月刊 아이러브PC방 9월호(통권 358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PC방 업계는 태동 이래 가장 심각하고 강력한 위기에 직면했다. 바로 영업중단 행정명령이 발효된 것이다. 이제까지 바다이야기로 인한 억울한 오해, 전면금연화, 게임사 오과금 등 힘든 시기도, 억울했던 일도 많았지만 모두 헤쳐 왔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그간은 아무리 힘들었어도 매장 문을 닫는 일은 없었는데, 이번에는 기약 없이 문을 닫고 막막한 상황을 견뎌내야만 하는 상황이다.

이번에도 전면금연화 당시처럼 업주들의 조직적인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PC방 커뮤니티에서 ‘미소부부’라는 닉네임으로 잘 알려져 있는 박지영 사장이 구심점이 돼 PC방 업주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를 꾸렸다. 그런데 이제까지 보여지던 방식과 달리 온라인을 통한 행보와 소비자에게 직접 호소하는 방식 등 다양한 운동을 전개하고 있어 PC방 업계에 새로운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잠실 새내에서 3POP PC방을 운영하고 있는 ‘미소부부’ 박지영 사장을 만나 영업중단 이후의 PC방 현황과 현재 비대위에서 추진 중인 일들에 대해 들어봤다.

“갑작스런 고위험시설 분류와 영업중단 조치, 부당하고 무책임하다”
PC방 영업중단 조치가 한창이던 때 서울 잠실에 있는 박지영 사장의 매장을 찾았다. 불이 꺼져 어두컴컴한 계단에는 영업중단 조치를 알리는 공문들이 벽에 나란히 붙어있었고, 방화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마치 PC방 업계가 처해있는 현실이 눈앞에 투영된 듯 했다.

비대위 활동으로 바쁜 와중에도 약속 시간에 맞춰 도착한 박지영 사장이 출입문을 열자 불이 꺼진 매장 내부가 냉장고 불빛에 희미하게 실루엣을 드러냈다. 영업중단 조치가 시행되고 있는 지역의 PC방은 모두 이처럼 불 꺼진 매장에 냉장고 불빛만 새어나오고 있을 것이다.

영업 재개가 아니라 문을 닫아둬야 하는 상황에 매장에서 만나기 위해 어려운 걸음을 해준 것이 미안했는데, 박지영 사장은 16일 0시에 급하게 문을 닫고 들어간 터라 정리할 것은 없었는지 좀 살펴보고, 청소도 좀 해야겠다며 한숨을 쉬었다.

사실 모든 PC방이 마찬가지일 것이다. 갑작스레 영업중단 소식을 접하고 부랴부랴 문을 닫은 터라 제대로 정리도 못하고, 냉장고 속 먹거리의 유통기한에 따라 분류조차 제대로 못했을 것이다. 아무리 문을 닫아두고 있다고 해도 며칠에 한 번씩은 청소와 환기를 해야 영업을 재개할 때 손님들에게 쾌적한 환경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에 겸사겸사 매장을 둘러보겠다는 것이다.

“결정은 정부가, 모든 피해와 책임은 PC방이”
냉장고 속 냉동 식재료는 차곡차곡 정리가 되어 있었지만, 신선식품류와 냉장 식품류는 보이지 않았다.

박지영 사장은 정세균 총리가 영업중단 조치를 공표하기 직전에 냉장 식품 50인분을 주문했고, 행정명령이 발효된 이후 주문한 제품을 받았다. 영업중단 조치가 무기한으로 이뤄져 사실상 언제 해제될지 알 수가 없었기에 막연하게 매장 냉장고에 보관만 해두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판단, 음식을 부모님과 형제들, 주변 지인들에게 모두 나눠주었다고 한다.

디스펜서에 채워져 있던 음료와 유통기한이 짧은 먹거리들은 당일 매장에 앉아있던 손님들에게 자초지정을 설명하며 모두 나눠줬다. 갑작스런 영업중단의 억울함을 알리고 해제 후 다시 찾아와달라는 호소였다.

언제 다시 영업을 시작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에 처해있고 물 새듯 빠져나가는 경상비를 줄여야만 하는 입장이지만 인터넷전용선 하나 일시 중단으로 돌리지 못하는 현실에 또 한 번 한숨을 내쉬었다. 월 수십만 원에 달하는 지출이지만, CCTV 등 보안 유지는 물론 노하드 서버 업데이트를 위해 울며 겨자먹기로 유지해놓은 상태였다. 이는 PC방 사장이라면 거의 모두가 동일하게 겪고 있는 상황일 것이다.

노하드서버는 영업을 중단할 당시에 껐다가 각종 업데이트 때문에 다시 켜놓았다. 오픈 당일에 부랴부랴 준비를 하기 보다는 평소에 준비해놓자는 생각에서다.

아무런 예고도, 아무런 대책도 없이 갑자기 PC방을 고위험시설로 분류하고, 영업중단에 이르게 한 정부의 결정이 소상공인들에게 어떻게 희망과 기대를 무너뜨렸는지, 또 어떤 무력감과 피해를 주었는지 엿볼 수 있는 일화가 아닐 수 없었다.

