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방이라는 업종은 이미 프랜차이즈와 기업형 매장이 장악해서 생계형 매장이 설 곳 없는 골목상권과 같다’ 라는 진단에 단호하게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또 말로만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 아니라 몸소 실천하면서 이 이의를 증명하는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

90년대 중반부터 현재까지 수십 년간 축적되며 완성된 PC방이라는 구조 안에 가만히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들의 수요를 읽고 이를 반영해 무언가를 더하고, 빼고, 고치고, 장식하며 앞으로 나가는 PC방이 있다.

서울 종로구 성균관로에 위치한 가오두안왕카 PC방이다.

배고프면 빨리 숟가락 들어야
법무부가 발간하는 ‘출입국 · 외국인 정책 통계연보’에 따르면 올해 체류 외국인 숫자는 210만 명을 돌파할 전망이다. 통계청과 법무부가 공동으로 실시한 ‘이민자 체류실태 및 고용조사’에서도 15세 이상 이민자(상주인구 기준)는 127만 8천 명으로, 올해 인구총조사에서 조사된 한국 전체 인구 5,144만 6천 명의 2.4%에 달했다. 대한민국은 이미 다문화 시대를 맞이했다.

통계청이 지난달 발표한 ‘2017년 한국의 사회동향 보고서’에서도 외국인 유학생은 지난해 10만 4,000명을 기록했다. 이중 중국인 유학생은 거의 절반에 이르는 5만을 상회한다고 하니 유수 대학이 몰려 있는 대학로에 가오두안왕카 PC방이 지난 8월 생겨난 것은 필연이다.

어찌보면 느리다고도 할 수 있겠다. ‘대학로에서 공부하는 중국인 학생들’보다 훨씬 작은 고객층을 노린 수많은 매장과 업종들이 이미 성업 중이었으니 PC방 업계가 이런 쪽에서는 반응이 늦은 셈이다.

소문을 듣고 찾아간 가오두안왕카 PC방은 건물 입구와 간판에서부터 뚜렷한 인상을 준다. 수년 동안 대한민국 PC방을 여기저기 다녀봤지만 입구를 새빨간 레드컬러 일색으로 꾸민 곳은 처음이었다. 또 간판에 한글이 없는 경우는 흔하지만 한자(漢字)를 전면에 내세우고 이를 영자(英字)가 떠받치는 경우도 처음이었다.

자신의 정체성을 강렬하게 표출한 가오두안왕카 PC방에 들어섰다. 정갈한 인테리어, 소박한 카운터에서 조리에 열중하고 있는 귀여운 알바생, 그 옆을 지키는 먹거리 코너와 선불결제기, 그리고 멋쩍은 미소로 맞아주는 사장님을 만날 수 있었다.

반도 속의 작은 대륙, 가오두안왕카
가오두안왕카 PC방은 대로변 골목길 지하에 자리잡은 51대 규모의 소형 매장이다. 매장간 경쟁이 치열하고 임대료 역시 무시무시한 대학로 상권에서 소형 PC방이라니…. 이게 무슨 배짱인가 싶었다.

오후 7시경 매장은 이미 만석이었다. 출입문에 달아 놓은 종이 쉴 새 없이 흔들리는 통에 신경이 쓰였다. 고객이 출입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종이 울렸고, 만석을 확인한 후 나가느라 또 종이 울렸다. 매장에 있는 내내 이 종소리에 익숙해져야만 했다.

익숙해져야 하는 낯선 소리는 한 가지 더 있었다. 바로 귓가를 맴도는 중국어였다. 한자로 쓰인 엑스배너와 선불결제기 안내문, 중국 과자와 간편식 국수, 냉장고에 비치된 중국 음료에서 이 매장의 고객층을 실감하긴 어려웠지만 청신경은 ‘이제 파악 좀 해라’라고 역설하고 있었다.

51대의 모니터에서도 약간의 이질감이 느껴졌다. 고객들이 즐기고 있는 게임이 <배틀그라운드>, <리그오브전드>, <오버워치>, <던전앤파이터>라는 사실은 알았지만 가까이 가서 보니 UI와 텍스트는 꼬부랑 한자였다.

이원찬 사장은 “지금 기자님이 보시는 풍경이 제가 매장을 열기 전에 구상했던 모습 그대로에요. 사실 저도 오픈한 지 4개월밖에 안 돼서 아직도 낯설게 느껴져요. 그런데 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합니다”라고 입을 뗐다.

