月刊 아이러브PC방 6월호(통권 355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염소 시뮬레이터> 이후 많은 게임사들이 알아챈 것은 시뮬레이터 장르에서도 ‘엽기’ 코드가 먹힌다는 사실이다. 그 전에는 사람들이 이런 게임을 하고 싶어 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심지어 <염소 시뮬레이터>의 개발사인 커피스테인스튜디오 조차 ‘Global Game Jam’에서 장난으로 만든 작품이 공식 발매되어 자사의 대표작인 <생텀>보다 많이 팔릴 줄은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넓었고, 현실에는 그런 게임을 만들고 싶은 사람도, 하고 싶은 사람도 넘쳐났다. 바야흐로 대 황당 시뮬레이터 시대가 열린 것이다. 개발됐거나 개발 중인 ‘황당한’ 시뮬레이터 5개를 꼽아봤다.

러시아에서는 시베리아가 기차를 횡단합니다!
인터넷 문화에서 러시아라는 나라는 독보적인 캐릭터다. 곰이 사람을 산책시키고, 자동차로 스케이트를 타며, 소시지로 칼을 써는 일이 ‘러시아입니다’라는 한 마디로 설득력을 가진다.

<시베리아 횡단열차 시뮬레이터>는 이런 러시아의 이미지를 압축한 게임이다.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고독한 기관사가 되어 끝없는 철길 위를 달리는 열차를 관리해야 한다.

평범해 보인다고? 하지만 이 철길은 보통내기가 아니다. 곳곳에 나무가 쓰러져 있어서 주기적으로 톱을 들어야 하고, 나무를 베어내는 동안 찾아오는 늑대와 곰의 습격으로부터 살아남아야 하는 러시아의 철길이다. 집채만한 사슴이 열차와 맞대결을 하려 들고, 때로는 창문이 깨져서 얼어붙은 엔진실을 수리해야 한다.

이 기관사에게 안식을 주는 것은 그저 차갑게 식은 보드카 한 모금 뿐. 하지만 이 개발사, 한 잔의 술에도 함정을 숨겨 놨다. 플레이어는 열차를 관리하는 동시에 생존을 위해 배고픔, 갈증, 알코올, 숙취, 질병, 체온, 피로의 7개 스테이터스를 관리해야 한다. 괜히 스팀(Steam)이 유사 제품으로 <돈 스타브>를 추천하는 것이 아니다.

비둘기와 함께하는 노숙자 생활
당신이 거리에 나앉게 된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노숙자 시뮬레이터>는 당신에게 창작물 속 전형적인 노숙자의 삶을 체험시켜 준다. 플레이어들은 노숙자가 되어 쓰레기통 뒤지기, 고물(혹은 장물) 팔아 돈 벌기, 구걸하기, 시답지 않은 일로 주먹질하기, 술 먹고 취해서 쓰러지기 같은 다양한 콘텐츠를 즐길 수 있다. 골판지와 쓰레기를 활용한 하우징 콘텐츠는 덤이다.

그리고 비둘기! 이 게임 이야기를 하면서 비둘기를 빼놓을 수 없다. 비둘기 폭탄, 비둘기 소용돌이, 비둘기 커스터마이징 등 개발진의 심각한 비둘기 사랑을 느껴볼 수 있는 콘텐츠도 다수 준비되어 있다.

그러나 개발사는 여기에서 만족하지 않고 노숙자의 ‘비밀스러운 삶’을 조심스레 꺼내놓았다. 개발사가 밝힌 이 게임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다음과 같다. 내면의 노숙자 파워 발견하기, 도시의 비둘기들을 지배하기, 쥐-인간들의 미스테리를 파헤치기, 알콜 연금술의 비밀 배우기 등이다.

게임 트레일러를 보다보면 이 게임의 주인공이 노숙자인지, 아니면 판타지 게임의 주인공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상해 할 필요는 없다. 오블리비언의 위기를 해결한 크바치의 영웅도 시작은 평범한 죄수에 불과하지 않았는가.

손도 쓸 도리 없는 손 게임
<핸드 시뮬레이터>에서 플레이어는 손으로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일들, 예컨대 피젯 스피너 돌리기, 총 쏘기, 크리스마스 트리 꾸미기, 당구치기, 카트 운전 등을 할 수 있다. 이런 건 굳이 게임이 아니어도 해볼 수 있다고? 콘텐츠 자체는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이 게임의 진가는 끔찍한 조작감과 다채로운 버그에 있다.