박지영 사장이 이러한 현실에 부당함과 억울함을 느끼고, 잘못된 것을 올바로 바로잡아야겠다는 생각을 행동에 옮기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행동해야 변화 이끌 수 있어, 대상과 방법에는 변화를…”
박지영 사장은 오래전부터 1인 시위와 집회 등 콘텐츠조합의 크고 작은 운동에 참가해왔다. 콘텐츠조합 활동 과정에서 제작물 등이 필요하면 직접 나서서 만들기도 하면서 행동하는 양심이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다.

옳은 일에 목소리를 내니 뜻을 함께 하는 사람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고, 순식간에 백여 명에 가까워졌다. 이들은 불평만 하는 방관자가 되지 않고 행동으로 실천하겠다고 모인 만큼 ‘PC방 비상대책위원회’를 발족, 그 이름 아래 무엇을 언제 어떻게 할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논의하고는 곧바로 실천하기 시작했다.

비대위는 SNS를 통한 릴레이챌린지, 매장 문 앞 호소문 및 엑스배너, 회원들에게 문자 발송, 유튜브를 통한 대중 호소 등을 진행 중이다. 그간의 방역 노력과 집단감염 및 전파 사례가 없다는 사실을 알리는 한편, 소비자의 응원을 이끌어내서 제도권에 행동하는 업종이라는 인식을 강하게 각인시키고자 하는 의도다.

소비자이자 젊은 미래 세대에게 직접 그들의 언어법으로 소통해야 PC방의 목소리가 제대로 전달될 수 있다는 방법론적인 일대 변화이자, 일반인들의 PC방에 대한 오해와 불안을 불식시키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무엇보다 고위험시설 지정의 부당함을 알리는 릴레이챌린지는 독도와 땅끝마을, 마라도 등 대한민국의 영토와 주권을 상징하는 곳에서 진정성 있는 메시지로 진행되면서 대중에게 공감을 사는데 성공했다. 또한 PC부품 업체들이 하나둘 동참하면서 대중적인 호소력이 커졌고, 유튜브를 통한 영상은 그 전파력과 기록으로서의 힘을 갖게 됐다는 점에서 그간 집회 등 강력한 운동들과 확연히 다른 방법, 다른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비대위는 큰 틀에서 뜻이 같은 PC방 특별대책위원회에 조력자로 합류했지만, 이처럼 방법론 등 세부적인 측면에 있어서는 다소 차이가 있다. 박지영 사장은 이를 눈앞의 위험에 대한 저항 차원도 있지만 좀 더 근본적으로는 ‘포스트 코로나’를 위한 캠페인 차원이라고 정의했다.

작금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도권의 PC방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지 못한다면, 또 소비자인 일반 대중의 인식 변화와 지지를 이끌어내지 못한다면 이러한 사태는 앞으로 더욱 더 자주, 심각하게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싶었다고 한다.

이러한 노력만으로 현재의 상황이 당장 해결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하지만 밭에 씨앗을 뿌리 듯 장기적으로 대중의 눈과 귀에 현실을 알려 변화의 초석을 다지는데 그 의의가 있다고 봤다.

“언제가 떠나겠지만, 그 전에 오해와 그릇된 인식은 바꿔놓고 싶다”
박지영 사장은 번화가에 위치한 매장의 운영이 제법 잘 돼서 밤낮 없이 일에만 매달려왔던 터라 몸이 힘들어져 언젠가는 이 일을 그만둘 요량이었는데, 이번 영업중단 사태를 겪게 되면서 오히려 행동력이 커졌다고 덧붙였다. 떠난 뒤에도 자신이 오랜 기간 몸담았던 업종에 대한 오해와 좋지 않은 인식이 계속되는 것을 바라지 않아 언제가 되었든 떠나기 전까지는 전력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현재 직원들은 물론 이전 직원들에게도 도움을 청해 음원, 영상제작 및 조언 등 다양한 동참을 이끌어 내고 있다고 한다. 대부분 자신이 몸담고 있는, 몸담았던 업종에 대한 오해를 해소하고자 도움의 손길을 보내줬다며,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고도 했다. 그리고 그러한 응원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대중을 향한 활동은 계속 이어가겠다며 전국의 모든 PC방 업주들에게 적극적인 관심과 동참을 호소했다.

인터뷰를 마친 후 기자가 매장을 나서려고 할 때 박지영 사장은 카운터 PC 모니터에 붙여져 있는 점검해야 할 항목 리스트에 빼곡히 적힌 것을 되뇌며 청소와 정리를 시작했다. 영업이 멈췄다고 지출이 줄어든 것이 아니며, 노동이 필요 없어진 것도 아니다. 오롯이 자영업소상공인에게 짐이 떠안겨지고 불공정한 조치가 행해지는 현재의 상황은 단지 박지영 사장만이 아니라 PC방 업계 종사자 모두에게 처해진 현실일 것이다.

가까운 시일에 비현실적인 분류 기준이 개편돼 PC방이 고위험시설이라는 낙인에서 벗어나 영업이 재개되는 날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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