月刊 아이러브PC방 12월호(통권 361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PC방이 자영업종 중 폐업률이 가장 높다는 것은 이미 각종 통계로 증명된 바 있고, 심지어 창업 후 1년도 채 안 돼서 문을 닫는 경우도 있다. 진입장벽이 낮은 편이라 자본금만 믿고 발을 담갔다가 호되게 당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더욱이 올해는 코로나19라는 강력한 복병을 만나 폐업률이 최고조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PC마루 PC방은 일산 신도시 끝자락 구도심과 경계의 애매모호한 상권에서 10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무엇이 다르기에 사방팔방으로 둘러싼 아파트 단지 속에 홀로 고독한 외뫼처럼, 처절한 생존 경쟁에 몸부림치는 다른 매장들을 고봉 위에서 관조한단 말인가.

사방에 아파트 단지, 정화구역에서 살짝 비껴나
PC마루의 면면을 보자면 대한민국의 평범한 PC방과 하등의 차이점이 없다. PC 120대 좌석 규모, 시간당 요금 1,200원(천 원당 이용시간 50분), 프리미엄 좌석과 일반 좌석을 구분한 정도다.

다만 위치선정 정도가 눈에 띈다. 베드 타운(Bed Town) 성격의 일산 신도시 특성상 아파트 단지가 빽빽하고 곳곳에 학교가 있어 PC방이 들어올 수 없는 정화구역이 곳곳에 펼쳐져 있는데, PC마루 PC방은 운 좋게 이런 정화구역에서 살짝 비껴나가 있다.

PC마루 정대준 사장은 “운이 좋았다. 창업에 앞서 자리를 보려고 한창 돌아다니던 때에 우연히 좋은 자리가 나왔다. 치열한 경쟁을 못 견디는 성격인데, 정말로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속되게 표현하자면 자리빨로 10년 동안 한자리에서 꿀이라도 빨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고 하기에는 매장의 상태와 분위기가 상당했다. 요즘 말로 ‘쌔끈’했다. 프리미엄 좌석의 사양은 인텔 i9-9900, 32GB, RTX2080 Ti, 전좌석 SSD 500GB의 스펙을 자랑했고, 아늑하고 따뜻한 조명은 고급스러운 매장 특유의 분위기를 자아냈다. 10년 세월의 풍파를 버틴 매장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고작 1년 전에 거액을 들여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시행한 결과다. 리모델링은 자리빨에 의지하는 매장이 결코 선택하지 않는 대표적 투자 유형이다.

정 사장은 “뭐… 치열한 경쟁이 없는 자리인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피 튀기는 상권들이 올리는 막대한 매출을 기대하기 힘든 것도 사실”이라며 “근접한 PC방이 없을 뿐 인근에 PC방은 많아서 경쟁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젊은 시절 패기가 담긴 이름
극적인 이야기나 기력이 없는, 노쇠한 매장이냐면 그것도 아니다. 오래된 매장을 운영하는 업주만 풀어낼 수 있는 이야기보따리는 언제나 에피소드가 끝없이 쏟아져 나올 정도로 풍성한 법이다.

PC마루 PC방을 오픈할 당시 정대준 사장은 ‘나만의 꿈과 포부를 담은 PC방을 차려야겠다’라는 일념으로 간판에 ‘PC마루’를 새겼다. 마루의 사전적 의미는 지붕이나 산 혹은 물결의 꼭대기다. 한적함에 기대는 매장의 이름표로는 어울리지 않는 패기가 흘러나온다.

정 사장은 “게임사 서버 프로그래머라는 직업은 게임과 사람을 너무 좋아했던 젊은 정대준에게 맞지 않았던 것 같다. PC마루라는 매장 간판을 보면 최고의 PC방을 꿈꿨던 그 시절의 새파란 젊음이 기억난다”고 말했다.

PC방 단골손님에서 PC방 최우수 알바생으로, 다시 매장 하나를 책임지는 점장에서 여러 매장을 운영하는 사장에 이르기까지, 그의 젊은 시절은 PC방으로 가득 차있다. 정 사장은 당대 최고 사양 PC로 전 좌석을 도배하고, 삭막할 정도의 상권분석을 통해 사업을 크게 확장한 경험도 있다.

정 사장은 “분출하는 에너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다. 때도 좋았다. <아이온>이 출시와 동시에 기록적인 흥행세로 손님을 끌어줬고, <리그오브레전드>가 혜성처럼 등장해 게임업계 전체를 휩쓸었다”라며 “크고 작은 온라인게임들도 심심찮게 PC방에 데뷔해 게이머로서 즐거웠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말했다.

폐업하지 않은 이유는 단 하나
정 사장은 일신상의 이유로 그 많던 매장을 모두 다 접었다. 이제 PC마루가 그에게 남겨진 단 하나의 매장이다. 돈주머니 따로 차고 PC방 사업은 취미 차원으로 남겨놓는, 이 업계의 최근 유행에 따라 ‘패션 업주’냐면 그것도 아니다.

