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月刊 [아이러브PC방] 8월호(통권 297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최근 PC방 업주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PC방 사장님들 생각이 많이 달라졌구나’라고 느낄 때가 있다. 바로 화제가 게임 회사일 때다. 예전 같으면 “PC방을 등한시 한다”, “PC방 서비스가 개판이다”, “PC방 오과금을 방치한다” 등 날 선 비판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이런 발언이 상대적으로 덜하다.

게임사들이 PC방 업주들의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여 문제를 개선해나가고 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랑 마찬가지로 위에서 엄청 때리는 불쌍한 동네”라고 측은지심을 드러내는 업주도 있을 정도다. 특히 게임업계 돌아가는 소식에 관심을 갖고 있는 PC방 업주일수록 이런 경향이 두드러지곤 한다.

심지어 국산 온라인게임들이 PC방에서 예전만 못한 집객력을 보이고 있는 실정에 대해서도 “외국 게임사들은 자국 정부의 빵빵한 지원을 받고 있는데 이 정도면 선방하는 거다”라며 국내 게임사들을 두둔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쯤 되면 눈앞에 있는 사람이 PC방 업주인지 보살인지 헛갈릴 지경이 된다.

왕년에 게임사와 살벌하게 대립각을 세웠던 PC방 업주들이 이제는 연민과 동질감을 느낀다는 사실이 낯설고 어색하지만 그 원인은 상당히 명백하다. 한 때 잘나가던 시절도 있었지만 시장 상황이 변하는 와중에 정부의 규제가 이어지면서 업계에 위기가 찾아왔다는 점에서 묘하게 겹치는 부분이 있다.

PC방 업종의 역사는 태동기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규제로 점철된 역사다. 올해만 해도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에 따라 주민등록번호 수집에 대한 처벌이 강화되고, 성범죄 경력 조회와 관련한 단속도 예고된 바 있다. 또 금연지도원 활동의 확대와 화재배상책임보험 가입 의무화까지 산 넘어 산이다.

이처럼 PC방 업주들이 만성적인 규제 스트레스에 시달리다보니 이제 웬만한 규제에는 눈 하나 깜짝 않을 면역력을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온라인게임이 약세로 전환하는 등 시장 상황이 나빠지면서 PC방 업계가 침체된 가운데서도 줄기차게 찾아오는 규제는 예전보다 큰 심리적 압박과 피로감을 야기한다.

PC방 업주가 규제에 신음하는 게임사들을 측은히 여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 일일 수도 있겠다. PC방 업종이 하향세라는 평가를 받는 것처럼 비슷한 시기에 한국 게임산업에도 위기론이 대두되고 있다. 한국 게임산업이 꽃피울 수 있었던 토대를 제공한 온라인게임이 예전만 못하고, 이는 PC방의 가동률 하락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지난해 말 발표한 ‘콘텐츠산업 통계조사’에 따르면 2013년도 기준 국내 콘텐츠산업 매출액은 전년 대비 4.5% 증가한 91조2,096억 원으로 최종 집계됐고,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콘텐츠산업 매출액은 지난 5년 간 연평균 8.0%씩 꾸준히 성장해왔다.

그러나 매출액이 증가한 산업군 목록에 게임이 사라졌다. 오히려 전년 대비 0.3% 감소한 9조7,198억 원으로 집계돼 지난 6년 동안 매년 10%의 성장폭을 보였던 게임업계의 충격은 클 수밖에 없다. 이 시기는 정부가 게임 규제에 열을 올리던 시기로, 표적이었던 온라인게임의 경우 19.6%나 곤두박질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글로벌 게임시장에서 스마트폰이 차세대 게이밍 기기로 급부상하던 때로, 국내 게임사에게도 미래의 성장을 준비하고 동력을 마련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였다. 불행하게도 국내 게임사들은 규제 이슈에 힘을 빼고 있는 동안 게임 선진국들은 빠르게 치고 나갔다.

한편, 수출시장에 불과했던 중국은 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고 역습에 성공, 한국에서 계속해서 승전보를 올리고 있다. 웹게임은 물론 정통 온라인게임도 수출 증가세를 보이고 있고, 중국 자본은 이제 국내 게임사 곳곳에 침투해 있다. 넷마블게임즈는 텐센트에게 지분 28%를 내줬고, 라이엇게임즈나 다음카카오에도 텐센트의 영향이 미친다.

평소 PC방 업계와 게임업계가 파트너로써 공감대를 형성하고 윈윈하는 모습을 바라왔지만 규제가 이런 역할을 할 줄은 몰랐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반목했던 PC방 업계와 게임업계를 단번에 동질감으로 묶어주는 규제의 힘이 새삼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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