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방에서 야간근무를 마치고, 양재천을 따라 걸었다. 손이 시려 바지 주머니에 쿡 쑤셔 넣고 웅크린 어깨로 인해 숄더백은 계속 흘러내려오지만 손을 빼기 귀찮아 허리의 반동을 이용해 어깨를 들썩들썩 거리며 집에 도착했다.

요즘은 새벽근무를 자처해서 하고 있다. 야간에 매출이 뚝 떨어져서 청소와 PC세팅 등을 할 요량으로 몇 달 전부터 생활패턴을 바꾸고 있다. 새벽근무라고해서 새벽에 나가는 건 아니다. 손님이 많은 저녁시간대나 PC점검 등의 이유로 몇 시간 전에 출근을 한다. 따지고 보면 모든 PC방 업주들은 일일 근무시간이 14시간은 훌쩍 넘으리라.

얼마 전 일이다. 출근해서 PC세팅에 열중하고 있을 즈음, 아버지께 전화를 한통 받았다. 할아버지가 많이 편찮으셔서 우리집에 모시겠다는 내용이었다. 방이 두개뿐인 집에 할아버지가 오신다면 난 거실에서 자야하겠지만 언제 돌아가실지 모른다는 생각에 마지막 할아버지 가시는 길을 집에서 모시겠다는 아버지의 의도는 전혀 모르는바 아니어서 동의하고 말 것도 없었다.

주머니에 넣은 손을 빼기조차 싫은 상황에서 현관문을 열기는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현관을 지나자 거실에서 부모님이 TV를 보고 게셨다. 평소였다면 TV 소리가 밖에서도 들릴 정도였지만 TV소리가 작은 걸로 봐서 할아버지가 주무시고계신가 하는 생각을 했다. 어머니는 방금 전에 할아버지가 기침하셨다고 하시며 들어가서 인사를 하라고 하셨다.

내방 문을 여니 어제와는 다른 낮선 느낌이 온몸을 휘감았다. 뭐지 이 느낌은? 할아버지는 편히 누워계셨다. 주무시고 있는 듯한 모습에 깨우기는 싫었지만 밤새근무를 하고 온 터라 피곤도 하고 만사가 귀찮았다. “할아버지!” ‘아무 반응이 없으시네.’ “할아버지!” 큰소리로 할아버지를 깨웠다. 아버지께서 주무시는데 놀라게 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난 오히려 더 크게 깨웠다. “할아버지!” 이번엔 흔들어 깨웠다. 눈인사만 해주시면 안방에 가서 편히 자고 저녁에 다시 볼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반응이 없으셨다. 그저 너무 편하게 누워계셨다.

할 수 없이 난 안방으로 들어가 이불을 펴고 옷도 갈아입지 못한 채 쓰러졌다. 바로 그때, 어머니의 놀랜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아버님~, 아버님~!’ 정신이 번쩍 들었다. 순간 모든 게 멈추고 오직 어머니의 목소리만 귓가에 들렸다. 슬로우 비디오를 찍듯이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주무시던 방으로 달려갔다. 우려했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이다.

아버지는 농원을 하고 계신다. 환갑이 훌쩍 넘어 이마에 주름이며, 흰 머리하며 무림에서 말하는 내공이 일 갑자에 해당할 만큼 인생의 경험을 했지만, 살면서 평생 한번뿐인 부모의 죽음은 쉽게 받아 드리지 못하셨다.

‘마냥 울고만 있을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난 그렇게 생각했다. 더 냉정해지고, 더 침착해졌다. 부모님과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장례에 필요한 절차며, 모든 것을 내가 맡았다. 병원 영안실에 전화해서 자리를 마련하고, 장례진행, 조문객 접대, 사망진단서 등...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슬픔도 크지만, PC방이 걱정이었다. 다행인건 동업자인 친구가 내 몫까지 다하고 있지만, 그 친구도 사람인지라 잠을 자지 않고 20시간 이상 일할수도 없는 노릇이고, 알바들은 이런저런 이유들로 시간을 맞출 수가 없었다. 아버지가 운영하시는 농장도 문을 열어야 하고, 새벽에 물을 줘야하고 이것저것 할 일이 너무 많았다. 부자가 모두 자영업을 하고 있는 입장에서 난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른 자영업자들은 이런 일들이 일어나면 어떻게 대처할까?’ 장례식장을 나와 담배를 한대 물며 생각했다. 지금 나는 할아버지 죽음의 슬픔보다 자영업자의 서러움이 더 슬펐다. 쉰다고 누가 돈을 주는 것도 아니고, PC방 특성상 24시간 영업을 해야 하는데 문을 닫을 수도 없었다. 부모님은 계속 장례식장에 계신다고 하더라도 난 그럴 수 없지 않은가?

이런 저런 고민으로 첫 번째 새벽을 맞이했다. 다행인건 아직까지 잠이 쏟아지진 않았다. 장례식장을 나와 우선 PC방으로 향했다. 스케줄을 조정해야하기 때문에 낮에 평소 알고 지내는 형한테 전화해서 새벽타임을 부탁했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했다. 아버지 농장에 가서도 이것저것 챙겨야 했다. 뼛속까지 들어오는 한기를 느꼈지만 추위 따윈 큰 문제가 아니었다. 그렇게 3일장을 보냈다.

얼마 전부터 자영업에 대한, 아니 PC방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PC방을 운영하기가 정말 힘들다고 느꼈다. 그리고 이번 일을 계기로 또 한번 PC방은 내 기억 속에서 점점 점수를 잃고 있다.

장례식은 3일장으로 끝을 냈지만 삼오제에, 장례식장에 오셨던 분들에게 감사의 편지며, 문자 보내는 등 그렇게 6일 동안 PC방을 등져야 했다. 물론 6일의 시간을 결코 낭비한건 아니다. 그러나 마지막 주가 다가오면서 결재해야 할 것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기다리고 있고, ‘이번 달은 또 이렇게 적자를 보려나...’하고 생각하니 막연히 밀려오는 답답함과 부족한 내 능력을 탓하며 ‘지금은 내가 그럭저럭 잘 넘겼지만 다음엔 부모님인데 그땐 또 어떡하지? 너무 앞서가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도 했지만 내 머릿속에 묵직한 고민이 자리했고, 한숨이 길게 나왔다.

하지만, 일주일 동안 내내 우셨던 아버지의 눈물이 더 머릿속에 남는다. ‘지금 아버지는 어떤 마음일까?’ ‘더 잘해주지 못한 아쉬움이 남지는 않을까?’ ‘지금껏 그렇게 슬프게 흐느끼며 우신 적이 없으셨던 분인데...’ 부모님께 효자는 아니지만 ‘살아 계시는 동안 자영업을 하고 있다면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없지 않을까?’하는 불안한 심정으로 아버지의 눈물의 의미를 가슴에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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