月刊 아이러브PC방 3월호(통권 364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로봇이 PC방에서 음식을 서빙한다니… 이게 웬 잠꼬대 같은 소리인가 싶지만 사실이다. 2021년 대한민국 PC방에서는 로봇이 주방에서 손님에게 음식을 나르고 있다. 귀밝은 업주들 사이에서 이미 화제가 된 성남 위례신도시 아이센스리그 PC방 얘기다.

생각해보면 로봇이라는 단어가 가진 공상과학적 신비감만 배제한다면 최근 PC방을 둘러싼 환경 변화에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아이템이 로봇이다. 정부가 야심차게 홍보하고 있는 4차 산업시대 및 디지털 뉴딜의 간판이고, 지난 1년 동안 비대면을 통한 바이러스 프리(Virus Free)는 코로나19에 대한 해답이었고, 자동화 및 무인솔루션은 살인적인 인건비 상승 국면에서 살아남기 위한 자구책으로 역할을 해왔다.

범인(凡人)들과 다르게 아이센스리그 PC방에게 이 로봇은 선도적 아이템들과 크게 다를 바 없었던 것일까? 돌이켜보면 선불결제기도, 무인솔루션도 PC방 업계에 도입이 논의될 초기에는 비관적인 평가가 중론이었지만 지금은 PC방 풍경 속에 너무나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소문이 파다한 PC방 로봇친구를 만나봤다.

로봇의 이름은 PC방 역사에서
아이센스리그 PC방에 도착해 카운터 앞에 서자 운좋게도 로봇은 이제 막 부여받은 임무를 시작하기 위해 눈에 불을 켰다. 로봇의 얼굴이라고 할 디스플레이는 심히 귀여운 표정이, 무릎높이에 불과한 깜찍한 덩치가 눈에 들어왔다.

머리에는 핫도그 2세트를 이고 이리저리 방향을 바꿔가며 PC방의 기지라고 할 카운터와 목적지라 할 손님 좌석을 왕복하는 모습이 여간 신통한 것 아니었다. 서빙 임무를 마치고 다소곳이 충전기로 돌아와 다음 임무를 기다리는 모습은 방송 프로그램에서 소개되곤 하는 견공 ‘댕댕이’를 연상시켰다.

녀석의 임무는 단순히 음식 서빙만이 아니었다. 주말을 맞아 분주한 PC방 알바생들의 일손을 덜어주기 위해 현금 계산 시 발생하는 잔돈 전달 업무까지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크게 무겁지 않은 물건의 매장 내 배달은 뭐든 척척 해냈다.

생긴 것도, 하는 짓도 호감인데 마음에 드는 구석이 하나 더 있었다. 바로 이름이다. PC방에서 주어진 임무를 묵묵하게 수행하는 로봇에게 이름이 있다면 그 이름은 정해져 있을 수밖에 없다. 바로 SCV(Space Construction Vehicle). 실제로 이곳 알바생들이 사용하는 애칭이 바로 ‘에씨비’다.

에씨비의 PC방 데뷔 비하인드
에씨비를 제작해 아이센스리그에 투입한 업체는 클로봇이라는 로봇전문 벤처기업으로, 모빌리티 기반의 안내/배송/방범/탐지 로봇 서비스의 전체 라이프 사이클을 지원하는 종합 솔루션을 지향한다.

23년 경력의 아이센스는 이미 시스템책상 ‘블루오션’으로 공전절후의 혁명을 일으킨 PC방 프랜차이즈로, PC방 외에도 만화카페 벌툰, 치킨카페 치킨의민족, 스터디카페 초심 등 영역을 확대하며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에씨비는 양사 대표의 친분으로 데뷔했다. 로봇의 기획 및 컨설팅, 플랫폼 디자인, 응용 서비스 개발, 관리 및 유지보수가 사업인 클로봇은 진출할 영역이 필요했고, 끊임없이 경쟁력을 증명하고 시장을 선도해야 하는 아이센스는 잠재력이 출중한 아이템을 물색 중이었다.

현재 에씨비는 내부 알파테스트 단계로 상용화나 공개서비스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자동차회사들이 모터쇼에서 공개하는 콘셉트카 정도의 단계라고 한다. 아이센스리그 위례점 문정민 총괄은 “언론의 주목을 너무 받는 것 같아서 민망하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왜 성남시 위례 중앙점인가
아이센스 간판을 달고 있는 PC방은 전국에 셀 수도 없이 많은데 위례점이 테스트베드로 선정된 이유는 간단하다. 위례점은 아이센스 본사의 직영중앙점으로, 사내 매뉴얼에 가장 부합하는 표준설비를 갖췄다.

에씨비의 테스트는 양사의 긴밀한 협업과 즉각적인 소통이 이뤄져야 했기 때문에 함께 개발하는 수준으로 동고동락하지 않으면 PC방 업계 전체에 통하는 퀄리티의 서빙로봇이 만들어질 수 없다는 생각이 양사 모두 일치했다.