“중국인 유학생이 주력 고객인데 아예…”
저렴한 이용요금과 고품질 시설, 초고속 인터넷과 고사양 PC, 쾌적한 분위기와 배부른 간식까지. MBC에브리원의 예능 프로그램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는 다양한 나라에서 온 외국인 관광객들의 좌충우돌 한국 여행기라는 컨셉으로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데, 핀란드편에서 나온 ‘이런 곳에 살면 내 인생 끝이야!’라는 멘트는 PC방이 가진 세계적인 매력을 한 문장으로 전달한다.

▲ 인터뷰 내내 활력이 넘쳤던 이원찬 사장. 자신감 넘치는 PC방 업주는 오래간만이라 인상 깊었다

이원찬 사장은 ‘프리미엄 PC방’이라는 상호로 성균관대학교 인근에서 다년간 매장을 운영했고, PC방의 매력에 반응한 중국인 유학생들을 자주 상대하다보니 주력 고객층으로 타겟팅하게 됐다. 이내 생각을 심화시켜 이들이 편안하고 쾌적하게 느낄 수 있는 매장이 있으면 좋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매장을 오픈하기에 앞서 이원찬 업주는 컨셉 두 가지를 확실히 했다. 우선 전형적인 한국식 PC방일 것. 따라서 고사양 PC와 부담 없는 이용요금을 전제했다. 다른 하나는 고객이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할 것. 다년간 중국인 유학생을 상대하며 축적한 노하우를 바탕화면런처와 좌석 배치 등 세세한 곳에도 녹였다.

중국인 고객, 그들은 어떤 고객인가
그렇다면 가오두안왕카에서 게임을 즐기고 있는 이 고객들은 한국인과 비교해 특기할만한 다른 점이 있을까?

이원찬 사장은 “아직 오픈 4개월이라 특별한 에피소드도 없고, 특이한 고객이 있다고 해도 그걸 ‘중국인’이라는 범주에서 인식하기도 곤란합니다”라며 “여기 고객들은 제가 운영하는 다른 매장보다 매너가 좋고, 이용시간도 긴 편이라 PC방 업주 입장에서는 우량 고객이죠”라고 설명했다.

이어서 “한글을 잘 읽는 고객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고객도 있어요. 그래서 매장에 거의 상주하며 이용에 불편이 없도록 신경을 씁니다. 또 제가 중국어 작문을 어려워하기 때문에 안내문 등을 작성할 때는 학생들에게 도움을 받고, 인터넷으로 식자재를 구입할 때도 큰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고 말했다.

또한 고객의 국적보다는 대학생이라는 점을 오히려 크게 체감한다고 한다. 주머니 사정 때문에 ‘카카오배그’를 가입하는 경우도 적지 않고, 종강 시즌에는 귀국하는 경우가 많기에 긴장할 수밖에 없는 것이 대학상권이라고 전했다.

이런 거 이태원에 많거든요? 천만의 말씀!
가오두안왕카 PC방을 단순히 외국인들이 많은 지역에 있는 흔한 PC방 중 하나로 바라보는 시선에 거부반응도 나왔다. 이 사장은 “유동인구 많은 지역도 아니고 뜨내기손님 상대로 장사하기도 힘들어요. 가오두안왕카는 규모만 작을뿐 갖출 것은 다 갖췄고, 차별화 경쟁력을 지향하는 한국 PC방”이라고 말했다.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중국인들은 QQ 메신저를 많이 쓴다고 하는데 바탕화면에 바로가기 같은 거 만드는 정도 하나요?”고 질문을 던졌다. 이원찬 사장은 “PC 사양이 좋은 편이라 열혈게이머, 특히 <배틀그라운드> 고객이 7할인데, 이런 중국인 고객들은 어떤 보이스챗 프로그램을 쓸 것 같으세요?”라고 되물었고 순간 대답이 막혔다.

이 사장은 “한국인이랑 똑같이 디스코드를 씁니다. 왜냐하면 편리하고 음질이 좋거든요”라며 “이들과 같이 보낸 시간이 저의 자산이고 남들이 따라하지 못하는 노하우에요. 큰 빚을 내서 차린 PC방이지만 자신감이 있었기에 도전했어요”라고 설명했다.

▲ 스낵코너와 냉장고를 채운 중국 본토 과자와 컵누들, 음료수. 앉은 자리에서 바로 주문할 수 있는 중국식 간편 요리

또한 경험상 중국인 고객들은 불만사항에 대한 빠른 대응 및 원활한 의사소통 없이는 단골로 만들 수가 없었다며, 지금의 유창한 회화 실력도 수개월간 어학원에 다니면서 중국어 공부를 한 덕이라고 소개했다.

