月刊 아이러브PC방 2월호(통권 327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대한민국 게이머들의 게임 소비와 관련된 각종 통계를 살펴보면 ‘PC방 이용’ 부분에서 아주 뚜렷하면서도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경향이 하나 있다. 바로 PC방 이용자들의 연령대가 10대와 20대에 절대적으로 몰려있다는 점이다. 게임이라는 아이템을 주력으로 하는 이상 PC방이 피할 수 없는 숙명이라고 치부해버릴 수도 있는 현상이지만 이의를 제기할 여지가 아주 없는 것도 아니다.

게임이 남자애들이나 하는 놀이 정도의 위치에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제는 남녀를 불문하는 적지 않은 비중의 취미생활이 된지 오래다. 또한 공신력 있는 통계자료들은 20대들이 가장 즐기는 여가 활동으로 게임을 꼽고 있고, 이제는 30~40대가 되었어도 소싯적에 게임에 열광했던 게임키즈들은 여전히 게임을 즐긴다.

<리니지>나 <스타크래프트>가 전국 PC방을 풍미하던 시절을 돌이켜보면 친구들하고 떠들다가 구석자리 아저씨한테 혼나는 꼬맹이들이 있었다. 지금쯤이면 그때 그 시절 꼬마는 20대 막바지의 청년이고, 경을 쳤던 아저씨는 할아버지가 됐다. PC방에서 삶의 한 때를 보냈던 이들은 지금도 어딘가에서 게임을 하고는 있을 것이다. 다만 그 장소가 PC방이 아닐 뿐….

PC방이라는 업종은 해마다 줄어들고 있는 성인 고객 탓에 깊은 밤 텅 빈 좌석을 볼 때마다 타는 목마름을 느낀다. PC방 업주에게  ‘어른들이 밤마다 찾아오는 매장’은  ‘예쁘고 착한 여친’,  ‘능력 있고 자상한 남편’ 처럼 비현실적이다. 이런 의미에서 서울시 중랑구 면목동 사가정 로데오거리에 위치한 제노PC방은 비현실적인 곳이라 하겠다.

비현실적 공간의 진상을 확인하다
제노PC방에 대한 소문만 듣고 찾아간 시각은 평일 오후 4시로, 겨울 성수기 피크타임이 시작되는 시간대다. 고객으로 위장해 좌석 규모와 고객 수를 얼핏 눈대중으로 살펴본 가동률은 40% 정도? 전국 평균은 찍는 곳이라는 결론이 섰고 마침 매장에서 있던 정호준 사장에게 막무가내로 PC방 소개를 해달라고 졸랐다.

흔쾌히 취재를 수락한 정호준 사장에게 가장 먼저 부탁한 것은 관리프로그램에서 최근 가동률을 보여 달라는 것이었다. 고객들의 신상정보를 확인할 길이 없는 이상 성인 고객이 많다면 분명 야간 가동률도 높을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소문의 진상을 확인하고 싶었다.

카운터 PC 모니터에 펼쳐진 숫자들은 놀라웠다. 최근 한 달 동안, 가동률이 가장 낮은 심야 시간에도 가동률이 20% 밑으로 내려가는 날이 없었다. 시간당 1,000원 요금에 170대 규모의 매장이니 오전 6시 같은 최악의 시간대에도 시간당 일정 매출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정 사장은 자신의 매장에서 가장 흡족한 부분이 심야 시간대 영업이라고 한다. 단순히 다른 매장에 비해 가동률 높아서가 아니라 안정성도 높기 때문이다. 심야 시간대는 특정 고객 한두 명에게 매출이 좌지우지되는 경향이 있지만 심야 고객들이 다양한 이용 패턴을 보이는 가운데 20%를 돌파한 것이다.

왜 제노PC방에서는 성인만이 고객인가
그제서야 이 매장만의 독특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이건 마치 타임머신이라도 타고 10년 전으로 날아온 기분이었다. 이제 PC방이라 하면 매장을 가득 채우는 기계식키보드 소리와 손님들이 마구잡이로 내뱉는 욕설, 백색 LED가 내뿜어낸 삭막한 형광조명을 연상하는 시대지만 평일 오후 4시에 카운터에서 조용히 울려퍼지는 유행가, 어둡지만 고즈넉한 조명,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키보드 소리뿐이었다. PC방 업주가 갖은 노력을 기울여가며 고객을 걸러냄으로써 형성된 환경임을 직감했다. 이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PC방 업주인 독자들이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제노PC방의 이런 개성은 정 사장이 10년 전, 의정부의 한 PC방에서 매니저로 근무할 때 얻은 깨달음이 반영된 결과다. PC방에서 청소년들은 몰려다니면서 난장판을 만들었고, 이 때문에 성인 고객들과 마찰을 일으키곤 했다. 기물을 파손하는 주범이기도 했고, 매니저로서 가장 큰 스트레스였다. 성인 고객을 위한 매장이라는 콘셉트를 의욕적으로 추구한 것이 아니라 학생들로 인한 스스로의 스트레스를 최소화하려고 노력한 결과, 지금의 매장이 된 것이다.