단순히 직영점이라는 상징성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기준에 가장 근접한 매장인 것이다. 향후 에씨비가 다른 매장에서 활동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늠하기에 적합하다는 것이 클로봇과 아이센스의 일치된 판단이다.

위례점은 아파트단지 중심에 자리한 상업단지에서 중대형 매장 5곳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지옥상권에 자리잡았다. 치열한 상권은 서빙로봇이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예측하고 실제 결과를 데이터로 축적하는 작업에 적당하다는 장점이 있다.

PC방에서 되면 어디서든 된다
실제로 테스트를 진행하면 진행할수록 이런 결정이 정확했음이 밝혀졌다. 클로봇 측의 설명에 따르면 PC방에서 서빙로봇을 성공시킬 수 있다면 다른 그 어떤 곳에서도 통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PC방은 로봇 개발자가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환경이기 때문이다.

넓지도 좁지도 않은 좌석 사이의 공간을 비집고 돌아다녀야 하는데 손님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 화장실이나 흡연실에 갈 수도 있다. 그런데 아닐 수도 있다. 이러면 로봇의 센서는 혼란에 빠지고 개발자도 괴로워진다.

또한 음식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배달하기 위해서는 땅바닥마저도 극복의 대상이다. 매끄럽게만 보이는 타일바닥은 로봇의 주행을 방해하고 고장의 원인이며 국물음식의 주적이다.

심지어 음식을 서빙해도 손님이 받아주지 않아 에씨비를 곤란하게 하곤 한다. 이게 무슨 소리냐면 모니터 속 게임에 집중한 손님의 주의를 끌어야 한다는 의미다. 손이 없는 에씨비는 도착 알림으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는데, 매장에는 이미 음악이 흘러나고 있고, 손님은 헤드셋을 착용 중이다.

그래서 에씨비는 모종의 이유로 배달에 실패했다고 판단하면 카운터에 신호를 보내는 것으로 도움을 요청하게 된다. 이런 경우를 최소화하기 위해 클로봇 관계자는 매장에 전용석을 마련해두고 매일 같이 출근하며 배달에 실패한 데이터를 분석하고 있다.

에씨비의 미래는 어떤 모습?
위례점 문정민 총괄은 “피드백을 반영해 UI와 로직이 빠르게 발전하는 모습을 전부 지켜봤다. 에씨비가 매장에 온 것도 오래됐지만 앞으로 어떻게 발전할 것인지 예측이 안 된다”며 “클로봇 측에서도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에씨비 다음 버전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최초의 에씨비 기획은 마치 회전초밥집과 비슷한 레일식 서빙로봇이었다. 그러나 이런 레일식 설계는 다양한 매장에 적용할 수 없는 경직성, 매장 리모델링에 장애물로 작용하게 된다는 이유로 기각됐다.

다음은 다채로운 센서로 중무장해 급변하는 물리적 환경을 빠르게 파악하고, 무게를 감지해 빈 쟁반과 음식을 구분해 손님이 버튼을 누를 필요도 없는 버전이었다. 최적화된 주행경로 생성과 극도로 간소화된 UI였다. 하지만 비용이 크게 상승하는 문제를 낳았다.

에씨비는 정확한 공간 인지를 위해서는 다소 부족한 센서를 360도 회전을 통해 극복한다. 눈을 뒤통수에 하나 더 달면 좋겠지만 비용을 줄이기 위해 한 바퀴 도는 것이다. 또한 바퀴를 우레탄 재질로 교체함으로써 PC방 타일 바닥에 대한 적응을 마쳤다.

아이센스 측은 카드결제와 관련된 편의성을 에씨비 다음 버전의 핵심 과제로 설정하고 있다. PC방 관리프로그램과 연동하는 것은 물론이고 카카오페이와 연계하는 등 기능을 좀 더 확장해나가기 위해 논의를 지속하고 있다고 한다.

로봇은 도전하고 극복하는 수단
문 총괄은 “PC방 운영의 모든 해답은 손님들에게 있다는 것이 저의 지론이다. 손님들의 의견을 놓치지 않으려 끝없이 소통하는 자세는 업주는 물론 점장과 알바 모두에게 최고 미덕이다. PC방 로봇의 성패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에씨비와 마주하는 손님들의 반응을 클로봇이 정확하게 전달 받을 수 있어야 하고, 서빙로봇에게 기대할 수 있는 최선의 역할을 알바생들의 일손을 돕는 보조자 정도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로봇은 상승하는 인건비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것이다.

그는 “코로나19로 인해 PC방 업계가 심대한 타격을 받았지만 사장님들 모두 용기와 희망을 잃지 않았으면 한다”라며 “로봇이라는 새로운 시도를 통해 도전하고 발전하는 아이센스리그 PC방의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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