알고 보니 PC방 구력 10년차 베테랑
이원찬 사장은 PC방 업주로서 경력이 아니라 ‘아론 PC방’이라는 업체에서 일한 업계 종사자로서의 경력을 따지면 10년이 넘는 구력을 자랑한다. 알바생으로 PC방 업계에 투신해 매니저에서 점장으로 올라갔고, 다시 업체 실장에서 출발해 업주를 겸하며 지금의 자리에 있다.

그는 “복수 매장을 운영하는 사장님들 중에서는 이제 일선에서 물러나 인력관리만 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으로 압니다. 저는 배우는 자세로 매장에서 상주하다시피 합니다. 알바생과 일하고 고객과 소통하는 시간이 많을수록 아이디어도 생기고 현장감도 유지하거든요”라고 말했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PC방 업종에 몸담은 결과, 다각도로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기본적으로 탄탄한 현장내공이 깔려 있어야 한다는 지론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매장의 컨셉만으로 승부한다는 식의 질문에 신경질적인 반응이 나온 것도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코너 속의 인터뷰] 중국 유학생이 말하는 한국 PC방과 가오두안왕카

PC방 업주들은 아는지 모르는지, 대한민국 정부는 아는지 모르는지 PC방은 꽤 매력적인 한국의 콘텐츠다. 가오두안왕카 PC방에서도 이런 PC방의 매력에 흠뻑 취한 외국인 고객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단골 고객이라고 할 수 있는 대학생 2명과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었다. 이들이 말하는 가오두안왕카와 한국 PC방에 대해서 들어보자.

Q.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A.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22살 방명우입니다. 고향은 중국 윈난성이고, 성균관대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학생입니다.

Q. PC방은 일주일에 몇 번 오는가?
A. 일주일에 4번 정도는 되는 것 같아요. 평일에는 못 오기도 하는데 주말에는 거의 와요.

Q. 가오두안왕카 PC방 외 다른 PC방도 이용해본 적이 있는가?
A. 물론이죠. 게임을 좋아해서 중국에서도 PC방을 많이 이용했고, 한국에서도 이곳저곳 많이 가요.

Q. 한국 PC방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이 있다면?
A. 특별히 좋고 나쁘고 할 게 없어요. 중국이랑 별로 다르지 않거든요.

Q. 주로 무슨 게임을 하는지 궁금하다.
A. 최근에는 <배틀그라운드>, <리그오브레전드>, <오버워치>를 주로 해요. 친구들하고 올 때는 <배틀그라운드>와 <리그오브레전드>를 하고, 혼자 PC방 올 때는 <오버워치>를 해요.

Q. 가오두안왕카 PC방을 주로 이용하는 이유가 있다면?
A. 모니터가 다른 PC방보다 크게 좋아요. 제가 시력이 나빠서 큰 모니터가 중요해요. 또 인터넷이 학교보다 훨씬 빨라요. 또 신규 매장이라 깨끗해요.

Q.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A. 저는 강가결입니다. 장시성에서 교환학생으로 왔습니다. 명우랑 동갑입니다.

Q. 방명우 학생과는 어떤 사이인가?
A. 한국에서 처음 알게 됐습니다. 나이가 같고 게임도 좋아해서 친해졌습니다.

Q. PC방은 일주일에 몇 번 오는가?
A. 2번 정도 옵니다. 한 번 오면 5시간 이상 합니다.

Q. 가오두안왕카 PC방 말고 다른 PC방도 가봤는가?
A. 학교 근처 PC방을 가봤습니다. 여기 사장님이 그 PC방 사장이기도 합니다.

Q. 특별히 좋아하는 게임이 있는가?
A. <배틀그라운드>만 합니다. PC방에 같이 온 친구들이 다른 게임을 해도 <배틀그라운드>만 합니다. 그러다가 같이 <배틀그라운드>를 합니다.

Q. 가오두안왕카 PC방의 좋은 점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A. PC나 모니터는 다른 PC방이랑 비슷합니다. 요금도 한 시간에 1,200원이라 다른 PC방이랑 비슷합니다. 사장님이 착하고 음식이 고향 느낌 납니다.

현장에서 만난 중국인 유학생 고객 2명은 가오두안왕카 PC방에 대한 느낀 점을 있는 그대로 얘기해줬다. 그들의 답변에서는 ‘특출난 무엇’ 보다는 머나먼 타지에서 만나는 ‘고향 같은 편안함’ 이 PC방의 경쟁력이 될 수도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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