月刊 아이러브PC방 5월호(통권 342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스마일게이트의 대작 MMORPG <로스트아크>는 지난겨울 게임시장의 주인공이었다. 쏟아지는 관심을 방증하듯 겨울 성수기 PC 가동률을 힘껏 이끌었고, 이때의 이미지는 PC방 업주들의 뇌리에 아직도 강하게 남아있다.

이처럼 <로스트아크>는 ‘PC방의 RPG 대장’이라고 부르기에 손색이 없는 작품이지만 최근 성적표만 놓고 보면 대장님 체면이 말이 아니다. PC방 종합 순위는 지난해 11월까지만 해도 3위까지 올라갔지만 12월 들어 두 계단 내려앉았고, 올해 2월부터는 또 다시 두 계단 주저앉은 상태다.

최근 <로스트아크>가 겪고 있는 슬럼프를 자세히 들여다보자.

RPG 대장님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로스트아크>의 성적 하락을 두고 PC방 업주들은 아쉽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지난해 11월의 기세를 기억하는 PC방 업주일수록 잘 만든 게임의 추락에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하는 분위기다.

어떤 업주들은 PC방 점유율이 가장 높은 RPG를 살려내라며 스마일게이트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하고, 또 어떤 업주들은 <로스트아크>의 성적 하락은 오픈 초기의 거품이 빠지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옹호하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게임이 겪을 수밖에 없는 단기적 내림세라고 하기에는 <로스트아크>의 낙폭이 심상치 않다. 데뷔 초기에는 일간 점유율 15%에 육박하던 것이 지난달부터는 3% 미만으로 곤두박질쳤고, 일간 사용량 100만 시간을 목전에 두던 것이 이제는 20만 시간 아래로 떨어졌다.

반년 만에 PC방 성적이 1/5 수준으로 쪼그라드는 이 속도감은 과거 그 어떤 게임에서도 찾기 힘들 정도로 이례적이다. PC방 업주들이 하락세를 지적하는 대표적인 게임 <배틀그라운드>만 하더라도 지난해 2월 기록한 최고성적과 최근 성적을 비교하면 절반 수준이다.

정식 서비스 시작 후 6개월 만에 PC방 성적이 1/5 수준으로 급감한 사례는 최근 10년간 출시된 대작 MMORPG 중에서 <아키에이지>와 <이카루스>를 제외하면 <로스트아크>가 유일하다.

 

게이머는 희망이 없을 때 접는다
현재 <로스트아크>는 대다수의 게이머가 최고레벨에 도달한 상태이다. 이런 MMORPG에서 이탈자가 속출하고 있는 것은 엔드 콘텐츠가 매력적이지 못해서 게이머들이 더 이상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로스트아크>는 최고레벨 게이머가 즐길 수 있는 엔드 콘텐츠가 여럿 있다. 일일 퀘스트인 ‘에포나 의뢰’, 465레벨 아이템을 획득할 수 있는 ‘카오스 던전’, 도전형 던전인 ‘실리안의 지령’ 등 게임에서 할 일이 많다. 그러나 게이머의 흥미를 자극하거나 충실감을 채워주는 콘텐츠는 전혀 없다.

‘에포나 의뢰’는 푼돈에 불과한 게임머니를 받는 게 고작이고, ‘카오스 던전’에서는 게이머가 원하고 필요로 하는 장비가 드롭되지 않는다. ‘실리안의 지령’ 역시 큐브 수급이나 생활장비 연마 같은 사이드 콘텐츠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메인 파밍 시스템이라 할 레이드는 어떨까? 레이드는 티어가 상승하면 난이도가 상승하지만 보상 아이템 레벨이 상승하지는 않는 등 레벨 디자인이 엉망이다. 일례로 레이드 3단계의 시작인 ‘레바노스’는 1티어 최강 장비를 착용해도 공략이 불가능한 수준이다. 당연히 게이머들의 도전 욕구를 자극하지도 못하고 있다.

더욱이 이런 푸념은 운 좋은 일부 게이머에게만 해당된다. 가디언 레이드는 특정 클래스 외에는 냄새도 못 맡는 경우가 태반이다. 캐릭터 생성 시 멋있어 보여서 ‘아르카나’ 같은 클래스를 선택했다면 핵심 콘텐츠에서 배제되는 것이 현재의 <로스트아크>다. 또한 레이드의 성패는 컨트롤 실력보다는 배틀아이템을 얼마나 쏟아 부었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괴상한 구조다.

상황이 이러하다면 스마일게이트가 밸런스 패치를 통해 클래스의 성능을 조정할 필요가 있고, 또 밸런스 패치는 실제로 적용되어 왔다. 그러나 수차례 진행된 밸런스 패치는 멀쩡한 클래스를 너프하거나 부실했던 클래스에 별 도움이 안 되는 내용을 채워 실효를 거두기는커녕 상황을 악화시키는 일이 잦았다.