현재 매장 고객의 상당수는 20대 초반에서 30대 초반에 집중돼 있으나 이 이상의 연령대도 적은 수는 아니라고 한다. 조용조용하게 PC방을 이용하고 싶은 30대 후반 연령층에도 PC방의 숨은 고객들이 있고, 이런 고객들에게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 정 사장의 설명이다.

애들 없으면 PC방 장사하기 쉽지 않다?
모든 통계자료들이 PC방의 주요 고객층을 10대라고 말하고 있다. 정 사장은 이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그는 PC방 매니저로 3년 동안 근무했을 당시의 일화를 들려줬다. 학생들이 고객의 다수였던 매장은 알고 보니 다른 매장에서 시끄럽게 구는 애들이 아저씨들한테 혼나서 흘러들어왔을 뿐 충성도 같은 것은 없었다.

후순위로 선택되는 매장이다보니 당연히 매출 피크시간도 늦게 왔고, 성인들이 꺼리는 PC방이라 심야 시간대 매출도 비참했다. 이런 천방지축 학생들한테 매일 치이는 스트레스는 알바생들의 단기근로로 이어졌고, 악재가 쌓이는 총체적 난국이었다. 결국 매장은 문을 닫았다.

정 사장은 “최근 PC방 트렌드는 매출에서 PC 이용료가 차지하는 비중을 줄이고 부가수익을 내야 한다. 그런데 애들은 먹거리는 고사하고 PC 이용료 1~200원에 목숨을 걸고, 키보드나 마우스를 부숴먹기 일쑤다”라고 혀를 내둘렀다. 또 “옛날에는 어른들이 조용히 좀 하라고 하면 잠깐이라도 조용해지기라도 했는데 요즘은 귓등으로도 안 듣는다. 또 성인 고객은 이런 부분이 거슬리면 매장을 나가버리지 애들 붙잡고 말싸움하지도 않는다. 이건 PC방 업주가 신경써야 하는 중요한 부분이다”라고 밝혔다.

이렇게 했더니 PC방 고객들이 조용해지더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순간에도 매장 내 모든 고객들이 너나 할 것 없이 헤드셋 끼고 있었다. 이런 문화를 정착시키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었을지 감도 오지 않았다. 힘들지 않았냐는 질문에 정 사장은 의외로 “이게 참 재미있는 부분이다. 처음에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초반에 정숙한 분위기를 만들어 놓으니까 알아서들 헤드셋을 끼더라. 오히려 스피커보다 헤드셋을 더 좋아한다는 생각도 든다”고 답했다.

매장은 110좌석의 큰 구역과 60대의 작은 구역으로 나뉘어 있는 구조인데, 고객들에게 불만의 메시지가 카운터로 오면 시끄러운 고객을 60대 구역으로 격리한다고 한다. 또 60대 구역에서도 문제 행동이 개선되지 않으면 결국 내쫒는다.

성인은 자신만의 몰입감 있는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지 친구들과 왁자지껄 떠들려고 PC방에 오지 않는다. 때문에 단호해 보일 수 있는 이런 고객 관리가 주택가 상권에서 성인 고객들의 충성도를 유지하는데 도움이 됐다.

그렇다고 제노PC방이 학생은 발도 못 붙이는 곳은 아니다. 청소년들 중에서도 매너 좋은 고객이 있고, 그 반대의 성인도 있기 때문이다. 단골 고객들도 이런 검증된 학생들에 대해서 아무 불만도 없다고 한다. 정 사장은 “편의 상 애들과 어른으로 구분해 말하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다른 고객을 배려하고 우리 매장의 원칙을 지켜주는 태도다”라고 잘라 말했다.

헤드셋이 마우스/키보드 보다 중요할 수 있다
제노PC방의 주요 고객층과 정숙한 분위기를 선호한다는 특징에는 다른 평범한 PC방들의 상식이 통용되지 않는다. 거의 모든 고객들이 헤드셋을 자율적으로 착용하는 문화와 <배틀그라운드>의 높은 점유율, 그리고 <배틀그라운드>에서 사운드플레이가 차지하는 비중 때문이다.

PC방 운영에서 헤드셋이 마우스/키보드보다 더 중요한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또한 TV와 영화를 시청하는 고객들도 적지 않은 관계로 이런 고객들까지 고려하다보니 어느새 헤드셋이 가장 중요해진 것이다.

또한 헤드셋 선택 기준도 다르게 나타난다. 각 좌석마다 헤드셋을 비치해두는 방식이 아니라 카운터에서 각자 받아가는 형태로 운영하다보니 3.5mm 오디오 단자의 고장률을 감당할 수 없어 USB 방식만 사용한다.

