月刊 아이러브PC방 10월호(통권 335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대학교와 아파트 단지에는 PC방의 주요 콘텐츠인 온라인게임을 가장 열성적으로 소비하는 연령층인 10대와 20대가 대거 몰려있다. 때문에 PC방 최적의 입지 조건으로 대학교와 대단위 아파트단지가 꼽히곤 한다.

위의 이야기를 뒤집어보면 PC방 최악의 입지조건을 도출할 수 있다. PC방이 입점하지 말아야 할 곳은 30~40대 들이 밀집해있는 사무단지나 오피스텔이다. 시간적 여유를 이유로 온라인게임에서 멀어져버린 직장인들을 손님으로 모셔오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 그 최악의 PC방이 있다. 바로 서울 강서구 염창동에 위치한 우림블루나인비즈니스센터 지하 1층에 자리를 잡은 ‘P양과 C군 PC방’ 이다.

약점을 강점으로 바꾸다
‘P양과 C군 PC방’이 입점한 우림블루나인비즈니스센터는 연면적 13만 2,000㎡ 규모에 지하 3층~지상 25층짜리 2개동, 560실 규모의 아파트형공장으로, 지난 2008년 완공돼 강서구를 대표하는 랜드마크로 자리잡았다.

‘P양과 C군 PC방’은 2008년부터 2018년까지 10년의 업력을 자랑한다. 신규 PC방이 3년을 버티지 못하고 추풍낙엽처럼 나가떨어지는 시류를 감안하면 3배 이상의 생명력을 갖추고 있는 셈인데, 역설적이게도 최악처럼 보이는 입지가 사실은 탄탄한 토대 역할을 했다.

일반적으로 PC방 업계에서 20대 중반 이상 연령대의 고객은 희귀 생물이다. PC방을 즐겨 이용하지 않기에 외인 취급을 하기 쉽고 관리대상에서도 제외되기 일쑤다. 하지만 ‘P양과 C군 PC방’에서는 이야기가 다르다.

매출을 지탱하는 주 고객층이 성인인 것도 모자라 노골적으로 30~40대 직장인을 타겟팅했다. 매장 내 모든 것들이 이들에게 맞춰져 있다. 그리고 이러한 특징은 여타 PC방들과 다른 개성과 면면을 줄줄이 만들어낸다.

10년 전 ‘P양과 C군 PC방’이 처음 오픈했던 때의 모습이 이랬던 것은 아니다. 아파트단지를 끼고 3면에 초등학교 두 개와 고등학교 한 개를 접하고 있는 ‘P양과 C군 PC방’은 본래 학생 손님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매장이었다.

그러나 경쟁 매장이 하나둘씩 늘어나면서 기존 고객들의 이탈이 심해졌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절박함에서 ‘P양과 C군 PC방’은 활로를 모색하면서 고유한 경쟁력을 갖추려고 노력했다. 이 결과 약점처럼 보이던 사무실단지 입지가 매장을 살리는 강점으로 거듭난 것이다.

이런 매장은 무엇이 다를까?
‘P양과 C군 PC방’에 들어서면 조명부터가 다르다. 요즘 PC방 트렌드가 10대와 20대에 집중한 밝고 세련된 인테리어인 것과 다르게 고즈넉하다. 매장에 들어섰을 때의 조용함도 인상적인데 이는 성인 고객이 많다는 특성에서 비롯되기도 했지만 동시에 알바생들에게 강조하는 항목이기도 하다.

이는 전적으로 주요 고객층인 30~40대 직장인들의 요구사항을 반영한 것이다. 매장의 분위기가 이렇게 자리잡게 되니까 아늑하고 조용한 게이밍 공간을 원하는 10~20대 게이머들까지 새로운 고객으로 유입되었다고 한다.

매장 내 인기 게임의 순위와 점유율에도 특색이 있다. 여타 매장들과 비슷하게 상위권에는 <배틀그라운드>, <리그오브레전드>, <피파온라인4> 등이 있지만 동시에 <스타크래프트>를 비롯해 정식서비스 시작일이 10년도 더 된 장수 온라인게임들이 진을 치고 있다.

2년 넘게 ‘P양과 C군 PC방’을 가꿔온 신재우 매니저는 “다른 매장에서 PC방 아르바이트 업무를 해본 경험이 있지만 손님들 모니터에서 보이는 게임은 사실 몇 가지 없었다. 여기 근무하게 된 이후 30~40대 아저씨들이 하는 게임들이 이렇게 다양한지 상상도 못했다”라고 말했다.

또한 매출 골든타임도 약간의 차이가 있다. 평균적으로 PC방 가동률은 중고등학교 하교시간대에 증가하기 시작해 오후 9시에 정점을 찍고 10시부터 급락하는데 반해 ‘P양과 C군 PC방’은 조금 늦은 퇴근시간대에 증가하기 시작해 오후 11시에 정점을 찍고 서서히 내려간다고 한다.