비전투 생활 콘텐츠도 못 살렸다
<로스트아크>의 전투 관련 콘텐츠에 대한 기대를 아예 포기하고 거대 MMORPG의 생활형 콘텐츠만 건져서 즐기겠다고 마음먹었다면 이마저도 오산이다. 섬과 대항해로 대표되는 해양 콘텐츠는 확률 보상이라는 복불복 시스템이고 계속되는 보상 너프 패치로 인해 시간투자 대비 효율성이 없는 콘텐츠로 전락했다.

정식 서비스를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로스트아크>의 생활 콘텐츠는 전투 콘텐츠만큼의 깊이와 넓이를 갖춘 것처럼 비춰졌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전투를 위해 게임머니를 수급하는 보조수단에 불과할 뿐 자체적인 재미요소는 아니었다.

이와 별개로 생활스킬은 또 다른 문제가 있다. 보상물에 따른 제작 가능한 아이템의 성능과 옵션이 고르지 못해 스킬간 균형이 무너진 상태다. 쓸모가 있는 소비아이템과 배틀아이템을 제작하는 스킬(수류탄을 만드는 채광과 신호탄을 양산하는 수렵)에만 치중된 실정이다. 클래스간 밸런스, 전투스킬 밸런스에 문제와 마찬가지로 생활스킬도 밸런스가 붕괴된 것.

덕분에 채집, 벌목, 낚시, 고고학은 게이머들에게 반쯤은 ‘없는 스킬’ 취급을 받고 있지만 스마일게이트는 이를 개선하려는 움직임이 전혀 없다. 아울러 전투스킬과 다르게 생활스킬은 초기화하려면 캐쉬를 요구하고 있어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나온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로스트아크>처럼 AAA급 MMORPG로 주목을 받았던 MMORPG 중에는 <아키에이지>와 <이카루스>가 있다. 두 게임은 OBT 직후 각각 PC방 순위 4위, 5위로 데뷔했지만 정확히 6개월 뒤에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는 공통점이 있으며, 데뷔 직후 RPG 장르 내에서 1위를 찍었고, 원활하지 못한 서버 상태로 몸살을 앓았다는 점 역시 동일하다.

<로스트아크>가 이 두 게임과 비교해 다른 점이 있다면 정식 서비스 5개월 만에 복귀 게이머를 타겟으로 하는 이벤트를 진행한다는 점이다. 복귀 이벤트라 함은 서비스를 오래 이어온 게임에서 진행하는 이벤트로, 오래간만에 게임에 접속하는 게이머가 최신 콘텐츠에 빠르게 진입할 수 있도록 다양한 형태로 지원하는 내용이다.

<로스트아크>를 개발하고 서비스하는 스마일게이트 역시 게이머들의 이탈을 감지하고 있다는 뜻이며 이를 해결하거나 둔화시키려는 요량으로 나온 것이 ‘모험가의 귀환’ 이벤트라고 결론 내릴 수 있다.

또한 ‘모험가의 귀환’은 간만에 접속하는 게이머를 지원한다는 측면 외에도 실하게 지원할테니까 다시 돌아오라고 유혹하는 측면도 동시에 있다. 이런 이벤트는 이탈 게이머가 많을 수밖에 없는 장수 게임에서나 진행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지난 연말을 풍미했던 아직은 신작 <로스트아크>가 복귀 이벤트를 진행한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로스트아크>의 제자리는 어디?
MMORPG의 PC방 성적을 논할 때 ‘오픈빨’을 걷어내려면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출시 이후 1년은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올해 11월 PC방 점유율 순위 어디쯤에서 <로스트아크> 이름을 찾을 수 있을까?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게임트릭스 기준으로 지난 4월 RPG 순위를 나열하면, <로스트아크>를 제외하고 <리니지>, <던전앤파이터>, <메이플스토리>, <월드오브워크래프트>, <블레이드앤소울>, <리니지2>, <디아블로3>, <아이온>, <검은사막> 순이다. 다들 뚜렷한 개성과 강점을 무기로 수년에 걸쳐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는 작품들이다.

또한 내달에는 핵앤슬래쉬 RPG의 끝판왕이라고 평가되는 <패스오브엑자일>이 국내 서비스를 시작한다. 핵앤슬래쉬 전투를 전면에 내세웠던 <로스트아크> 입장에서는 껄끄러운 상대가 데뷔하는 셈이다. <로스트아크>가 1년 후에도 저 게임들과 경쟁에서 살아남아 PC방 상위권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저작권자 © 아이러브PC방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