정 사장은 “고객들은 헤드셋의 내구성은 과대평가하고 자신의 팔뚝힘은 과소평가 한다. 헤드셋의 덕목은 튼튼함이다”라고 말했다. 또 “음질이나 디자인 같은 부분은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요즘 헤드셋들은 웬만하면 다 성능이 좋고 생긴 것도 멋있다”라고 덧붙였다.

어른이 이용하는 PC와 게임이 궁금하다
PC 사양은 인텔 코어 i5 하스웰, 지포스 GTX1060, RAM 12GB로 평이한 수준이다. 매장 내 <배틀그라운드> 점유율이 40%를 훨씬 상회하는 사실을 감안하면 오히려 낮은 사양에 속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매장에서 누릴 수 없는 분위기가 충성도 높은 고객층을 형성했기에 업그레이드 조바심이 없다.

오히려 고민이 있다면 성인 고객 위주의 매장이라고는 하지만 20대 비중이 상당히 높고 이 나이대에서 선호하는 <배틀그라운드>, <리그오브레전드>, <오버워치>에 게임이 편중되어 있다는 점이다. 특정 게임들의 점유율 과점 현상은 PC방 업주가 나선다고 해결될 수 없는 성질의 문제라 더 막막한 측면이 있다.

또한 <배틀그라운드>와 관련해 심각한 과제도 풀어야 한다. ‘스팀배그’ 고객들이 핵 때문에 괴로워 하다가 결국 게임을 접거나, 지칠대로 지쳐서 고객들이 하나둘 ‘카카오배그’로 이탈한 것이다. ‘스팀’의 장점은 PC방 과금이 없다는 것인데 펍지의 대처가 핵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사이 어느새 ‘카카오배그’가 ‘스팀배그’를 추월했다.

한편, 정 사장은 자신이 한창 PC방에 다닐 무렵 즐겼던 MMORPG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면서 엔씨소프트가 더 분발하고, 블루홀의 <에어>와 넥슨의 <천애명월도>가 선전하기를 바라기도 했다. 그는 고객 연령층 확대와 체류시간 증가라는 측면에서도 MMORPG는 PC방 업주에게 굉장히 중요한 장르라고 진단했다.

집에서 누릴 수 없는 그 무언가 있어야
PC방 고객들은 모두 집에 PC가 있다. 때문에 집에 없는 무언가가 PC방에는 있어야 한다. 그리고 제노PC방의 그 무언가는 먹거리였다. 정 사장은 동료 업주 중 한 명이 매출 다각화에 관심이 많아 먹거리 아이디어를 얻는다. 또 필요하면 푸드 전문가를 찾아가서 PC방에 어울리는 먹거리 컨설팅을 받고, 레시피도 연구한다. 이렇게 나온 자작품이자 히트상품인 ‘오리지널 핫도그’로, 지금은 매장의 주요 수입원으로 자리 잡았다. 노력을 통해 효과를 봤기 때문에 요즘도 먹거리 레시피를 연구하고 검색한다.

또한 먹거리는 알바생들의 일손을 최소화 하는 방향으로 기획한다. 건성으로 조리하게 되면 필히 맛이 없어지고 이는 매출에 타격으로 돌아온다. 전문가 컨설팅을 받을 때도 이런 PC방 환경에 대한 설명으로 그들의 이해를 돕는다. 또 고객들의 아이디어와 요구를 전폭적으로 수용하기도 한다. 결국 고객이 소비자고 그들에게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들을 수 있었다. 음식 주문이 들어오면 알바생에게 알릴 목적으로 ‘띵동’ 소리가 나는데, 조리 속도가 따라가지 못해 하도 띵동거리니까 카운터 근처에 앉은 고객이 궁금할 지경이라며 음식을 주문했다고…. 그리고 이 고객은 요즘 식사할 요량으로 매장을 방문한다고 한다. “이 PC방에서 먹어야 밥 제대로 먹은 기분”이라는 고객의 피드백을 자랑하기도 했다.

마치며…
정호준 사장은 최저임금 때문에 난리지만 장사가 지금처럼만 유지되면 좋겠다며 고객들의 충성도를 올릴 방법을 우선했다. 지금도 매장 콘셉트에 대한 충성도가 있는 편이지만 여기서 만족하지 않겠다는 포부다. 오픈 초기에는 좌석당 마우스 2개도 비치하기도 했는데 고객들은 익숙함 때문에 낡아빠진 G1을 썼다. 결국 고객들의 취향에 맞춰 낡은 G1으로 다시 회귀했다.

정 사장은 “독특하고 개성 있는 제품을 비치하면 초기에 충격은 있겠지만 우리 매장을 좋아하는 고객들이라 결국 여기에 익숙해질 것이라 본다. 이러면 다른 매장에서의 경험이 생경해지고 우리 매장에 대한 충성도로 연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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