머 소재로 가장 많이 쓰인 게임 중 하나일 것이다.

한국에서의 RTS, 그 힘 빠지던 역사
하지만 <스타크래프트> 이후 RTS 장르는 한국에서 영 맥을 못 췄다. 한창 세를 불려나가던 <워크래프트3>는 프로리그 중 맵 조작 사태에 의해 인기가 급락하며 결국 유즈맵 구동기로 전락했고, <스타크래프트2>는 멀티플레이 대기실 설정 등 한국 시장에 맞지 않는 운영정책을 고수해 전작인 <스타크래프트>보다 낮은 동시접속자 수를 보이는 게임이 됐다.

블리자드가 아닌 타사 RTS의 경우 국내 상황은 더 좋지 않다. 가장 큰 문제는 당시 <스타크래프트>가 휘어잡고 있던 국내 시장 환경상 어떤 RTS가 나와도 <스타크래프트>의 아류작 취급을 받았다는 것이다. 심지어 일부 게이머들은 <스타크래프트>보다 먼저 출시된 게임도 ‘짝퉁 스타’로 취급하며 무시하곤 했다.

EA의 <커맨드앤컨커> 시리즈는 한국에 처음 들어올 때만 해도 PC통신상에서 호평을 받았으나, 이후 <스타크래프트>가 국내에 상륙하고 PC방 업계가 성장하며 <스타크래프트>에게 밀려나게 됐다. 특히 <커맨드앤컨커: 레드얼럿 2>는 완전 한국어 더빙과 작중 등장하는 ‘대한민국’의 스토리상 높은 입지 등으로 한국시장에 매우 공을 들였으나 결국 대중적으로 정착되지 못했다.

한편, 앙상블 스튜디오의 <에이지오브엠파이어>도 국내에서는 게이머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고 꽤 인기를 끌었으나, 실제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한 RTS라는 점에서 속도감이나 화려함이 <스타크래프트>에 밀려 주류 게임이 되지는 못했다.

상술했듯 수입 RTS들도 한국에 들어와서는 대체로 그런 모습을 보였지만, 국산 RTS의 경우 어느 것이든 <스타크래프트>와 비교될 수밖에 없었다. 개중에는 <쥬라기원시전>과 <임진록> 시리즈가 나름의 인지도를 쌓았지만 <스타크래프트>과 비교할 수준은 아니었다. 그나마 <임진록> 시리즈가 팬층을 확보하며 <천하제일상: 거상> 등으로 IP를 확장시킨 정도다.

한편, 넥슨에서 개발해 세계적인 찬사를 받으며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라는 평가까지 받았던 <택티컬 커맨더스>는 게임과 맞지 않는 수익모델과 계속되는 운영 미숙으로 결국 서비스 종료, 오늘날 일부 게임 마니아들 사이에서만 추억삼아 회자되는 수준에 이르렀다.

장르 후계자들의 서로 다른 행보
사실 RTS 장르의 부진은 한국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RTS라는 장르의 팬들이 점차 4X류 및 AOS류로 떠남에 따라 최근 발매되는 RTS들은 이 한계를 인정하고 각자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투스앤테일>은 RTS를 즐기지 않던 이들을 RTS로 모으기 위해 최대한 캐주얼한 방식을 채택했다. 극도로 압축된 게임은 한 판에 20분을 넘기는 경우가 드물며, 자원 채취 등 게임에 숙련될수록 더 복잡해지는 여러 시스템을 최대한 간소화 시켰다. 또한 오롯이 유닛 생산과 전략적인 상황 판단에 치중할 수 있게 만들어진 게임시스템과 SLG를 연상시키는 ‘덱’ 개념을 통해 전략성을 챙겼다. 하지만 게임 플레이가 간소화되다보니 게임에 쉽게 질린 유저들이 이탈하는 현상이 생겼으며, 현재는 멀티플레이 서버가 그리 활발하게 돌아가고 있지는 않다.

<그레이구>는 <투스앤테일>과 유사하게 캐주얼성을 노렸지만 다른 방향성을 택했다. 유닛의 액티브 스킬을 제거하고 게임 속도를 느리게 해 컨트롤 필요성을 거의 없애다시피 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플레이어가 할 수 있는 일을 단순히 기지를 건설하고 유닛간의 전투를 구경하는 것으로 제한해 ‘극도로 지루한 게임’ 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반대로 <아이언하베스트>는 인기 보드게임 <사이쓰>의 세계관과 컨셉을 차용, 디젤펑크와 스팀펑크를 섞은 디자인의 기갑병기들과 특유의 아트워크를 통해 마니아들을 타겟으로 노렸다. <컴패니오브히어로즈> 시리즈와 <던오브워> 시리즈의 전투와 유사한 컨트롤 방식을 통해 RTS 장르의 팬들에게 확실히 어필해 좁은 시장을 한 번에 휘어잡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커맨드앤컨커: 리마스터>는 혹평을 들은 기존작 <커맨드앤컨커4>의 후속작을 이어나가는 대신 시리즈의 첫 작품이었던 <커맨드앤컨커>와 <커맨드앤컨커: 레드얼럿>을 재탄생시키는 것을 택했다. 이는 최근의 PC 성능과 호환되지 않아 더 이상 해당 작품을 정상적으로 즐기기 어려웠던 팬들은 물론, 전설적인 고전 RTS에 호기심을 가지던 장르 팬들을 만족시키며 최근 가장 성공적인 흥행 실적을 보인 작품이 됐다.

