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月刊 [아이러브PC방] 6월호(통권 283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PC방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수많은 게임들이 천하제일이라는 이름을 차지하기 위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대결했던 연무장의 역사였고, PC방 점유율 1위를 자랑하며 무림을 호령했던 절대강자가 갓 강호에 나온 신출내기에게 무릎을 꿇기도 했던, 게임의 흥망성쇠 그 자체였다.

 

무정하게 돌고 도는 것이 게임 시장의 유행이고 흐름이지만 PC방이라는 업종이 태동하던 시기에 웅비하던 무협게임은 좀처럼 패권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 무협이라는 소재는 판타지나 SF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중장년층의 선호도가 높은 편이고, 최근 PC방이 그 어느 때보다 성인 손님에 목말라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작 무협게임은 반드시 PC방 점유율 상석에 앉아야 하는 게임이다.

무협게임의 현주소 살펴보니
무림보다 비정한 PC방 게임순위에는 내로라하는 강자만이 이름을 올릴 수 있다. 하지만 무협게임은 이러한 PC방에서 살아남기에 아직은 수련이 필요한 초보 무사처럼 보인다.

PC방 전문 리서치 게임트릭스를 살펴보면, 무협을 소재로 한 게임을 찾아보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는 그만큼 무협게임이 게이머들에게 어필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며, 무협게임을 좋아하는 아저씨들의 눈높이에 맞는 게임이 부족하다는 반증이다.

 

 

그나마 엔씨소프트의 <블레이드앤소울>이 8위, NHN블랙픽의 <아스타>가 50위, 아이엠아이의 <구미호>가 88위로 순위가 높은 편이지만 이 세 게임은 퓨전 요소를 대거 가미한 세계관이 특징으로, 동양 판타지라고 불러야할 게임들이다.

정통 무협게임으로 분류할 수 있는 게임은 <천상비>, <영웅온라인>, <열혈강호온라인>, <십이지천2> 정도를 꼽을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100위권 언저리에서 머물고 있는 관계로 PC방 업주 입장에서는 큰 집객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왕년엔 천하를 삼분했던 고수…
PC방이 전국 각지에 하나둘씩 생겨나던 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무협게임은 주류라고 불리기에 손색이 없었다.

지금이야 ‘아저씨들이나 좋아하는 게임’이라며 퇴물 취급을 받고 있지만 온라인게임 초창기까지만 해도 <스타크래프트>나 <리니지>와 함께 PC방을 주름잡을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

 

 

게임 플랫폼의 판도를 온라인게임으로 급격히 바꿔놓았던 넥슨의 <바람의나라>도 외관상 무협이었다. 2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서비스되면서 현재는 동양 판타지 세계관의 모습을 띠고 있지만 초기에는 무협에 가까웠다. 육체와 정신을 단련해 한계를 뛰어넘고 ‘건곤대나이’, ‘사자후’ 등 무협지 속 무공을 사용할 수 있었다.

이 당시 게이머들은 일본에서 수입된 아케이드 게임과 미국과 대만에서 건너온 PC패키지 게임을 접해온 세대들로, 고대 한반도를 배경으로 다른 게이머들과 네트워크로 만날 수 있는 국산 게임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영웅문> 역시 빼놓을 수 없는 무협 온라인게임이다. 1997년 말 태울에서 출시한 <영웅문>은 비급을 통해 무공을 수련하고, 수련 기간에 맞춰 내외공을 연마하는 등 무협 세계관을 충실히 구현해 마니아들의 지지를 받았다.

 

 

<영웅문>은 온라인게임의 특징인 인게임 커뮤니티에 착안해 문파 시스템을 구현하는가 하면, 기연을 통한 사제관계 등 무협의 느낌을 잘 살린 게임 시스템을 갖춘 것이 특징이었다. 또한 무협지 주인공의 이야기처럼 문파간 대립과 분쟁으로 멸문지화를 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후 무협의 본고장 중국에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미르의전설>, 조선을 중심으로 무협을 재해석한 <조선협객전>, 유저가 직접 무공을 창안할 수 있었던 <천년>, 문파별 무공의 특징을 부각시켰던 <구룡쟁패> 등등 수많은 무협게임들이 계속 줄기차게 시장에 나왔지만 대흥행이라고 평가할 게임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독공에 의식을 잃은 무협게임
무협이 온라인게임으로 개발하기에 더없이 좋은 소재인 것은 분명하다. 판타지나 SF와 뚜렷하게 구별되는 독특한 분위기, 개발자와 유저 모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다양한 무공들, 레벨 시스템으로 차용할 수 있는 ‘갑자’, 얽히고설킨 관계를 풀어내기에 제격인 문파, 이를 바탕으로 개발할 수 있는 PvP 및 PvE 콘텐츠 등 일일이 언급하자면 끝도 없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강호의 정취를 게임 속에서 오롯이 담아내려는 시도는 계속 시도되었고, 게임 개발사들은 하나의 세계를 통째로 전달할 수 있는 장르인 MMORPG를 선택했다. 특히 <미르의전설>에 열광한 중국에서는 본격적으로 무협 MMORPG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중국산 무협 MMORPG는 개발자가 장인정신을 발휘해 만든 작품이 아니라 공장에서 찍어내는 양산품에 가까웠다.

