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月刊 [아이러브PC방] 9월호(통권 274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PC방에서 제일 잘 나가는 게임은 더 이상 RPG가 아닌 AOS다. PC방 피크타임인 오후 4시부터 8시까지는 <리그오브레전드>가 만석의 원동력을 제공하지만, 피크타임이 아닌 시간대에 PC방 매출을 끌어올릴 열쇠는 RPG가 쥐고 있다.

AOS는 매 경기마다 새로운 게임이 진행되는 구조를 취하고 있고, 이는 게임종료 시점을 명확히 하는 결과로 나타난다. 반면, RPG는 연속적인 진행이 특징으로, 유저의 게임플레이가 계속되도록 유도한다. PC방 업주들은 매출을 유지시키는 RPG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지만 RPG 유저가 감소했고 설상가상으로 게임플레이 시간도 줄었다며 걱정하고 있다.

RPG는 장시간 플레이하는 유저가 많아 PC방 업주들의 사랑을 받아온 장르다. 신작 RPG들은 무엇을 빠뜨렸기에 과거 RPG들에 비해 인기가 없고 플레이시간도 짧은 것일까?

 

 

요즘 RPG는 찍는 재미가 없다
RPG가 PC방에서 전성기를 구가하던 2000년대는 최근 RPG들에서 찾아보기 힘든 ‘스탯 분배 시스템’이 있었다. ‘스탯 분배 시스템’은 유저의 입맛대로 캐릭터를 성장시킬 수 있어 육성의 재미를 선사했고, 플레이타임을 어느 정도 보장하는 콘텐츠였다.

가령 레벨이 올라 획득한 포인트를 ‘힘’이라는 능력치에만 집중하면 물리공격력을 극도로 강화할 수 있고, ‘체력’에 투자하면 엄청난 체력을 확보할 수 있는 등 ‘스탯 분배 시스템’은 유저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구석이 있었다.

또한 ‘스탯 분배 시스템’은 게임 내 캐릭터가 보유한 스킬과 어우러져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냈다. 하나의 클래스가 다양한 스킬을 습득할 수 있고, 각 스킬은 특정 능력치의 영향을 받도록 설정되어 있어 유저는 저마다 자신만의 캐릭터를 육성할 수 있었다.

특히, <디아블로2>와 <라그나로크온라인>가 ‘스탯 분배 시스템’으로 유명하다. <디아블로2>의 경우는 어떤 ‘스킬트리’를 선택하고 어떤 스탯에 투자하느냐에 따라서 같은 클래스라도 전혀 다른 캐릭터로 변모했다.

<라그나로크온라인>의 ‘검사’ 클래스는 ‘나이트’와 ‘크루세이더’로 전직할 수 있으며, ‘나이트’는 힘과 민첩성에 투자한 후 양손검 공격속도를 가속시키는 스킬을 선택하는 부류와 힘과 체력에 투자한 후 창을 들고 전투를 펼치는 부류로 나뉜다. 그리고 이 두 극단 사이에는 어느 스탯에 어느 정도 포인트를 투자할 것인가를 두고 무수히 많은 분파가 있었다.

심지어 캐릭터 생성 단계에서부터 특정 아이템을 상정해놓고 육성하는 경우도 있었다. ‘행운’이라는 능력치는 전투력 증가 효과가 미비해 주력으로 투자할만한 스탯은 아니지만 ‘저주’ 디버프에 대한 내성과 관련이 있다. 이에 착안해 ‘저주’에 걸리지만 강력한 무기를 자유롭게 사용하는 유형이 유행하기도 했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는 법
이처럼 ‘스탯 분배 시스템’은 캐릭터 육성의 재미를 보장했고, 자연스럽게 유저들은 다양한 캐릭터를 육성했다. 물론 과거 RPG들이 누렸던 호사가 전적으로 ‘스탯 분배 시스템’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유저들의 플레이시간 증가에 일조한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탯 분배 시스템’은 점차 RPG에서 자취를 감췄다. ‘스탯 분배 시스템’은 분명 매력적이긴 했지만 부작용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저들은 개발자의 의도와는 달리 고효율 캐릭터만을 추구했고, 일명 ‘국민트리’라고 불리는 유형이 아니면 캐릭터의 가치가 평가절하 하는 분위기가 만연했다.

유저는 자신의 캐릭터가 쓸모없는 캐릭터로 평가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 스탯에 대한 정보와 각 클래스의 스킬 등에 대해서도 상당한 이해를 갖추어야 했다. 이는 게임에 이제 막 발을 들여 놓은 신규 유저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고, 일종의 진입장벽이 된다.

또한, ‘스탯 분배 시스템’은 클래스간 밸런스를 유지하기에도 불리했다. 밸런스는 유저들에게 매우 민감한 문제다. 특정 클래스가 지나치게 강하거나 약하면 유저들의 원성을 사게 되고, 장기화될 경우 대규모 유저 이탈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밸런스 조정은 워낙에 변수가 많기 때문에 개발자가 모든 경우의 수를 파악해 결과를 예상하고 적절히 대처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스탯 분배 시스템’은 동일한 클래스라도 전혀 다른 캐릭터를 육성하도록 지원하고. 이는 염두에 두어야할 변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함을 뜻한다.

결국 ‘스탯 분배 시스템’은 RPG 콘텐츠로써 위상이 점차 낮아졌고, 종국에는 신규 유저의 유입을 막고 밸런스를 파괴하는 주범으로 간주되었다.

특성 시스템, 진화인가 퇴화인가
최근 RPG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스탯 분배 시스템’이 사라진 자리를 ‘특성 시스템’이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특성 시스템’은 유저의 취향에 맞춰 캐릭터의 능력에 부과효과를 더하는 내용으로, ‘스탯 분배 시스템’처럼 캐릭터에 개성을 부여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

‘스탯 분배 시스템’은 사라졌지만, 캐릭터의 다양성을 보장하고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는 RPG의 묘미까지 포기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다만 언제든지 초기화가 가능하고, 특정 능력치에 극단적으로 투자할 수 없도록 설계되어 있는 등 ‘스탯 분배 시스템’보다 제약이 적은 캐주얼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특성 시스템’은 ‘스탯 분배 시스템’과 동일한 한계를 드러낸다. ‘국민트리’의 등장을 피할 수 없고, 오히려 캐릭터 육성 방향을 고심하는 즐거움마저 사라진 형태다. 이는 PC방 업주들이 말한 RPG 유저들의 플레이 시간 감소 경향에 대한 실마리일지도 모른다.

마치며…
사실 최근 게임시장 분위기를 고려하면 ‘스탯 분배 시스템’은 게임사에게 부담스러운 시스템이다. 수많은 RPG들 경쟁하고 있는 현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유저들에게 게임의 재미를 빠르게 어필해야 하지만 ‘스탯 분배 시스템’은 재미를 느끼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소요되고, 이는 게임의 생존에 위협요소로 작용한다.

PC방이 RPG에 거는 기대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지만 RPG의 위력은 약해져만 가고 있다. RPG 유저들은 ‘특성 시스템’의 한계를 뛰어넘은 콘텐츠를 기다리고 있으며, PC방은 RPG의 전성시대를 다시 열어줄 게임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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