과거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QWOP>라는 게임이 있다. Q,W,O,P 네 개의 키로 달리기 선수를 조종하는 단순한 게임이다. 괴상하기 짝이 없는 조작감은 때로 가장 기본적인 것도 가장 이상한 게임을 만들 수 있다. <핸드 시뮬레이터>가 그 훌륭한 예시가 될 것이다.

<핸드 시뮬레이터>의 진정한 재미는 멀티플레이에서 나온다. 컨트롤이 너무 난해해서 물건 하나 집어 들기도 힘들다고? 걱정 마시라. 다른 사람들도 그렇다! 권총에 총알을 넣기 위해 사지를 비틀고, 자동차 등 각진 물건도 잘 굴러간다는 사실을 증명하며, 당구 큐대로 공을 치기보단 사람을 쳐서 이기는 광경을 볼 수 있다. 가격마저 저렴한 이 게임은 업데이트도 꾸준해 주기적으로 웃음 폭탄을 맛볼 수 있다.

이 분야의 원조, 바로 그 게임
시뮬레이터의 의의는 ‘할 수 없는 것’을 해보는 데에 있다. ‘할 수 없는 것’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하나는 정말로 할 수 없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할 수는 있지만 사회 통념이나 법, 안전 등의 문제로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서전 시뮬레이터>는 둘 다에 해당한다. 의사가 될 수 있는 사람은 적고, 그 어떤 의사도 이런 식으로 수술을 하지는 않을 테니까.

이 게임은 정상적인 수술 시뮬레이터 게임인 <서저리 시뮬레이터 2011>의 패러디로 제작되었다. 그리고 패러디가 으레 그렇듯이 원작을 비틀어 놓았다. 수술을 비틀면 뭐가 나오겠는가? 그렇다. 끔찍한 슬래터 무비의 한 장면이다.

일단 <서전 시뮬레이터>는 컨트롤부터 난해하다. 위에서 설명한 <핸드 시뮬레이터>의 모티브가 된 게임이라고 해도 믿길 정도로 조작감이 난해할뿐더러, 물건을 집는 것도 쉽지 않다. 수술을 위해 준비된 도구들도 수상쩍다. 안구 수술을 위해 망치를 들고, 뇌수술을 위해 도끼를 드는 수술이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인가.

게임의 목적은 단순하다. 수술의 목표가 되는 장기를 제거하고 그 자리에 새 장기를 던져 넣으면 된다. 그 과정에서 다른 신체부위는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다. 뭔가를 분해하고 재조립했는데 부품 한두 개가 남았던 경험이 있는가? 이 게임에선 ‘한두 개’가 아니게 될 것이다.

여행가는 분위기‘만’ 내보세요
비행기를 타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코노미 좌석의 불편함을 알고 있을 것이다. 답답하고, 지루하고, 민폐 승객과 함께 타면 탑승시간 내내 끔찍한 시간을 보내게 된다. 심지어 승객이 한두 명도 아니라 그중 한명이 민폐 승객일 가능성마저 매우 높다. 여행길이라면 그래도 도착 뒤의 즐거움을 기대할 수 있겠지만 일 때문에 가는 거라면? 그저 불쾌하기만 한 경험이 될 것이다.

<비행 모드>는 승객이 되어 6시간동안 가만히 앉아서 비행기를 타고 가는 것이 목적이다. 그 뿐이다. 플레이어는 창밖을 내다볼 수 있고, 기내 시스템으로 옛날 영화나 만화도 볼 수 있으며, 책도 읽을 수 있고, 잡지에 있는 십자말풀이도 해볼 수 있다. 심지어 때가 되면 기내식도 제공된다. 물론 ‘비행 모드’로 설정된 휴대전화도 가지고 놀 수 있고.

비행 환경도 나름 구현되어 있다. 가끔 비행기가 난기류를 만나 흔들리기도 하고, 아이가 울거나 소란스러운 승객도 있고, 승무원과 승객 사이에 실랑이가 오가기도 하는 등 제법 현실적이다.

하지만 그뿐이다. 지루함도 현실적이라 플레이어는 비좁은 의자에 앉아 6시간을 꼬박 앉아서 날아가야 한다. 그래도 즐길 거리가 있다는 점에서는 8시간을 사막에서 버스를 운전하는 게임보다야 나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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