손님이 꼭 게이머일 필요는 없다
심지어 TV 및 영화가 온라인게임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주요 콘텐츠다. 일명 정주행 달리기로 불리는 TV 프로그램 몰아보기 때문이다. ‘P양과 C군 PC방’의 이런 상황은 매장의 좌석 절반으로 뚝 잘라 나타난다.

게이밍 특화 구역은 게이밍체어, 커브드 모니터, 기계식 키보드가 채우고 있지만 나머지 절반은 몸이 파묻힐 정도로 푹신한 소파, 책상에 꽉 들어찬 커다란 평면 모니터, 광량이 적은 조명등이 장식하고 있다.

직장인들에게는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마저도 귀찮고 성가시게 느껴질 수 있고, TV 시청을 취미로 하고 있다면 이들을 타겟팅한 ‘P양과 C군 PC방’은 적절한 PC방으로 변신한 것이다.

신재우 매니저는 “다른 매장들과 비교하면 PC 규모와 가동률을 감안할 때 유료 게임비 지출이 매우 적은 편이다. 또 고사양 PC의 중요도 또한 낮아서 지난해 PC방 업계를 강타한 업그레이드 충격에서도 비교적 자유로웠다”고 첨언했다.

PC방, 인터넷카페로 회귀하다
‘P양과 C군 PC방’은 흡연할 공간도 마땅치 않은 직장인들을 위한 도피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오고 있었지만 몇 년 전 위기를 맞은 적이 있다. 예상하다시피 전면금연화다. 그동안 알뜰살뜰 가꿔온 매장의 정체성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생존을 위한 또 한 번의 변화가 강제되는 순간이었다.

우림블루나인 로비에 마련된 입주 업체 안내용 터치스크린에서는 아무리 찾아봐도 ‘P양과 C군 PC방’을 찾을 수 없다. 왜냐하면 음료와 샌드위치를 판매하는 전문점 ‘토스피아’로 변신한지 4년도 더 지났기 때문이다.

더 이상 흡연으로 어필할 수 없게 되면서 선택한 길이 음식점과의 접목이었다. PC방만으로는 한계에 봉착한 상황에서 설상가상으로 전면금연화까지 겹치자 어쩔 수 없이 내린 용단이었다.

PC 이용료 100원 200원에 벌벌 떠는 초등학생들이 고객층은 아니었지만 함부로 요금에 손댈 수는 없었다. 상권 내 다른 매장들 역시 같은 고충을 겪고 있는데 등 뒤에 비수를 꽂을 수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기존에는 PC 100대 매장이었지만 80대 규모로 줄이고 이 공간을 카페 ‘토스피아’로 활용했다. 덕분에 PC방과 카페 사이에 두 종류의 카운터가 등을 맞대고 있는 현재의 모습이 완성됐다. 또 카페 공간이 협소하지만 테이블을 줄이는 한이 있더라도 널찍한 흡연실을 마련했다.

덕분에 흡연공간으로 PC방을 이용했던 고객들을 붙잡을 수 있었고, 테이크아웃 비율도 높다. 오히려 시간당 1,000원 남짓한 PC 이용료보다는 한 잔당 4,000원인 음료가 고가이므로 매출 면에서는 더 낫다는 설명이다.

변종 PC방? 인터넷카페 ‘토스피아’
신재우 매니저는 PC방 ‘P양과 C군’과 카페 ‘토스피아’ 중에서 뭐가 우선이고 뭐가 나중인지 잘 모르겠다고 말한다. PC방 출입문으로 들어온 손님이 음료를 주문하면서 ‘여기 뭐가 이렇게 비싸냐?’라고 따져 묻는 경우도 있는 반면, 토스피아로 들어온 손님은 ‘여기는 PC방도 있어요?’라고 놀라워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형태의 매장만이 경험할 수 있는 독특한 에피소드도 있다. 맛집으로 소문이 나면서 학부형들이 샌드위치를 단체주문해 PC방 알바생이 총동원되는 일도 있고, 동네 초등학생들이 생일파티를 ‘토스피아’ 카페에서 하고 ‘P양과 C군’ PC방에서 게임을 즐기는 ‘생파 패키지’가 유행한 적도 있다고 한다.

카페 점장도 겸하고 있는 신재우 매니저는 “점장으로서 매출이 증가하는 것을 보면 뿌듯하지만 PC방 관리 업무와 카페 점원 업무를 동시에 해낼 수 있는 능력자 알바생을 뽑는 것이 어렵다. 착실히 배우고 성실히 일하는 지원자가 자체가 드물다. 또 힘들게 키워낸 인재가 갑자기 그만둘 때 느끼는 당혹감도 크다”고 전했다.

그는 구체적인 액수를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PC방과 카페의 매출 비율은 약 3:1 정도라고 밝혔다. 카페의 매출이 계속해서 증가하는 추세라 사장님도 기대하는 바가 크다고 한다.

인근에 학교가 있지만 어른들만의 공간인 비즈니스센터에 위치한 ‘P양과 C군 PC방’은 지난 10년의 세월 동안 현재의 인터넷카페 ‘토스피아’로 변신했다. 이 모습은 고유한 특징이 묻어나는 동시에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변화해온 전국의 모든 PC방들과 크게 다르지 않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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