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月刊 [아이러브PC방] 2월호(통권 279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세계 최대의 전자제품 전시회인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2014)’가 지난 1월 7일부터 10일까지 성황리에 진행됐다. CES는 게임 전시회가 아니지만 올해는 전세계 게임업계의 시선이 집중된 행사였다.

밸브코퍼레이션의 게이밍 PC 스팀머신 때문이다. 스팀머신은 게이밍과 PC가 만났다는 점에서 PC방과의 연관성이 많아 보이지만 ‘스팀’은 PC방 업주에게 낯선 그 무엇이다. 이 기회에 양파껍질 벗기듯 스팀머신을 속속들이 살펴보았다.

도대체 ‘스팀’은 무엇인가

 

한국 게임시장은 온라인게임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고, PC방 역시 게임사가 운영하는 게임포털을 통해 온라인으로 서버에 접속하는 게임 방식이 익숙하다. 하지만 ‘스팀’은 이러한 문법에서 벗어나 있어 생소할 수 있다.

 

전통적인 콘솔게임과 PC패키지게임이 견고했던 해외 게임시장은 온라인게임 열풍에 나름의 방식으로 대처했다. 그리고 그 대처의 결과물이 바로 ‘스팀’이다. 온라인게임이 게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지만 해외에서는 PC패키지게임에 대한 수요도 여전했다.

이에 밸브코퍼레이션은 ‘스팀’을 통해 수많은 패키지게임을 다운로드할 수 있도록 했고 각종 업데이트 패치도 제공하는 서비스를 선보였다. 한국으로 치자면 플레이엔씨, 피망, 넷마블 등 유력 게임포털들을 채널링하는 게임포털 정도인 셈이다.

 

그리고 ‘스팀’은 멋지게 성공했다. 밸브코퍼레이션에 따르면, ‘스팀’은 매년 약 62%의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으며, 가입 회원수만 6,500만 명을 훌쩍 뛰어넘는다. ‘스팀’의 성공신화는 국내외 게임사들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쳤고 EA의 ‘오리진’, 에이치투인터렉티브의 ‘다이렉트게임즈’의 론칭으로 이어졌다.

 

스팀머신, 드디어 정체를 밝히다
CES에서 공식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스팀머신은 ‘스팀’에 입점한 게임 타이틀들을 플레이할 수 있는 ‘게이밍 PC’였다.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게임을 할 수 있는 PC가 뭐 그리 대수라고 여길 수 있다.

 

그러나 스팀머신은 일반적인 PC와 달리 콘솔게임기의 모습을 하고 있다. TV와 연결해 ‘스팀’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다. 또 ‘스팀컨트롤러’라고 알려진 전용 패드를 지원한다. 이정도면 PC가 아니라 콘솔게임기가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스팀머신의 속을 들여다보면 또 그렇지도 않다.

 

제원이 고정적인 콘솔게임기와 달리 스팀머신은 조립이 자유로운 데스크탑 특유의 혈통을 계승하고 있는 일종의 ITX 미니 PC에 가깝다. 오픈소스로 유명한 리눅스를 기반으로 한 ‘스팀OS’를 탑재했고, PC 제조사 13곳에서 사양과 가격이 상이한 제품을 출시할 예정이다.

스팀머신에는 플레이스테이션이나 엑스박스 등 콘솔게임에 익숙한 게임 유저들에게 PC패키지게임을 선보이겠다는 전략이 녹아있는 것으로, 그 중심에는 콘솔과 PC, 패키지와 온라인, 거실과 방으로 상징되는 이분적 게이밍 환경을 통합하겠다는 큰 그림이 있다.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
스팀머신의 정식 출시일은 미정이지만 시장의 반응은 벌써 달아올랐다. 배타적 소비자로 여겨졌던 콘솔게임 유저와 PC게임 유저가 동일한 소비자층으로 묶인다면 게임 시장에 이보다 큰 블루오션은 없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게임 유저들의 반응도 호의적이다. ‘스팀’에서 서비스하는 3,000여 타이틀을 안락한 환경에서 플레이할 수 있고, 밸브코퍼레이션은 ‘열린 정책’을 표방하며 해킹(루팅)을 장려하고 있어 유저의 손에 의해 진화할 가능성이 열려있다.

이처럼 스팀머신은 전세계 게임 시장에서 폭발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지만 정작 PC방과의 접점은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순 없다. ‘스팀’의 서비스 체계 자체가 개인 유저의 결제를 기본으로 운영되도록 맞춰져 있고, PC방과 온라인게임에 들어맞는 정책은 아직 시도된 바 없기 때문이다.

다만, 스팀머신의 보급이 갖는 상징적 의미와 기대효과도 있다. 우선 게임인구 자체가 확대될 수 있다는 측면은 긍정적이다. 또한 게임에 대한 인식이 ‘코묻은 돈 뺏는 오락’에서 ‘고가의 컴퓨팅 장비가 수반되는 취미’로 변모할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스팀에서 서비스되는 네트워크 지원 게임들은 PC방 유저와 동일선상에서 매치서버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어 함께 대전할 대상이 다소나마 늘어난다는 점도 기대되는 효과다.

마치며…
PC방이 ‘스팀’ 게임을 서비스할 수 있다면 PC방의 콘텐츠가 다양해지므로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일 것이다. 아울러 스팀머신에서 윈도우용 게임을 구동하는 ‘인홈스트리밍’ 기능은 별도의 PC가 필요하다는 문제가 있지만 PC방에는 이런 PC들이 즐비해 문젯거리도 아니다. 더욱이 최근에는 노하드 시스템이 보편화되어 노하드 서버와 연계되도록만 설계한다면 훨씬 쉽게 구현해낼 수 있어 의외로 접합점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 PC 패키지 게임들을 전문적으로 구동시키는 리눅스 계열 OS를 탑재하고 있다는 사실만 놓고 보아도 대체OS에 대해 가능성이 아닌 현실을 제시해준 첫 사례인 만큼 스팀머신의 탄생은 PC방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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