이러한 흥행 성과로 미루어 보자면, 결국 현재 RTS 시장이 신규 유저 유입보다는 남아있는 기존의 장르 팬들에 기대 돌아가고 있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결국 큰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죽어가는’ 장르라는 의미이다.

추락하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RTS 장르가 이런 모습을 보이게 된 일등 공신은 ‘진입장벽’이다. 게임에서 ‘진입장벽’이란 어떤 게임에 입문하거나 재미를 느끼고 정착하는데 있어서의 난점들을 의미하는데, RTS의 경우에는 입문을 위해 가장 기초적인 전략부터 시작해서 유닛간의 상성, 수많은 단축키, 컨트롤과 심화 전략까지 익혀야 한다는 점이 진입장벽으로 꼽히곤 한다.

서비스 제공 초기에 입문한 게이머들은 다 같이 초보인 시절부터 실전을 통해 이런 것들을 학습할 수 있지만, 후발주자들은 그게 힘들다는 것이 문제다. 인기 게임이라면 지속적으로 신규유저가 유입됨으로 초보자 집단이 구성돼 다시 초보자들끼리 겨루며 실력을 쌓을 수 있지만, 비인기 게임의 경우 유저 수가 적은 게임일수록 자신과 실력 차이가 더 많이 나는, 속칭 ‘고인 물’들을 상대해야 한다는 문제가 더욱 심각해진다. 진입장벽이 높은 게임일수록 유저들이 ‘고인 물’이 되는 정도가 심해지고, 이는 진입장벽을 더 높게 만드는 악순환을 부른다.

진입장벽이 신규 유저의 유입을 막는다면, 게임의 양상이 정형화되기 쉽다는 점은 기존 유저의 이탈을 부른다. RTS 장르는 보통 3~4개 진영에 각각 20~30여 개의 유닛이 있어 이를 통해 게임을 전개해 나가는데, 싱글플레이 캠페인이면 몰라도 멀티플레이에서는 유닛의 ‘효율성’ 문제가 있어 쓰이는 유닛과 전략이 고착화되는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스타크래프트>에 등장하는 ‘정찰기(스카우트)’나 ‘수호군주(가디언)’ 등은 ‘뽑으면 필패’라고 불리며 프로리그에 등장했던 모든 경기가 기록돼 있을 정도로 외면 받은 유닛이었다.

개발자들도 이 부분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밸런스를 수정하거나 확장팩 등을 통해 새로운 요소를 추가하지만, 전설적인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SlayerS_`BoxeR`’ 임요환이 ‘좋아하던 유닛이 하루아침에 너프를 당해서 짜증나는 마음에 주 종족을 바꿨다’고 했듯 이런 변화가 때로는 새로운 진입장벽이 되곤 한다.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새로운 종족이나 전략을 파고들면 좋은 일이겠지만, 초보자들은 그냥 게임을 접어버리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한 게임의 성공이 장르 전체의 부흥을 이끌지 못하고 있다는 점 역시 RTS 장르의 문제로 지적받고 있다. <다크소울>이 ‘소울라이크’라고 불리는 초고난이도 RPG 시장의 붐을 일으켰고 <던그리드>가 사이드뷰 로그라이트 던전크롤러 작품이 양산되는 계기를 만들었다면, RTS 장르의 성공작들은 그저 그 게임만으로 끝나고 유사 장르의 붐을 일으키지는 못한 것이다.

오히려 중국 게이머들이 <워크래프트3: 리포지드>가 발매됐음에도 여전히 <워크래프트3>로 대회를 진행하는 것처럼 대성공을 일으킨 RTS 게임의 팬들은 다른 작품, 심지어 자신들이 즐기던 게임의 공식 후속작이나 리마스터마저 거부하며 자신이 하던 게임만을 지속적으로 즐기는 경향이 크다.

한국 PC방의 여명기에, <스타크래프트>로 대표되는 RTS 장르는 당시 <리니지>로 대표되는 RPG 장르와 함께 PC방 업계 성장의 쌍두마차 역할을 했다. 그저 대학생이나 직장인, 사무직들이 급할 때 PC를 쓰는 장소에 불과했던 PC방을 지금의 ‘인터넷 컴퓨터 게임 시설 제공업’으로 이끈 주역은 뭐니뭐니해도 <스타크래프트>를 위시한 RTS 들이었고, 지금도 많은 업주들은 <리그오브레전드>가 통계상 ‘RTS’로 출력되는 것을 바라보며 그 때를 추억하기도 한다.

아쉽게도 추락한 이유가 명확한 RTS 장르가 AOS 장르를 제치고 또다시 PC방의 주력 장르로 날아오르기는 요원해 보이지만, 혹시 모른다. 현재 PC방 장르 점유율 1위의 자리에서 군림하고 있는 AOS 역시 <리그오브레전드>라는 걸출한 대작이 출현하기 전 까지는 PC방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듯이 장르의 역사는 결국 장르를 견인할 대작의 존재 여부가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다시 한 번 ‘국민게임’으로 취급받을만한 대작 RTS 타이틀이 나온다면, 그 날이 RTS라는 장르가 대세가 되는 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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