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月刊 [아이러브PC방] 6월호(통권 271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PC방과 함께 성장해온 온라인게임의 과거를 돌이켜보면 그 중심에는 항상 MMORPG가 있다. <바람의나라>, <리니지>, <와우>, <아이온> 등 게임사(史)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걸출한 게임들은 MMORPG에 몰려있었고, PC방을 풍미하며 시대를 대표했다.

또한 MMORPG는 한국을 대표하는 주인공이다. 세계 최초의 그래픽 온라인게임인 <바람의나라>가 MMORPG였고, 세계 최초로 동시접속자수 10만 명을 돌파한 온라인게임인 <리니지> 역시 MMORPG다. 한국 온라인게임이 전체 문화콘텐츠의 수출액 가운데 대부분을 차지할 수 있게 한 원동력 역시 MMORPG였다는 점도 상기할 만하다.

하지만 온라인게임의 보루인 PC방에서 MMORPG는 더 이상 압도적인 점유율을 차지하지 못하고 있으며, 1위의 영예도 다른 장르에 내준지 오래다. MMORPG는 찬란했던 과거를 뒤로 한 채 노쇠할 운명일까?

 

쇠락해 버린 MMORPG…
1세대 MMORPG들은 영세했던 게임사를 단숨에 대기업 반열에 올려놓는 신화를 써내려갔고, 게임사들은 혈안이 되어 MMORPG 개발에 매진했다. 곧바로 도래한 MMORPG 홍수 속에서 일부는 흥행의 물살을 탔지만 다른 일부는 물결에 휩쓸려 떠내려갔다.

 

 

명운이 갈리는 와중에도 홍수가 계속되자 MMORPG 출시 소식에 설레던 게임 유저들은 언제부터인가 ‘또 나와?’라는 싸늘한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아졌다. PC방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인기를 구가했던 MMORPG의 위상에 금이 가기 시작한 이유는 어찌 보면 너무 인기가 많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러 분위기를 반영하듯 최근 게임업계에는 ‘MMORPG 위기설’이 대두됐다. 위기설의 골자는 준작 타이틀이 범람하면서 한정된 유저층이 분산됐다는 것이다. 또한 신작 MMORPG에 참신함이 결여되어 있어 유저들의 흥미유발에 실패하고 있으며, 결국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비판을 포함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PC방 게임순위 상위권에 진입하는 신작 MMORPG가 급감한 것을 근거로, 장르자체가 한계에 봉착했다는 ‘MMORPG 종말론’까지 펼칠 정도다.

장점이 단점이 되는 역설
그러나 ‘MMORPG 종말론’은 막강한 위세에도 불구하고 곳곳에서 맹점이 드러난다. 우선 MMORPG는 특정 유저들만 즐기는 고정된 유저층을 가진 장르라는 가정 자체에 문제가 있다.

이러한 가정은 MMORPG가 다른 장르보다 높은 유저충성도가 오래 지속되는 사실에 근거한 것인데 이는 게임사에게 매우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높은 유저충성도가 오래 지속된다는 것은 다시 말해 안정적인 매출과 연결되는 특성으로, 게임사들이 MMORPG를 개발하는 중요한 이유다.

또한 그만큼 오랜 기간 매진할 만한 ‘무엇인가’ 매력이 있다는 방증이며, 결국 신작 MMORPG는 계속 출시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많이 개발된다는 사실을 종말론의 근거로 삼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천재 아니면 게임 만들지 마?
비판의 핵심인 실험정신 결여도 생각해볼 문제다. 유저들의 눈에 띌만한 요소가 없는 게임은 시장을 선점하고 있는 타이틀과 경쟁하기 힘들고, 이는 누구보다 게임사가 잘 알고 있다.

 

 

<울펜슈타인 3D>가 FPS라는 장르를 만들어내고, <듄2>가 RTS의 문을 연 것과 같은 참신성을 모든 신작 게임에 요구하는 것은 너무 비현실적인 주문일 것이다.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은 게임이 보여준 재미를 버무려 발전된 콘텐츠로 변주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

MMORPG만큼 다양한 변주곡을 보여준 장르도 드물다. 게임 시장에 모습을 드러냈던 MMORPG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항상 기존 작품에 대항할만한 요소 한두 가지를 꼭 전면에 내세워 왔다. 물론 흥행으로 연결되지 못한 게임도 많지만 부차적인 결과다.

게임 개발사는 유저들의 심판을 미리 알고 게임을 개발하지 못한다. 개발 단계에서는 단지 ‘이렇게 만들면 좋아해주겠지’라고 믿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유저들의 반응을 미리 알고 싶어서 자원을 투자해가며 FGT를 진행하는 것이다.

흥행 실패를 두고 유저들의 취향에 부합하지 못하고, 재미를 설득하지도 못한 개발자의 무능함을 지적할 수는 있다. 그러난 흥행 실패를 가지고 장르의 한계라는 결론을 내린다면 너무 선급한 판결이다.

나 아직 현역이야
한편, MMORPG는 급변하는 게임 시장의 흐름 속에서도 다양한 변주곡을 연주하고 있다.

 

 

모바일 플랫폼에서 캐주얼 레이싱 및 TCG로 장르가 획일화되고, 라이트 유저만을 단기간에 공략하다 보니 게임의 수명이 짧아지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는 게임 유저 전체의 플레이 패턴에도 영향을 미쳐, 게임 플레이시간이 짧아지는 대신 보다 빈번하게 즐길 수 있는 게임이 인기를 얻고 있다.

MMORPG라는 장르는 헤비유저가 중심이 되는 하드코어 계열이 대부분이었지만, 점차 장시간 플레이를 지양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게임 유저들이 MMORPG의 장시간 플레이를 부담스러운 특징으로 인식하자 이를 개선해야 할 대상으로 파악한 것이다.

또한 모바일게임의 득세로 포지셔닝에 어려움을 겪으며 명맥이 끊어졌던 캐주얼 MMORPG도 부활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캐주얼 MMORPG에는 단순히 캐주얼하기만한 게임과 차별화된 재미가 있다는 반증이다.

마치며…
MMORPG는 MMO와 RPG가 만난 합성어로, 단어를 살펴보면 MMORPG는 사라지려야 도저히 사라질 수 없는 장르다. RPG가 선사하는 협력과 경쟁의 재미는 시대를 불문하고, MMO는 인간 대 인간이라는 커뮤니케이션과 맞닿아 있다. 오히려 지난 시간동안 축적한 성과를 토대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작품이 MMORPG에서 탄생할 것이고, 다음 세대 타이틀에게 영감을 선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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