직접 매장에 출근해 장사의 하나부터 열까지를 전부 확인하는, 고루하기까지 한 고전적 PC방 업주상에 가깝다. PC마루는 정대준 사장의 생업이고 유일한 소득원이다. 이제는 흔하게 퍼져있는 무인솔루션도 도입하지 않았다.

정 사장은 “원래 계획대로라면 PC마루도 정리 대상이었지만 리모델링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대단한 이유가 있지는 않았다. 지난 10년 동안 PC마루를 애용한 고객들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손님들 상당수가 단골이다. 아저씨들 게임하는 모니터나 구경하던 꼬맹이가 지금은 명문대에 입학했고, 오후 10시에 내쫓았던 고등학생이 이제는 군복무를 마치고 찾아온다. 도저히 폐업이라는 결단을 내릴 수 없었다”라고 덧붙였다.

PC마루는 정 사장의 매장들 중 특별했다. 독서실 분위기가 대세이던 시절의 PC방 이용매너를 고수해 중고등학교 상권에서 성인손님이 많았고, 에티켓이 확실한 성인손님이 많은 탓에 알바생들이 가장 근무를 선호하는 매장이었다.

또한 PC방 근무 경험이 많은 알바생일수록 PC마루 PC방에서는 근태가 좋았다. 손님들의 사소한 피드백을 업주에게 전달하는 기본적인 업무부터 최근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는 요리 실력까지 알바생들은 PC마루 PC방을 애정하는 태도였다.

청결/위생 결벽으로 코로나 이긴다
PC마루 PC방 존속을 결정하고 리모델링을 하자마자 코로나가 터졌다. 방역당국은 PC방에 손소독제를 비치하고, 칸막이를 설치하고, 손님이 사용한 게이밍 기어를 소독하라고 권고했다. PC방은 감염에 취약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정 사장은 “절로 웃음이 나왔다. 방역당국이 제시한 모든 항목들은 코로나가 한반도를 휩쓸기 훨씬 이전부터 PC방 업계에 체화된 내용들이었다”라며 “코로나 대유행이 한창일 때도 우리 알바생들에게 특별히 소독과 관련한 업무를 추가하지 않았다”라고 설명했다.

이미 잘하고 있었는데 뭘 더 하겠는가? PC마루는 칸막이 설치는 말할 필요도 없고, 수년 전부터 소독용 알콜을 말통으로 구매해 청소용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매장의 첫인상을 좌우하는 청결 상태를 영업의 첫발로 보는 업주의 철학이 반영된 것이다.

PC방 환기와 공조시설에 대한 이야기가 방역당국을 통해 흘러나왔을 때는 “코웃음이 나왔다”고 덧붙였다. 1년 전 리모델링 공사를 진행하면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이 매장 공기질이었고, 흡연실의 퀄리티였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바뀐 것이 있다면 소독용 알콜의 품질을 낮춘 정도다. 원래는 고가의 식물성 저자극 알콜을 사용했는데, 코로나 상황이 악화되면서 손님들은 오히려 체감할 수 있는 저가의 알콜을 선호했다.

아울러 평소 골칫거리였던 출입문 옆에 있는 정수기를 비말 확산에 따른 선제적 대응이라는 미명하에 치워버렸다.

코로나19 사태로 확인한 PC방 사랑
엉뚱하게 들리겠지만 코로나19는 정 사장에게 ‘사랑의 메신저’다. PC마루에 대한 애정뿐만 아니라 PC방 업종에 대한 애정을 확인시켜줬다.

폐업과 존속의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을 때는 PC방에 대한 미련이나 애착이 없어졌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매장이 단 1개만 남은 상황에서 코로나 때문에 업종 전체가 휘청거리자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정 사장은 “코로나는 개인이 극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고, PC방 사장님들과 소통을 시작하고, 협단체 활동에 참여하면서 PC 업종에 대한 애정이 다시 살아났다”면서 “동료 사장님들과 PC방을 오래 하고 싶어졌고,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코로나를 극복하는 것이 급선무였다”라고 말했다.

PC방에 대한 불합리한 내용을 알리기 위해 전국 지자체로, 행정수도 세종시로 뛰어다녔고 비를 맞으며 발품을 팔았다. 그가 생각할 수 있는 PC방을 살리는 방법이었고, 또 PC마루를 살리는 방법이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PC방은 고위험시설에서 빠져 일반관리시설로 지정됐고, PC마루도 괴상한 규제가 없는 상태로 영업을 재개할 수 있었다.

그는 “내 매장 PC마루도, 다른 사장님들의 매장도 새로운 활력이 감돌기를 바라는 마음”이라며 “이번 코로나 사태를 일종의 계기로 삼아 많은 사장님들이 매장을 되돌아보고, 업종의 내실을 다지는데 동참하고, PC방에 대한 애착이나 내면의 열정 같은 부분을 다시금 확인하셨으면 좋겠다”라고 인사를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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