月刊 아이러브PC방 4월호(통권 329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최근 국회 앞에서는 미세먼지와 빗줄기 속에서도 고독하게 피켓을 들고 서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이 쓸쓸한 풍경은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소상공인연합회의 1인 릴레이 시위 모습이다.

현재 국회에 발의된 상태인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 특별법안’은 소상공인 업종을 선정해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법제화하고 사회적·경제적 보호가 필요한 소상공인들로 경쟁을 유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다시 말해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 특별법’은 돈 많은 기업체가 영세 소상인들의 생존 영역을 마구 헤집고 다니지 못 하도록 제동을 건다. 촘촘하게 들어선 대형 마트로 인해 재래시장이 쪼그라들고, 골목골목을 파고든 편의점 프랜차이즈 때문에 동네 슈퍼마켓들이 괴멸 직전까지 몰린 실정에 숨통을 터주는 역할이 기대된다.

그런데 PC방은 이 법안에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이미 오래 전부터 PC방 업주들의 도마 위에는 거대 자본을 등에 업고 오픈하는 대형 매장들이 올라 있었다. 전면금연화나 최저임금, <배틀그라운드> 상용화 같은 큰 사안들에 가려져 눈에 띄지 않았을 뿐이다.

전면금연화와 최저임금은 각각 흡연실 설치가 법으로 강제돼 지자체의 행정처분이 내려지면, 인건비 지출이 증가하면 자연스럽게 피부에 와닿은 사안이다. 반면, 대기업 PC방들이 속속 생겨나 주변 상권을 초토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려면 내 매장 인근에서 그 일이 일어나야만 체감할 수 있다.

내가 속한 상권에 아직 이런 매장이 없다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막대한 자금이 투입된 700대 규모의 대형 PC방, PC 제품 유통의 절대자 수준인 다나와의 DPG존 PC방, 주연테크의 브리즈 PC방, 국내 인터넷방송 플랫폼의 선두주자 아프리카TV의 오픈스튜디오 PC방 등 기업형, 그것도 상장사가 뛰어든 프랜차이즈 PC방이 동료 업주들의 터전에 물밀 듯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PC방은 게임 개발사가 만든 게임을 퍼블리셔를 통해 구입하고, 제조사가 제작하는 PC 제품을 유통사에서 산다. 그리고 매장을 찾아온 고객들이 다양한 기업에서 서비스하는 온라인 콘텐츠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

이런 기업들이 PC방 사업에까지 손을 뻗으며 영세 PC방 업주들의 영역을 침범하고 있는 와중에 우리는 이 업체들의 상품까지 구입해줘야 할 판이다. 배신감을 추스르기도 어려운 가운데, 전쟁 중인 적군에게 군자금을 대줘야 하는 울분을 가라앉혀야 할 참이다.

그렇다고 이윤을 추구하고 사세를 확장하려는 기업들의 노력을 무턱대고 비난하기는 또 어려운 구석도 있다. 게임사나 유통사에게 PC방 만큼 활용 가치가 큰 분야도 없고, 이를 통해 수익을 내려는 기업들의 움직임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국회 앞 1인 시위 풍경이 더욱 쓸쓸하게 다가온다. PC방이라는 업종의 발자취를 돌이켜 보면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 특별법’에 완벽하게 들어맞는 업종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다.

지난 1997년 IMF라는 거센 폭풍이 대한민국에 들이닥쳤고, 수많은 가장들이 직장을 잃었으며, 수많은 가정의 생계가 위험에 빠졌다. 어렵게 모은 종자돈으로 차린 PC방은 이들의 삶을 지탱해준 희망이었다.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 특별법’은 진작에 국회를 통과하고 PC방은 당연히 여기에 속했어야 하지만 안타깝게도 법이라는 것은 언제나 현실보다 한 박자 늦다. PC방 전면금연화, 온라인게임 약세, 인기 신작의 부재, 기업형 PC방의 난립 등 각종 악재가 잇달아 터지면서 생계형 영세 PC방들 중 상당수가 이미 고사했고, 많은 동료 PC방 업주들이 우리 곁을 떠나갔다.

연중 최악의 비수기를 지나는 시점에 PC방 업주들의 시선이 온통 <카카오 배틀그라운드>의 PC방 상용화에 쏠려 있는 사이, 대부분 품목의 적합업종 권고기간 만료 시점이 두 달 앞으로 다가왔다.

생업에 치여 아등바등하는 사이 미처 살피지 못했던 주변을 돌아보고,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도 챙기는 4월이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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