月刊 아이러브PC방 11월호(통권 336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지난달 강서구의 한 PC방에서 벌어진 끔찍한 살인사건으로 대한민국이 발칵 뒤집어졌다. 이번 사건은 잔혹한 범행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 심신미약을 이유로 한 감형, 경찰의 초동대처, 동생의 공범 의혹, 정신이상자 관리 시스템 등 많은 것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무고한 21세 청년의 죽음 앞에서 남은 자들이 할 수 있는 행동은 이런 비극적인 사건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재발 방지에 힘쓰는 일 것이다. 유족들의 눈가에 눈물이 마르기도 전에 모 연예인은 이번 사건을 방송 프로그램 홍보에 쓰고, 어떤 영화사는 신작을 알리는 수단으로 사용하려다 지탄을 받았다.

심신미약으로 인한 감형에 반대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사상 최대의 인원이 몰린 이유도 마찬가지다. 재발 방지를 위해 범죄자에게 엄중한 법의 심판을 내려도 모자랄 판에 사법체계가 나서서 범죄자를 보살펴줄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그런데 공감능력이 부족한 탓에 눈치 없이 행동하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노골적으로 사악한 의도를 드러내는 경우도 있다. 문제의 원인을 규명하기보다는 엉뚱하게 남의 탓으로 돌리는 꼬락서니에 자기 이득까지 챙기려는 탐욕스런 움직임이 딱 걸렸다.

강서구 PC방 살인사건의 원인이 게임중독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등장한 것이다. 지난달 말 진행된 여성가족부 국정감사에서 자유한국당 윤종필 의원은 “강서구 PC방 살인사건의 가해자는 PC방에서 5시간 이상 게임에 몰입했고, 경찰도 가해자의 게임중독 성향, 태도 등을 조사하겠다고 발표했다”고 말했다.

게임중독과 관련된 결과는커녕 사건에 대한 조사도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전지적인 ‘답정너’ 태도는 빈축을 사고 있다. 그러나 이런 움직임은 늘 그랬듯 이번에도 성공적인 결과로 이어진 모양새다. 여성가족부는 청소년들의 건강을 볼모로 게임중독을 이슈화했고, 전문인력 양성을 이유로 한 재정 확충도 달성했다.

이를 두고 국내에서 널리 통용되는 게임중독이라는 단어는 실체가 불분명한 개념이고, 정치권에서 자주 거론하는 국제보건기구(WHO)의 ‘게임장애’ 역시 게임중독과는 상당히 다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사실관계 확인에 신경쓰지 않는 모습이야 늘 그랬으니 차치한다 치더라도 꽃다운 청년의 죽음까지 돈벌이에 이용했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PC방 알바생이 참혹한 죽음을 맞아 가뜩이나 심란한 PC방 업계는 또 열불이 나게 생겼다. 그동안 PC방은 게임제공업이라는 이유만으로 게임중독 이슈가 대두될 때마다 도마 위에서 마약상도 됐다가, 청소년이 가까이 하면 안 될 장소로 팔려 다녔다.

게임중독이 이번에는 살인의 원인으로 거론됐으니 이런 논리에 따르자면 PC방은 게임을 제공함으로써 살인을 교사한 셈이다. 힘들어서 PC방 문을 닫으려는 업주가 있다면 당부 드리고 싶다. 어디 가서 폐업 이유를 밝힐 일이 있다면 ‘장사가 힘들어서’가 아니라 ‘인간적 양심 때문’이라 말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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