月刊 아이러브PC방 10월호(통권 347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2019년 10월은 대한민국 정치사에 특별한 시점이자 자영업자들에게도 기억에 남을 시간이 될 전망이다.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의 소상공인 정당이 첫발을 내딛기 때문이다.

지난 9월 5일 국회의사당 앞에는 유난히 굳은 표정의 한 사내가 서있었다. 그는 “소상공인은 더 이상 정치권에 기대하지 않고 건전한 정치 참여로 직접 정치 실현을 위해 나아갈 것입니다”라고 선언했다.

바로 소상공인연합회 최승재 회장이다. 자영업자들의 생존권이 경각에 달린 상황이라 정치권의 관심과 정책이 절실하다고 호소했던 그가 신당 창당이라는 결단을 내렸다. 선거철이 다가오면 소상공인들을 상대로 공수표를 남발했다가 번번이 배신(?)하는 기존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낳은 결과다.

대한민국 경제에서 소상공인들은 중요한 축인 동시에 가장 취약한 계층으로, 섬세한 정책 수립이 요구되지만 정책 결정 과정에서 이들의 목소리는 매번 배제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최저임금이 결정되는 과정에서 자영업자들은 벙어리나 다름없었다.

PC방 업계에서도 두 차례에 걸쳐 인상된 최저임금을 두고, 가파른 상승폭은 차치하고서라도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과정에 소상공인들의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는 장치가 없다는 사실을 통감했다는 업주들이 많았다.

최 회장은 소상공인연합회 초대회장으로 취임한 이후 줄곧 사회적 약자 중에서도 약자인 소상공인들이 있는 현장이라면 반드시 함께하며 진정성을 증명했다. 이번 창당 결정을 두고 노동자측과 사용자측 모두 달갑지 않다는 반응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지만 소상공인들이 열성적으로 지지하는 이유다.

PC방 업주들 사이에서도 최 회장의 행보는 관심의 대상이다. PC방 업력이 짧은 업주라면 잘 모를 수도 있지만 최 회장은 대한민국 PC방 업주 1세대로, PC방 업계에서도 굵직한 족적들을 남겼기 때문이다.

그는 IMF 여파로 휘청거리던 직장을 나와 당시 유망 업종이었던 PC방을 창업해 인생 2막을 시작했다. PC방 집객력을 갖춘 게임들이 잇달아 나왔고, 시기적으로도 PC방 업종이 날아오르던 시기라 매장은 어느새 3개로 늘어났다.

PC방 업주로 성공가도를 달리던 그는 사업적인 성공 외에도 다른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바로 PC방 업주의 권익이었다. 게임사의 입맛에 맞춰진 약관이 게임사와 PC방 업주가 맺는 관계를 규정했다. 당시 정치권에서는 게임에 관심이 없었고, 게임법도 이런 불합리함을 다루고 있지 않았다.

그는 사단법인 한국인터넷PC문화협회에 가입해 활동하며 PC방 업주들의 권익 보호에 앞장섰다. 이후에도 한국인터넷콘텐츠서비스협동조합을 직접 설립해 활발하게 활동했다. PC방을 상대로 돈을 버는 기업 중에 사옥 앞에서 시위하는 얼굴 새까만 아저씨를 만나보지 못했다면 성공하지 못한 회사라는 말이 있었을 정도다.

최승재 회장이 동분서주하던 이때는 역설적이게도 한국인터넷PC문화협회가 PC방 업주들에게 가장 외면 받던 시기다. 인문협 임원들이 게임사들로부터 부적절한 정량시간을 받는다던가, 협회자금을 사적으로 유용한다던가 하는 일이 외부로 드러나 PC방 업주들에게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

이 시기에 최 회장은 인문협의 도덕적 해이를 비판하며 개혁을 주장했지만 주도권을 잡는데는 실패했고, 결국 인문협에서 축출되는 상황까지 맞이했다. PC방 협회에서는 쫓겨났지만 PC방 업계에 대한 애정은 식지 않았다.

PC방 단체의 또 다른 한 축인 한국인터넷콘텐츠서비스협동조합의 시작이었다. 지난 2007년 설립된 콘텐츠조합은 최승재 이사장을 필두로 PC방 업주들의 실익에 집중했고, 눈에 띠는 다양한 행보로 PC방 업주들의 큰 호응을 이끌어냈다.