마니아들이 무협의 본고장에서 온 무협게임에 ‘무협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한 콘텐츠와 시스템’ 등을 기대했지만 실상은 흔하디흔한 MMORPG에 그래픽 텍스처만 동양적인 경우가 태반이었다.

또한 중국산 MMORPG들은 기획 단계에서부터 아이템 거래를 염두에 두고, 자동사냥 프로그램을 탑재하는 것이 아예 기본이었다. 한국 게이머들 사이에서 ‘오토’는 서버의 경제를 좀먹는 것으로 치부되었기 때문에 한국 시장에서 용인되기 쉽지 않았고 무협게임의 이미지는 날로 추락해갔다.

무협 MMORPG들이 처참한 실패를 거듭하다보니 국내 게임사들은 블록버스터급 무협 온라인게임 개발 및 퍼블리싱을 꺼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무협게임에 대한 수요는 늘 있었고 게임사는 개발 및 퍼블리싱에 부담이 덜한 웹게임을 꾸준히 출시해 무협은 현재 ‘삼국지’와 함께 단골 소재로 자리 잡았다.

이제 폐관수련을 끝내야 한다
의외로 무협은 웹게임과 엉뚱한 부분에서 궁합이 좋았다. 웹게임은 게임 진행이 다소 정적이고 템포가 느리다는 점에도 불구하고 클라이언트 설치가 필요 없다는 특징을 내세우면서 직장인들에게 온라인게임의 대체재로 떠올랐다.

당연히 다양한 웹게임 중에서도 30~40대 유저들이 선호하는 무협을 채택한 게임이 현재 웹게임 시장에서 주류를 형성했다.

하지만 대체재가 득세하면 할수록 독립재에 대한 갈증이 커지기 마련이다. 무협지 속 고수들이 사용하면 고강하고 눈부신 무공, 눈으로 쫓기 어려울 지경인 신속한 경공술 등이 구현된 대작 온라인게임이 있다면 이 게임을 하지 굳이 웹게임으로 눈 돌릴 이유가 없는 것이다.

때문에 화려한 그래픽을 자랑하는 <블레이드앤소울>이 출시 당시에 PC방에서 아저씨 손님들 사이에 일으켰던 반향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실제 지난 2012년 6월 말, <블레이드앤소울>은 PC방에 모습을 드러냄과 동시에 숨어있던 성인 게이머들을 PC방으로 불러 모았고 가동률 상승까지 이끌어내며 점유율 1위에 등극했다.

물론 <블레이드앤소울>이 이러한 기세를 오랜 시간 이어가지 못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캐릭터를 최고레벨까지 육성한 이후 엔드 콘텐츠가 부족하기도 했지만 게임이 정통 무협과는 거리가 다서 있는 편이었고, 마우스 클릭에 익숙한 아저씨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손놀림을 요구해 눈물을 삼키며 단장의 이별을 할 수밖에 없었던 점도 있다.

예의바른 우리의 PC방 아저씨 게이머들은 던전에 들어간 파티원들이 자신 때문에 고통 받는걸 방관할 정도로 염치없는 사람들이 아닌 탓이다. 차라리 자신의 게임을 접는 한이 있어도 남에게 폐를 끼칠 순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아저씨 맞춤형 무협게임 어디 없나?
결론적으로 무협을 좋아하는 아저씨 게이머를 만족시킬 만한 온라인게임은 아직 출시된 적이 없다. 최근에는 이제까지와 달리 <쿵푸히어로>와 <대명온라인>이 각 연말과 연초에 OBT를 시작했으나 아쉬운 점들이 지목되며 좋은 성적을 거두지는 못했다.

 

 

이제 남은 신작인 <날온라인>에 무협 온라인게임을 기다리는 아저씨 게이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아이엠아이가 지난 5월 30일부터 31일까지 사전체험 테스트를 통해 선보인 <날: 세상을 베는 자(이하 날온라인)>은 앞서 지적한 무협 온라인게임들의 단점을 모두 보완한 타이틀이다.

중국 픽셀소프트가 200억 원의 자금을 투입해 4년간 개발한 <날온라인>은 정통 무협 세계관을 채택하고 있으며, 실제 무술 움직임을 게임 내 캐릭터 동작에 일치시키는 모션캡처 기술을 적용해 사실적인 액션을 극대화한 3D MMORPG다.

또한 상이한 무공이 대결하는 무협의 묘미를 살리기 위해 병장기별 특징과 장단점을 뚜렷하게 부각한 점도 특징이다. 아울러 <날온라인>의 조작 난이도는 너무 쉽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조작 피로감을 호소할 정도로 어렵지는 않다.

신작 출시 일정뿐만 아니라 리뉴얼 일정도 풍부하다. SG데이타는 <십이지천2>를 리뉴얼해서 내놓았고, 이야소프트는 <묵향온라인>을 리뉴얼한 <타이탄리턴즈>를 예고했으며, 게임온 역시 <신천상비> 업데이트를 통해 2000년대 초 게임들이 재도약을 꾀하고 있다.

우연히도 올해는 한동안 뜸하던 무협 온라인게임 소식이 풍성하다. 걸출한 신작을 비롯해, 과거 무협 온라인게임 시대를 이어갔던 인기작들이 새단장돼 재출시되는 등 무협 복고 트렌드가 온라인게임 시장의 핫 이슈 가운데 하나로 부상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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