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月刊 [아이러브PC방] 2월호(통권 303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컴퓨터나 반도체 뉴스에 관심이 있다면 ‘무어의 법칙’이란 말을 한 번쯤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마이크로칩에 저장할 수 있는 데이터의 양이 18개월마다 2배로 증가한다는 법칙으로 인텔의 공동설립자인 고든 무어(Gordon Moore)가 1965년 페어차일드(Fairchild)의 연구팀 재직 당시 예측했던 내용이다.

 

원래는 ‘일렉트로닉스’ 매거진에 논문 형식으로 실었던 글로 처음 공개됐을 당시 법칙이라기 보단 의견에 가까웠던 이 내용은 많은 전문가로 부터 비웃음을 샀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말대로라면 수십 년 내로 컴퓨터의 성장이 수억 배에 달해야 했기 때문인데, 당시의 컴퓨팅 수준에서는 상상조차 어려웠던 까닭이다. 하지만, 이런 전문가들의 예상을 깨고, 컴퓨터 산업은 상상을 뛰어넘는 놀라운 속도로 발전하며, 무어의 예언을 법칙으로 만들어 버렸다.

 

고든 무어가 최초에 제시한 내용은 해마다 2배였으나, 1975년 24개월로 수정됐고, 이후 통상 18개월로 정의돼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주기마다 2배의 성능 향상과 절반의 가격 인하를 내용으로 하고 있다. 비록 이 법칙대로 반도체 산업의 발전이 칼같이 맞아 떨어지지는 않아도 컴퓨팅 성능에 관한 지수적인 성장지표로 보면 어느 정도 일정하게 유지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인텔은 그동안 많은 전문가가 우려했던 한계 상황 속에서도 이 무어의 법칙을 착실하게 지켜내며 업계 1위를 유지해 왔다. 그래서 혹자는 이런 인텔의 성과를 두고 농담 삼아 외계인을 납치해 기술을 얻는 것이라거나 한계 돌파라는 목표로 스스로 목을 죄는 무어의 저주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그만큼 어려운 한계 상황에서도 인텔은 ‘틱톡(Tick Tock)’ 전략을 거듭하며 컴퓨팅 성능을 끌어 올렸다.

틱톡이란 인텔의 프로세서 출시 전략으로, 공정과 아키텍처를 2년 주기로 한 번씩 번갈아가며 개선하는 것을 의미한다. 애플의 아이폰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외형은 그대로 두고 성능을 강화해 넘버링 뒤에 S를 붙인 제품을 ‘톡’으로, 외형까지 바꾸면서 넘버링이 바뀌는 제품을 ‘틱’으로 보면 된다.

이런 틱톡 전략에 위기가 닥쳤다. 물리적 한계에 다다른 반도체 소형화를 위해 트라이게이트와 같은 3차원 집적회로기술을 개발 및 도입하는 등 갖은 노력을 거듭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인텔의 제조 공정 발전 속도가 나날이 더뎌지고 있어 전문가들은 틱톡 전략과 더불어 무어의 법칙이 곧 깨질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무어의 법칙대로라면 당초 2013년에 등장했어야 하는 인텔의 14nm 공정 브로드웰 제품이 2014년에 모습을 드러내며 2년이 아닌 2년 반 만에 가까스로 틱을 이뤄냈고, 2015년에 등장할 것이라고 예상됐던 10nm 공정의 CPU는 2017년으로 미뤄진 상태다.
 

 

   

 

공정의 발전 속도 둔화는 결국 틱톡 전략마저 바꿨다. 브로드웰에서 처음 채용된 14nm 공정이 지난해 출시된 스카이레이크(Skylake)에 이어 올해 출시를 앞둔 인텔의 다음 세대 CPU 카비레이크(Kabylake)까지 사용될 예정이며, 2017년 하반기로 예정된 첫 번째 10nm 공정 CPU인 캐논레이크에 이어 2018년 예정인 아이스레이크와 2019년으로 예정된 타이거레이크가 모두 같은 10nm 공정을 사용할 것으로 알려짐에 따라 사실상 2세대가 한 공정을 공유하는, ‘틱톡’이 아닌 3세대가 한 공정을 사용하는 ‘틱톡톡’이 되는 셈으로 더는 무어의 법칙을 실현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발전 속도를 더디게 만들고 있는 첫 번째 요인은 비용이다. 인텔은 지난 2011년에 향후 10년 동안의 기술 개발과 제품 생산에 대한 투자규모를 1,040억 달러로 계획했었으나 지난해로 이 금액은 2700억 달러까지 높아졌다. 관련 장비를 비롯해 인력 등 부대비용이 증가하면서 그 증가분이 고스란히 개발 비용에 반영된 것이다. 이로 인해 무어의 법칙 가운데 주기당 절반의 가격인하 역시 사실상 불가능해 무어의 법칙이 이미 가격 면에서 무너졌다고 보는 이도 있다.

또 다른 요인은 경쟁사와의 격차와 더불어 컴퓨터 시장의 축소다. 세계적인 IT 자문기관인 가트너(Gartner Inc.)가 발표한 잠정 결과에 따르면 2015년 4분기 전 세계 PC 출하량이 총7천 570만대를 기록, 2014년 4분기보다 8.3%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2015년 PC 출하량은 2014년에 비해 8% 감소한 2억8천870만대를 기록했다고 한다.

따라서 기술개발에 대한 필요성은 높지 않은 반면, 높아진 개발 투자비용과 낮아지고 있는 세계적인 PC 출하량 등을 고려할 때, 인텔의 기술개발 속도는 점차 둔화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으며, 컴퓨터 산업 전체의 발전 속도도 함께 더뎌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 수차례의 한계 예상을 깼던 인텔은 다시 한 번 무어의 법칙 지켜내기에 도전하고 있다. 인텔은 현재 10nm 이하 7nm와 5nm 공정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으며, 현재의 실리콘을 대체할 신소재에 대한 연구도 활발하다.

실리콘을 대체할 소재로는 트랜지스터 제조 시 칩의 크기를 줄이면서 용량은 더 키울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는 ‘탄소나노튜브’, 물리적·화학적 안정성이 매우 높고 구리보다 100배 이상 전기가 잘 통하며, 실리콘보다 100배 이상 전자 이동 속도가 빠른 ‘그래핀’, 적정 밴드갭(반도체의 성질을 갖게 하는 요소)을 갖고 있어 주목 받고 있는 ‘이황화몰리브덴’ 등이 있다. 특히 그래핀은 기존 실리콘 생산시설을 그대로 이용해 대량생산할 수 있어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해로 50주년을 맞은 무어의 법칙은 컴퓨팅 산업 발전에 있어 대단히 중요한 지표이자 특별한 의의를 갖는다. 어떤 자연적인 현상이 아닌 반도체 개발을 위한 인류 노력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과연 인텔이 드라마처럼 갑작스레 신제품을 선보이며 법칙을 지켜나갈지, 아니면 이대로 발전 속도가 둔화되며 무어의 법칙이 무너질지 컴퓨팅 업계 전반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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