PC방 업주들은 게임사와 갈등이 발생하면 개별적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었고, 사회적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하지만 콘텐츠조합은 PC방 업주들을 결집시키는 한편, 경제주체로써 PC방 업주들의 입장을 대변했다.

이후 PC방 업주이자 조합 이사장으로 활동을 이어오다 경영 악화와 주변의 견제로 매장 문을 열고 닫기를 수차례 반복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지난 2014년 ‘소상공인보호및지원에관한법률’에 의거한 법정단체로 소상공인연합회를 구성하는 창립준비위원회의를 주도하면서 본격적으로 연합회 활동을 시작했다.

소상공인연합회에서의 최승재 회장 역할은 과거 콘텐츠조합 이사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PC방 업주가 장사하면서 현실적인 불편함을 겪는 것은 다른 소상공인들도 매한가지. 또한 납세의 의무를 성실히 이행해도 의견 반영이 제대로 안 되는 억울함도 다르지 않았다.

대표 법정단체가 없어 제도적 도움이 열악한 것마저 닮은꼴이었다. 그래서 PC방 업계에서 했던 것처럼 소상공인을 독립된 경제주체로 인정받는데 힘을 쏟았고, 연합회 소속 단체가 4배 증가하는 등 가시적인 성과들도 이뤄냈다.

생계형 적합업종 법제화와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개정안 통과를 이끌었으며,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최저임금위원회에 소상공인연합회의 위원 추천권을 확보하기도 했다. KT 아현지사 화재사고, 을지로·청계천 재개발 갈등, 속초 화재 때는 현장에 직접 찾아가 피해 소상공인들의 입이 되었다.

최근 그의 주된 관심사는 최저임금이다. 소상공인들이 한 목소리로 지적하는 애로사항이 바로 최저임금이라는 판단에서다. 지난해 8월에는 광화문에서 소상공인총궐기대회를 열었고, 여기에는 60여 업종 단체, 150여 단체 회원, 3만여 지지자가 참여해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는데 성공했다. 또한 작년 12월에는 주휴수당을 최저임금 산정에 포함시키는 최저임금법 시행령 개정안에 대해 헌법소원을 청구하기도 했다.

최 회장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한걸음을 더 내딛었다. 소상공인을 위한 신당 창당이다. 소상공인연합회는 주무부처인 중소벤처기업부에 정치참여 금지 조항을 삭제한 정관의 수정안에 대해 승인을 요청한 상태다.

그는 취임 초기에는 정치권에서 소상공인의 생존권을 보호해주길 희망했으나, 그때마다 정쟁에 매몰돼 식물국회 상태에 빠지기 일쑤였다. 결국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파는 것이 맞다는 결론을 내리고 행동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기서부터는 힘든 싸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최 회장이 경험했던 전장과 전혀 다른 환경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주무부처인 중기부는 연합회를 지원해도 모자랄 판에 법정단체 지위 박탈이나, 해산·해체도 논의하겠다며 으름장을 놓고 있다.

또한 취임 초기부터 지금까지 정치색이 너무 강하다는 비판이 계속되고 있는데, 재미있는 사실은 연합회 안팎에서 얘기하는 최 회장의 정치적 성향이 제각각이라는 점이다. 어디에서는 반정부 보수인사라고 하고, 또 어디에서는 문재인 정부에 대한 노골적인 편애를 지적한다.

최 회장은 지난해 검찰 고발에 시달렸다. 소상공인연합회 내부 반대 세력들이 그를 검찰에 고발한 것이다. 강도 높은 조사에도 문제 될 것이 없었고, 검찰로부터 최종 무혐의 판결을 받았지만 1년 동안 진행된 강도 높은 수사는 소상공인연합회를 위축시킨 것이 사실이다.

최근 연합회는 중기부의 결정에 상관없이 소상공인의 정치세력화를 추진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대한민국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소상공인도 국민이라면 현재 소상공인들이 처한 절박한 상황을 중기부의 결정에 맡길 수 없다는 생각에서다.

최승재 회장은 “가보지 못한 길이라는 점에서 두렵다. 하지만 700만 소상공인을 대표해 한 걸음 한 걸음 나갈 것”이라고 굳은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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